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에 멍들었던 ‘돌멩이’ 치유와 위로의 ‘보석’되다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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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쳐서 헤매고 있을 때 나를 도와줬던 고마운 빛들…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김동민(15) 군이 초등학교 4학년 때 쓴 ‘나의 빛들에게’ 시의 한 구절이다. 학교 폭력과 ‘외로운 싸움’을 할 때 위로가 되어 준 ‘빛’에게 자신의 심경을 고백한 시다.

학교 폭력 피해자 김동민 군 ‘아픈 과거’ 시로 써내

“외로운 싸움 이어가는 피해자들에게 힘 주고 싶어”

부산의 한 ‘학교 밖 청소년’이 지우고 싶은 ‘아픈 과거’를 담은 시집을 발간했다. 교과서 귀퉁이, 휴지통에 버려진 일기장 등에 적힌 100여 편의 시를 엮어 공개한 것이다. 김 군은 “학폭 피해자는 위로와 힘을 얻고, 가해자는 학폭을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김 군은 일명 ‘일진’이라 불리는 형들에게 구타와 괴롭힘을 당했다. 당시 김 군 어머니가 적극 나서 가해자 부모님이 사과까지 했지만, 그 이후에도 보복은 계속됐다. 이로 인해 이후 김 군은 우울증과 공황·불안 장애를 앓았고, 8개월가량 정신과 치료도 받았다. 그럼에도 그때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 김 군은 고등학교 1학년 때인 지난달 결국 학교를 그만뒀다. 당시 부모님의 거듭 만류에도 김 군은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며 자퇴를 결정했다.

이처럼 잊고 싶은 기억을 시에 담아 공개하게 된 것은 김 군 어머니의 역할이 컸다. 김 군 어머니는 우연히 김 군 가방 안에서 ‘돌멩이’ 시가 적힌 구겨진 도화지를 발견했다. 학폭 피해를 당하며 느낀 어두움, 불안, 외로움 등을 길가의 돌멩이에 빗대어 표현한 시다.

이 시를 본 김 군 어머니는 마음 한 켠이 쓰라리면서도, 아들이 손수 쓴 시를 버릴 수 없었다. 오히려 뛰어난 표현력에 ‘아픈 감동’을 느껴, 곳곳에 버려진 나머지 시까지 찾아 나서 100편을 모았다. 그리고 지난달 30일 ‘하늘을 보고 싶은 날’이라는 첫 시집을 발간했다. 김 군도 다른 학폭 피해 학생 치유에 쓰이기를 바라며 시집 발간에 동의했다. 김 군 어머니는 시집을 학교 상담 교사 등에게 배포해 학교폭력 예방 교육에 쓰이도록 할 계획이다.

김 군 어머니는 “김소엽, 박인혜, 한상이 시인 등이 직접 출판사를 알아봐주고, 해운대구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 해운대구청 등에서 격려를 해준 덕에 시집을 낼 수 있었다”면서 “동민이도 자신의 시가 공익에 쓰인다는 것에 기뻐하고 자신감도 생겼으며, 이제는 가해자도 용서했다”고 말했다.

해운대구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 김소영 센터장은 “다음 달 작은 ‘사람책 콘서트’를 열어 시집 발간을 축하할 계획”이라면서 “지금은 동민이가 센터 내 교사, 멘토 형·누나 등과 여러 프로그램을 함께 하며 충실히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승훈 기자 lee88@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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