[김건수의 세상 속으로] 부활하는 요시다 쇼인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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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수 논설위원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21일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봉납했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는 2013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이후 해마다 공물을 올리고 있다. 히로히토 일왕이 1975년 이후 야스쿠니 신사에 발길을 끊었고, 현 아키히토 일왕도 즉위 후 한 번도 야스쿠니 신사를 찾지 않은 것과 대조적이다. 야스쿠니 신사가 어떤 곳인가. 근대 일본이 일으킨 크고 작은 전쟁에서 숨진 사람들의 영령을 떠받드는 곳이다.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을 포함해 246만여 명이 합사돼 있는, 일본에서 가장 규모가 큰 신사다. 아베 총리가 자신의 정신적 지주로서 가장 존경한다는 일본인이 거기 있다. 야스쿠니 신사 최상단에 이름이 새겨져 있는 요시다 쇼인(1830~1859). ‘천황제’ ‘독도 영유권 주장’ ‘일본군 위안부’ ‘조선인 강제징용’ ‘평화헌법 개정’ 등 한·일 관계의 숱한 역사적 쟁점들을 더듬다 보면 종국에 마주칠 수밖에 없는 이름이다.

정한론 비롯한 군국주의 이론의 뿌리

제자 등 인맥 일본 정계 핵심 진출

아베 총리 역시 ‘정신적 지주’로 숭앙

과거 반성은커녕 잇단 우경화 정책

거꾸로 가는 일본 사회 읽으려면

일본 꿰는 객관적 연구물 축적해야

요시다 쇼인은 ‘메이지 일본’을 설계한 인물이다. 막부를 타도하고 천황 중심의 국가 체제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한국을 정벌하는 ‘정한론’과 ‘대동아공영론’의 이론적 토대도 그의 솜씨다. 그가 집필한 <유수록(幽囚錄)>(1854)에 그 기초가 잘 드러나 있다. “미국이나 러시아 같은 강대국과는 우호 관계를 맺어 실력을 기른 후, 손쉽게 넣을 수 있는 조선과 만주, 중국의 영토를 점령해 강국에 잃은 것을 약자에 대한 착취로 메우는 것이 상책이다.” 강자에게는 철저히 굴종하고 대신 약자로부터 모든 걸 뜯어내겠다는 논리. 이렇듯 미성숙한 사고가 침략적 일본을 채찍질하는 수단이 된 것은 일본의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요시다 쇼인은 ‘쇼카손주쿠(松下村塾)’라는 학당에서 제자들을 길러내고 사상을 전파했다. 여기서 배출된 인물들이 이후 메이지 신정부의 요직을 차지한다. 조선 통감 이토 히로부미, 조선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 같은 조선 침탈의 숱한 주역들이 쇼카손주쿠 출신이거나 그 인맥이다. 요시다 쇼인은 쇼군 정치에 반대하고 이를 전복하려다 처형당했지만 그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거짓말처럼 메이지 유신이 이뤄졌다. 일본인 입장에서는 시대의 아픔을 끌어안고 열정을 불사른 존재로 비칠 만하다.

160여 년 전 요시다 쇼인이 한반도 정벌을 주장하고 그의 학생들이 ‘일본의 이익선(利益線)은 한반도’라는 개념 아래 구체화시킨 정책들은 오늘날 일본 우익 정치세력의 신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요시다 쇼인의 후예들은 일본 자민당의 핵심 간부에게까지 사상적 물줄기를 잇고 있다. 쇼인을 신적 존재로 여기는 이가 지금의 아베 총리다. 그는 총리가 되자마자 쇼인의 묘지를 방문해 무릎을 꿇었다. “선생의 뜻을 충실히 이어가겠다”는 다짐이었다.

아베의 고조부인 오시마 요시마사는 1894년 갑오농민전쟁 때 경복궁을 기습 점령한 일본군 사령관으로, 요시다 쇼인의 문하생이다. 아베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 역시 군국주의 일본을 무대로 식민지 수탈에 참여한 A급 전범 용의자다. 젊은 시절 우익적 색채가 없던 아베는 정계 입문 뒤 외할아버지의 사상적 유산을 물려받는다. 위안부 문제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원전 문제, 아베노믹스(Abenomics)와 관련된 우파 정책이 다 거기서 나왔다. 지난해 9월 집권 자민당 총재로 세 번째 연임에 성공해 ‘최장수 총리’ 타이틀을 달게 된 아베는 ‘전쟁 가능한 국가’를 향한 평화헌법 개헌 작업과 군비 확장에 속도를 내는 중이다.

요시다 쇼인의 부활 징후는 곳곳에 자욱하다. 아베가 공을 들인 끝에 쇼카손주쿠는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최근엔 구한말 한반도 경제 침탈에 앞장선 시부사와 에이이치가 1만 엔권 지폐에 그려질 새 인물로 선정됐다. 메이지 유신을 국제적으로 공인받아 침략의 역사를 숨기려는 의도다. 콤플렉스의 소산이든, 군국주의의 숨은 망령이든, 요시다 쇼인의 꿈을 21세기에 호명하는 것은 시대착오다. 일본 국민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고 정치에 무관심한데, 이를 우려한 우익 세력이 그의 등장을 부채질한다.

일본 패망 후 조선 총독 아베 노부유키는 이렇게 내뱉었다. “조선인이 제정신을 차리고 옛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걸릴 것이다…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이 섬뜩한 저주는 그만큼 한국을 잘 알고 있다는 자신감이다. 그런 일본을 우리는 과연 얼마나 제대로 보고 읽고 있는가. 감정에 치우치거나, 애써 모른 체하거나 둘 중 하나다. “일본의 관점으로 일본 역사를 바라봐야 일본을 온전히 이해하고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김세진·<요시다 쇼인 시대를 반역하다>) 냉정과 객관이 뒷받침된, 보다 많은 일본 연구가 절실한 이유다. kswoo333@busan.com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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