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주의 맛있는 인터뷰] 간화선 도량 안국선원 개원 30주년 이사장 수불 스님
“간화선(화두를 들고 하는 선수행)은 바쁜 현대인에게 마음을 깨닫게 해 주는 방법”
개원 30주년을 맞는 부산 안국선원의 이사장 수불 스님은 “현대인에게 마음을 깨닫게 해 주는 가장 적합한 방법이 간화선 수행”이라고 말했다. 강원태 선임기자 wkang@
석가모니 부처의 가르침인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다. 깨달음이란 마음의 실상을 자각하는 일이다. 부처가 6년간 목숨을 건 고행을 감행한 것도 깨달음을 위한 방편이었다.
간화선(看話禪)은 돈오(頓悟)에 이르는 강력한 수행 방법이다. 부산 안국선원(부산 금정구 금단로 124)은 간화선 수행 도량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올해는 대한불교 조계종 안국선원이 개원한 지 30년이 되는 해이다. 안국선원 이사장인 수불 스님은 간화선 수행의 여실한 선승으로 이름이 높다.
선원 개원 30주년 기념사업 추진
간화선 책 발간·수불미술관 개관도
현대인에게 가장 적합한 수행법이자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힘’ 얻게 돼
혼자 수행하는 것보다 스승 도움 커
초연결 사회에도 긍정적 영향 끼칠 것
종교는 수단이지 절대 목적이 아니야
깨달음 없이 맹신하게 하는 것은 문제
종교는 보편적 가치관을 이야기해야
부처님오신날(12일)을 앞두고 부산 안국선원에서 수불(66) 스님을 만났다. 스님은 “간화선은 바쁜 현대인들이 가장 빠른 시간에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수행 방법”이라고 말했다. 특히 스님은 “종교는 깨달음을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며 맹신주의를 경계했다.
-선원 개원 30주년의 감회를 말해 달라.
“세월이 너무 빨리 흘러갔다. 많은 사람들에게 간화선을 알리고 수행할 수 있도록 한 데 큰 보람을 느끼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스님은 30주년 기념사업으로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간화선 관련 책을 발간하고, 특히 수불미술관을 개관할 예정이라고 공개했다.
-안국선원을 개원한 동기는?
“딱 잘라 말하긴 곤란한데, 처음으로 세상에 선불교를 선보이는 기회를 가져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 1~2년은 무진장 고생했는데, 다행히 인연이 되어서 그런지 (간화선이) 먹혀들었던 것 같다. 현장에서 내 스스로도 새롭게 눈을 뜨게 돼 감사함을 느낀다.”
-안국선원이 간화선 수행 도량으로 확고한 자리매김을 했는데, 성공 요인은 뭐라고 생각하나?
“현실 속에서 일과 공부가 둘이 아닌 수행 방법을 제시했다. 사람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수행에 대한 어떤 목마름이 있고, 그것을 생활 속에서 해소할 수 있는 방법론이 간화선 속에 있으니까…. 인연도 맞아떨어졌고.”
안국선원의 규모를 알려 달라는 요구에, 스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사월 초파일에 연등 3만여 개를 켜는 정도다.” 안국선원은 부산을 비롯해 서울, 창원 등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 미국 등 해외에도 선원을 거느리고 있다. 함양, 진주, 영주 등에 사찰도 경영하고 있다.
-도대체 간화선이 뭔가?
“간화선은 마음을 깨닫게 해 주는 방법이다. 마음을 깨닫게 해 주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현대인에게 가장 적합한 수행 방법이 간화선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이 문제라는 말씀인데.
“그렇지, 마음이 문제지. 예를 들면 자기의 눈을 자기가 볼 수 있다고 생각하나?”
스님의 질문에 “내 눈은 내가 볼 수 없다. 거울을 통해야 내 눈을 볼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대답하자 스님의 답변이 이어졌다.
“그게 고정관념이다. 내가 내 눈을 봤기 때문에 (사물을) 볼 수 있는 거지, 내가 내 눈을 못 보고 어떻게 볼 수 있나. 사람들은 이미 내가 내 눈을 보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모르고 살고 있는 거야.”
내가 내 눈을 볼 수 있다? 기자는 의문을 가지고 질문을 이어갔다.
-마음도 마찬가지란 얘기인가?
“그렇지. 볼 수 있고 말고. 마음을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게 어리석음이지. 간화선은 본래 볼 수 있는 그 마음을 확인시켜 주는 거다. 마음을 깨닫게 되면 어떤 새로운 질서에 눈을 뜨게 되니까 삶이 풍요로워지고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프랑스 파리 기메박물관에서 간화선 강연을 하고 있는 수불 스님.
-흔히 간화선의 핵심을 화두라고 하는데.
“그렇지. 화두는 의심에 걸려들게끔 하는 거다. 의심을 타파한 사람이 의심을 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의심을 거는 게 화두다. 진짜 의심에 꽉 잡히면 의심을 안 할 수 없도록 돼 있어.”
-이때 의심의 정체는 뭔가?
“근원을 알려고 하는 어떤 입장에서 비롯된 의심을 말한다. 의심에 사로잡히면 별별 경계(방해)가 나타난다. 방해 받는 속에서도 의심 하나만 붙잡고 끝까지 의심이 깨질 때까지 모든 것을 참아 내면서 딛고 일어섰을 때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그때 화두는 깨지고 깨달음을 얻게 된다.”
