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부산 영화의 다른 얼굴 ‘부산국제단편영화제’
학생들에게 영화를 가르치다 보면 놀랍도록 당연한 한 가지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그것은 학생들이 한 가지 종류의 영화 보기에만 능숙할 뿐, 그 외의 다른 장르나 다른 성향의 영화에는 무척 둔감하다는 사실이다. 단적인 경우를 사례로 든다면 학생들은 할리우드가 만든 특별히 유난스러운 블록버스터를 영화의 전부라고 믿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영화에 대한 이러한 편식은 일반인들에게도 심심치 않게 나타난다.
영화라고 하면 극장에서 상영하는 할리우드 대형 제작사의 2시간짜리 상업 영화를 전부라고 믿는 시각에 대해 교정의 필요성을 항상 느껴오다가, 몇 년 전부터 학생들에게 낯선 단편 영화들을 상영하는 영화제를 추천하는 방법을 발견해냈다. 지난달 24일부터 29일까지 ‘영화의전당’과 ‘산복도로 옥상달빛극장’에서 열린 제36회 부산국제단편영화제가 그 영화제이다.
단편영화 미학적 완결성 지녀
세상에 대한 독립된 관점 제공
제36회 부산국제단편영화제 열려
단편영화 의미·가치 음미하는 축제
영화의 다른 모습과 개성 인정해야
단편영화(short film)는 그 명칭에서도 확인되듯 짧은 상영 시간을 간직한 영화를 가리킨다. 제작 측면에서 보면 20분 내외의 짧은 상영 시간을 지닌 영화를 단편영화라고 할 수 있다. 분량으로만 따지면 단편영화는 대형 영화 제작의 어려움을 덜 기회로 여겨지기도 한다. 2시간이 아니라 20분이라면 일반인도 단편영화 제작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단편영화는 영화감독으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으레 통과하기 마련인 관문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2시간 분량의 장편영화(feature film)를 대번에 만들 수 없으니, 단편영화를 통해 연습하고 그 숙련도를 점검하며 경험과 실력을 쌓아 장편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논리가 통용되는 셈이다.
하지만 세계의 석학들이 바라보는 단편영화는 개념부터 이러한 중도적 규정과 차이를 보인다. 단편영화는 그 자체로 미학적 완결성을 지니며, 장편영화와는 다른 세계관을 지닌 독립된 장르로 격상되는 것이다. 두 장르 간의 차이는 단편소설과 장편소설의 차이로 대체 설명 가능할 것이다. 단편소설은 책 한 권 분량을 전제하는 장편소설에 비해서는 매우 짧은 분량을 차지하는 소설이다. 그럼에도 단편소설이 장편소설과 동일한 방식으로 창작되고 감상되는 것은 아니다. 단편소설은 찰나적인 순간을 잡아내는 데에 익숙하며, 짧은 시간에 삶과 인간에 대한 총체적인 인식을 담아낼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단편영화 역시 다르지 않다. 단편영화는 장편영화를 만들기 위한 숙련 과정만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독립된 관점을 자체적으로 성취해내는 완결된 형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길이가 짧다는 특징은, 시간의 단축이 아니라 긴 시간의 응축으로 간주해야 한다.
부산국제단편영화제는 단편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의 모임이다. 자신들이 만든 단편영화를 출품하고, 경쟁하고, 함께 보고, 그 의미와 가치를 음미하는 축제이며, 이를 통해 자신이 바라보고 만들어내는 세상의 또 다른 모습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게 이러한 단편영화는 낯선 장르일 뿐만 아니라 때로는 불필요하게 여겨지는 현실의 풍조는 이러한 의의를 퇴색하게 한다. 그렇다면 더 많은 사람이 단편영화를 요식이나 소모가 아니라, 영화 그 자체로 이해해 주는 날을 앞당길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부산이 진정 영화의 도시로 거듭나고자 한다면,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 역시 영화의 서로 다른 모습과 개성을 인정할 수 자세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마치 한국에 한국인만 사는 것이 아니라, 미국인도, 중국인도, 해외 국적을 가진 조선인도, 국적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도 함께 살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미 36년이나 된 유서 깊은 영화제가 37회에는 더 가까운 거리로 시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김남석
문학평론가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