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선] ‘젓가락 정신’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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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교 시인

지금 여기 사는 사람들의 삶이 여러 가지로 고단한 중에도 낭보가 불쑥불쑥 날아들고 있다.

그중 최근에 가장 우리를 감동케 한 낭보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이리라. 그 어렵다는 칸 영화제 심사의 벽을 뚫은 영화. 그런데 그 영화를 보니, 첫 장면이 ‘양말 걸이’로부터 시작되는 게 인상적이다. 그 양말 걸이는 반지하 방 창가에 걸려 있는 양말 걸이라는 것이 천천히 밝혀지고, 반지하 방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흐린 창처럼 천천히 조명되기 시작한다. 그런데 여기서 양말 걸이와 흐린 유리창은 참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준다. 특히 양말 걸이는 흐린 유리창 안에 사는 사람은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라는 점을 강렬하게 부각한다.

봉준호 감독 성공 같은 잇단 낭보에

혼자 이룬 ‘1인 신화’ 깨는 듯해 흐뭇

‘함께’ 의미 강한 ‘젓가락 정신’ 살려서

계층 갈등·양극화 문제 등도 극복을

확실히 우리 사회에는 이제 옛날과는 다른 바람이 불고 있다. 그전에 우리의 젊은이들이 세계에 화려한 꽃으로 끼어든 분야는 대체로 혼자 하는 것들이었다. 예컨대 세계적인 이름을 얻은 음악가를 보면 대체로 바이올리니스트라든가, 첼리스트, 바리톤, 소프라노, 피아니스트 등 혼자 연주하는 곡 분야였다. 세계적인 ‘메달’을 획득한 체육계 분야도 마라톤으로부터 시작해서 체조, 양궁, 스케이트 등 대체로 혼자 하는 분야였다. 영화에서조차도 ‘신데렐라’처럼 1인의 주연 배우들이 나타나기 마련이었다. 혼자, 고독하게, 라면을 먹거나 혹은 열악한 조건에서 버티는 정신적인 힘으로 잘 감내한 결과물이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최근의 낭보를 보면 그런 1인의 신화가 깨어지고 있는 것을 보지 않을 수 없다. 우선 K팝만 해도 그렇고, 방탄소년단의 노래도 그렇고, 축구도 그렇다. 이 말을 다시 하자면 혼자 하는 것보다 함께할 때 우리의 체육, 우리의 음악, 우리의 영화는 더 큰 힘이 생겨서 세계적인 성과를 얻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거다. 보다 깊이 말하자면 다수가 함께하는 것이 우리의 체질에 더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칸 영화제에서 수상한 봉 감독이 시상식에서 무릎을 꿇고 배우 송강호에게 꽃다발을 바쳤다는 이야기도 바로 그런 면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유럽 사람들이 그러한 장면을 보면서 내심 얼마나 놀랐을까 짐작된다. 결코 이 영화는 나 혼자 만든 것이 아니라는 봉 감독의 확고한 의식이 그 무엇보다 강하게 드러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봉 감독이 특별한 감독으로 생각되는 것은 이런 우리의 미덕을 유럽인들의 판에 가서 펼쳤다는 점일 것이다.

우리 예술의 특징인 흥 또는 신명이라는 것도 그 내용을 보면 혼자의 흥이 아니며 혼자의 신명이 아니다. 여럿의 그 무엇이 그 흥을 이루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야기를 더 확장한다면 민주주의라는 것도 사실 우리에게서 발상했다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여겨진다. 화랑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되는 민주의 정신은 조선조의 오랜 정체와 식민지 시대 왜곡을 거치면서 많은 부분 변질한 것이라는, 확신마저 든다. 그래서 ‘젓가락을 쓰는 한국인은 무척 재주가 많고 머리가 좋으나, 모두 저 혼자 잘난 바람에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우리들 스스로’ 많이 하게 된 것이 아닐까. 그러나 젓가락 정신이야말로 하나 이상 둘이 움직여야만 가능한 것이 아닌가. 이제 그런 우리의 ‘함께’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느낌이다. 우리의 젊은이들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협업의 정신을 역사로부터 계승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봉 감독 영화에 쏟아진 유럽인들의 찬사가 보여주는, 소위 계층 간의 문제, 나아가 양극화라는 문제가 우리만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한 사람’만을 중시하던, ‘한 사람’이 잘하는 것만을 능사로 알던, 그런 갑갑한 현상에서 벗어나자. 우리는 함께 사는 것이며, 함께 이루는 것이며, 그런 ‘함께’가 완성될 때 세계는 우리의 힘에 더 열광하게 될 것임을 생각하자.

이제 시대는 서서히 변화되고 있음을 실감한다. 젊은이들은 기성세대가 놓친 힘을, 그동안 잊고 있었던 다락에서, 벽장에서 꺼내어 햇빛 아래로 가져오고 있다. 봉 감독이 ‘냄새’로써 표현하려고 하는 미묘한 계층 간의 갈등도, 이런 다수의 젓가락 정신이 되살아날 때 자연히 해결되지 않을까. 민주주의 발상지는 서양이 아니라 우리라는 것이 증명되리라고 생각한다. 오늘의 한국인은 그런 한국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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