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자유한국당, 그리고 나의 커밍아웃
/차재권 부경대 정외과 교수
자유한국당의 역주행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한때는 분노한 국민의 눈치를 보느라 그들의 주군이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명하는 목소리 한 번 제대로 내지 못했던 그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국회의사당과 청와대, 광화문 앞은 물론이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좌파 독재, 문재인 Stop’을 외치고 있다. 결기에 가득 찬 일부 의원들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작은 물방울이라도 되겠다며 삭발 투쟁에 가담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으로만 보자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에 비해 지금 그들이 보여주는 행동은 몇 갑절은 더 단호하고 과격하며 폭력적이다.
한국당, 현 정부 “좌파 독재” 매도
탄핵 이전 회귀하려 흑색선전 혈안
“정당해산 청원 北 개입” 억지 주장
과거 ‘북풍’ ‘용공 세력’ 조작 판박이
북한 지령·사주 받은 세력이라고?
대부분 국민청원 사이트 자발적 동참
더 가관인 것은 국회를 쑥대밭으로 만든 그 정당에 대한 국민의 해산 청원이 120만 명에 이르자, 이번엔 그 청원이 북한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억지 주장을 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베트남 접속자 수가 10%를 훌쩍 넘었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물론 청와대와 언론에 의해 근거 없는 낭설로 판명되었고, 의혹을 제기했던 장본인도 이를 수긍한 바 있다. 그럼에도 보수 세력이 양산해 내고 있는 가짜 뉴스들이 여전히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난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실관계를 따져볼 필요도 없이 자명한 허위사실들이 왜 그들에겐 진실로 둔갑하는 것일까?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아집과 독선 때문은 아닐까? 그도 아니면 뻔히 거짓인 줄 알면서도 촛불과 탄핵으로 흩어진 집토끼를 부지런히 불러 모으기 위한 의도된 흑색선전인가?
그 정당의 의도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은 마음조차 솔직히 없다. 하지만 그런 정치적 마타도어가 초래하게 되는 결과는 결코 가벼울 수 없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누가 보아도 과거 그들이 즐겨 활용했던 근거 없는 북풍과 용공 조작의 또 다른 버전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당초 목표로 삼았던 집토끼들은 이번 ‘동물 국회’ 사태에 힘입어 하나 둘 떠났던 토끼 굴을 다시 찾아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10%대에서 30%대로 지지율이 급상승한 것이 그 구체적인 증거이다. 영남지역에선 이미 40%대의 지지율을 회복한 지 오래란 점도 그들을 고무하기에 충분하다. 누가 보아도 촛불과 탄핵 이전으로 정치적 지형이 회귀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결코 그렇지 않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불온한 발언과 정제되지 않은 그들의 언설은 평균적인 지각과 합리적인 사고를 지닌 보통 사람들에겐 쉬 납득이 가지 않는 언행이다. 촛불과 탄핵 정국의 격랑을 헤치고 민주주의의 정초를 다시 세운 자랑스러운 국민들에게 지금 문재인 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국정의 난맥상이 불편하고 미덥지 않을 순 있다. 하지만 그것이 ‘좌파 독재’를 운위할 정도의 민주주의 위기 상황으로 비칠 리 만무하다. 문재인 정부를 무능하다고 욕할 수는 있겠지만 ‘독재 정부’로 매도할 순 없는 것이다. 그런 국민의 일반적 정서는 봇물처럼 터진 청원 서명에서도 고스란히 확인되고 있다. 물론 이는 분노한 시민들이 한국당의 망동에 대해서 내리는 준엄한 경고를 담은 정치적 퍼포먼스에 지나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청원이 현실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하진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유한국당의 신경질적인 반응과 정치적 흑색선전은 번지수를 잘못 찾아도 한참은 잘못 찾은 것이다.
필자도 이 지면을 빌어 어렵사리 용기 내어 커밍아웃을 해보려 한다. 좀체 드러내놓고 정치적 입장과 견해를 밝히기를 꺼려온 필자가 ‘동물 국회’를 만든 한국당의 망동에 분노해 망설이고 망설인 끝에 스스로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를 찾았기 때문이다. 필자로선 한국당 해산 청원에 서명했다는 사실을 드러내놓긴 쉽지 않다. 사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양심적인 지식인과 학자들에게 이런저런 청원이나 탄원서 혹은 성명서에 동참을 요구하는 사례가 많았다. 하지만 그때마다 필자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가며 어느 한쪽의 입장을 택하기를 꺼렸고 늘 회색 지대에 스스로를 가두고자 노력했다. 한창 촛불이 타오를 때도 그 숱하게 많은 집회 중에 겨우 몇 차례 그것도 아내의 권유에 못 이겨 참여했을 정도로 생각은 앞서가나 행동은 굼떴다. 그랬던 필자가 행동으로 나서 청원에 동참하고 그 사실을 애써 독자에게 알리려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말하는 ‘좌경용공 세력’의 실체가 나 같이 겁 많고 소심한 보통 사람일 뿐이라는 점을 일깨우고 싶어서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그 어디에도 정용기 한국당 정책위의장이 적시한 ‘북한의 지령을 받은 세력’이나 나경원 원내대표의 ‘북적북적 정권’의 사주를 받은 영혼 없는 청원인은 없다. 그들이 이 사실을 애써 외면하는 순간, 자유한국당은 어쩌면 다음 총선을 통해 역사 속으로 사라져갈 운명에 처할지도 모른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