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부산포해전과 부산시민정신

노정현 기자 jhnoh@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노정현 사회부장

‘이순신 장군과 부산이 무슨 관계가 있다고?’

‘이순신 박사’로 통하는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이 4월 중순 본사를 찾아 이순신 장군의 부산포해전을 부산대첩으로 승화시켜 부산시민정신의 뿌리로 재조명하는데 힘을 모으자고 제안했을때 사실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순신이 부산출신 장군도 아니고 이순신을 기념하는 각종 사업을 전국 각지에서 벌이고 있는 터라 굳이 부산에서 또 그런 기념사업을 하나 더 한다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임진왜란 전체 판도 바꾼 부산포해전

승전일인 10월5일은 부산시민의 날

포용·단결, 유비무환, 선공후사

부산시민정신의 뿌리로 계승해야

북항재개발 부지내 랜드마크 건립

부산시, 항만공사 등 관심 기울여야

김 전 재판관은 부산포해전의 의의와 부산과의 연관성을 조목조목 설파하고 돌아갔으나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 특히 이순신 장군의 업적에 대한 표피적인 지식밖에 없던터라 큰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며칠 후 그가 건네주고 간 본인의 저서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를 펼쳐 든 순간, 부산포해전에서 혁혁한 성과를 올린 이순신의 업적을 부산에서 재조명하자는 제안은 충분히 시민들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한나절 남짓 책을 독파한 후, 유튜브 등을 통해 부산포해전 당시의 실상과 의의를 접하고 나니 김 전 재판관의 제안이 단지 개인의 희망사항이 아니라, 진정 부산을 위하는 의미있는 시민운동이 될 수 있다는 확신에 이르렀다.

부산포해전의 역사적 의의를 논외로 두더라도, 이순신 장군은 이미 부산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1980년 부터 10월 5일(음력 9월 1일)로 제정된 부산시민의 날은 이순신장군의 부산포해전 승전일을 기념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시민들은 많지 않다. 당시 손재식 시장 재임시 부산시민의 날을 제정하기 위해 각계 여론을 수렴한 결과 △부산포해전 승전일 △부산직할시 승격일(1월 1일) △부산항 근대 개항일(2월 27일) △동래부사 송상현공 순절일(5월 25일)△부산시민헌장 제정일(8월 1일) △부산부에서 부산시로 승격일(8월 15일) 등 6개안이 후보로 제시됐다. 이 중 송상현공 순절일과 부산포해전 승전일 2개안에 대한 격론이 벌어졌고, 결국 부산시 문화위원회 비밀투표에 부쳐져 시민들의 제의가 가장 많았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부산포해전 승전일이 부산시민의 날로 결정되기에 이른 것이다. 부산포해전을 재조명해 부산시민정신의 뿌리로 삼자는 2019년의 움직임은 이미 40년전에 선각자들이 그 첫발을 떼어놓았던 셈이다.

부산시민의 날로 제정될만큼 부산포해전이 부산과 연관성이 있다면 이제 그 속에서 배워야 할 역사적 교훈, 그리고 그 교훈을 어떻게 부산시민정신의 토대로 삼을 수 있을지를 살펴볼 차례다.

부산포해전은 임진왜란 발발연도인 1592년, 이순신 장군의 네 차례 출전 중 마지막으로 치러진 전투이자 조선수군이 먼저 왜군을 공격을 감행한 전투였다. 이 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통합함대는 대략 85척 내외의 전선으로 130여 척의 일본군 함선을 격파하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특히 부산포해전이 갖는 역사적 의의는 연락, 보급 등 일본군 전쟁수행의 본거지였던 부산을 선제 공격함으로써 적의 허리를 끊어놓았다는 점이다. 부산포해전이 임진왜란 전체 판도를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셈이다.

이순신이 부산포해전에서 솔선수범하여 보여 주었던 포용·단결, 유비무환, 선공후사, 창의·개척 4가지 정신은 임진왜란과 6·25 전쟁 당시 임시 수도로서 나라의 위기때마다 그 운명을 지켜낸 보루였던 부산의 정신으로 계승하기에 손색이 없다.

때마침 창립 1주년을 맞는 부산대첩기념사업회가 부산포해전의 역사적의의를 재조명해 동북아 해양수도 부산을 이끌어가는 시대정신으로 이어나가기 위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고, 부산시도 지난 2월 이를 지원하는 조례를 재정해 그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이에 맞춰 이순신이 왜적 본진을 무찌른 북항 앞바다 재개발사업 부지안에 시민들의 힘을 모아 기념공원과 기념관, 호국과 평화의 상징물을 포함하는 랜드마크를 짓자는 제안은 부산항만공사 등 관계기관이 의미있게 귀기울여 볼 만하다. 다만 이는 이순신 개인을 기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부산정신의 뿌리로 삼을 수 있도록 임진왜란과 부산대첩 공로자들을 같이 기념하는 공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부산시와 부산관광공사 등이 주축이 돼 이와 연계한 다양한 관광상품을 개발한다면 부산을 대표하는 훌륭한 관광자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8일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 탄신 474주년 이었다. 부산시민의 날인 오는 10월 5일에는 이순신 스스로 “장수들의 공로를 논한다면 부산싸움보다 더 큰 것이 없다”고 한 부산포해전이 부산시민 정신의 뿌리로 재조명받는 결과물이 도출되어 있기를 기대해 본다. jhnoh@busan.com


노정현 기자 jhnoh@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