스님은 우리가 평소 정신적 벽에 막혀 살고 있는데, 그 벽을 깨뜨릴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간화선이라고 부연설명을 했다. 화두가 깨어질 때 망치로도 못 깨는 정신적 벽이 깨진다는 것이다.
-참선수행 방법이 많을 텐데, 하필 간화선이어야 하나?
“부처님은 일체중생을 다 깨닫게 만드는 작업을 하신 분이다. 그 가르침을 통해서 무지몽매한 사람에서부터 빼어난 사람까지, 다 불성을 지니고 있으니까, 그 불성을 자각하게 하기 위해 더 큰 깨달음으로 거듭날 수 있게끔 길을 열어 보이신 분이 부처님이다. 그런데 그런 입장에서 상(相)을 얘기할 적에 간화선이 등장한다. 상을 깨닫게 만들 수 있는, 가장 접근된 수행 방법이 간화선이라는 얘기이다.”
-간화선 수행으로 생활에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신자들이 많은가?
“신자들을 무작위로 불러다가 물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얼마든지…. 당신이 직접 물어보면 된다.(웃음)”
-한 번 깨달으면 영원히 깨달은 상태가 되나, 아니면 이후에도 정진해야 하나?
“부처님은 한 번 깨닫고 영원한 깨달음에 들어갔지만, 일반 사람들은 여러 번 깨달아야 할 수도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고교, 대학교로 진학하는 이치와 같다. 깨달은 사람이 깨달았다고 하는 아상(我相)마저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럴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안국선원 미국 LA분원을 방문 중인 수불 스님.
-간화선 수행은 혼자서도 가능한가?
“스승에 의지하지 않고 본인이 깨달았다고 하는 것은 삿된 일일 수도 있고 한계에 직면할 수도 있다. 도대체 뭘 근거로 깨달았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혼자서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하지만 굉장히 깊이 들어가서 공부를 성취할 수 있는 어떤 힘을 가지려면 먼저 그 길을 간 길 안내자가 없으면 안 된다.”
- 간화선이 벼락같은 깨달음이라면, 부처님의 8만4000 법문은 다 필요 없나?
“그렇지는 않다. 필요하다. 선 속에도 교가 있고, 교 속에도 선이 있다. 예컨대 수보리존자도 두 번 깨달았다. 아라한과를 증득할 때 깨달았고, 또 아라한과를 증득해서 상(相)을 떨어뜨릴 때 다시 깨달았다. 그러면서 펑펑 울잖아(이를 체루비읍이라 한다). 이건 교를 통해 선을 증명하는 거다. 선도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힘이 나올 때 선·교가 한 덩어리로 합해지는 거지. 부처님이 깨닫지 않았으면 불교는 없는 거다. 아무리 부처님 가르침이 위대하다 해도 깨달음을 통해 그것이 전개됐기 때문에 알맹이가 있어서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는 거지.”
-기술정보(IT) 시대를 맞아 세계는 점점 초연결 사회로 가고 있다. 간화선이 인류의 미래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나?
“대안이 된다고 생각한다. 간화선을 체험하게 되면 변화하는 모든 것을 어느 정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또 간화선은 긍정하게 만든다. 부처님은 대긍정을 하신 분이다.”
-스님은 종교가 깨달음의 방편이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종교는 수단이지 절대 목적이 아니다. 종교를 믿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깨달음 없이 광신·맹신하게 만드는 것은 큰 문제다. 종교를 통해 거듭나게끔, 눈을 뜨게끔 해 줄 수 있는 힘이 종교 안에 있어야 한다. 종교는 어떤 보편적 가치관을 얘기해야지, 뭐 특수한 거나 굉장한 것을 얘기하는 것은 위험하다.”
-우리나라 종교에는 기복(祈福)적 요소가 강하지 않나?
“바람직한 건 아니지만, 수준이 그 정도밖에 안 되니까…. 앞에서 리드하는 사람들이 ‘약’을 잘 써야 한다. 조절을 잘하고 나중엔 약을 더 이상 안 쓰도 되는 그런 시대가 와야 한다. 구태의연하게 초등학교를 10년, 20년 다니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건 곤란하지 않나.”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뜻은 뭔가?
“인류 구원, 중생 구원이다. 온 우주법계의 모든 생명들이 깨어날 수 있는 가르침을 주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 부처님의 위대한 가르침을 제대로 소화해서 남한테 가르칠 수 있는 분들이 세상이 많이 머물렀으면 좋겠다.”
윤현주 선임기자 hohoy@busan.com
출가는 필연
출가 동기를 말해 달라는 요청에 수불 스님은 “인과 때문인지 필연적으로 절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더라. 그런데 범어사에 들어오고 보니 마치 전생의 내 집에 온 것처럼 편안하고 공부가 잘 되더라”라고 회고했다.
부산 안국선원에선 매달 음력 초하루와 보름에 수불 스님이 설법하는 정기법회를 연다. 하지만 수불 스님은 특별한 일정이 없는 한 매일 오전 11시 법문을 전한다. 스님이 어디에서 법문을 하든 원격 화면을 통해 부산, 서울, 창원 등 타 지역 안국선원에서 동시에 들을 수 있다.
수불 스님한테서 간화선 수행 지도를 받으려면 정기법회 후 사무국에 연락처를 남기면 개별 지도 날짜가 통보된다. 부산 안국선원 051-583-0993~4.
윤현주 기자 hoho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