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주의 맛있는 인터뷰] 글로벌 지식전도사 김성희 ‘보이스 프롬 옥스퍼드’ 대표

윤현주 기자 hoho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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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 지식과 지혜는 독점할 게 아니라 공유해야”

김성희 ‘‘보이스 프롬 옥스퍼드’ (VOX) 대표는 VOX 설립 멤버이자 10년간 이끌어 온 주인공이다. 그는 “디지털 시대에 지식과 지혜는 축적 아닌 공유의 대상”이라고 밝혔다. 김성희 ‘‘보이스 프롬 옥스퍼드’ (VOX) 대표는 VOX 설립 멤버이자 10년간 이끌어 온 주인공이다. 그는 “디지털 시대에 지식과 지혜는 축적 아닌 공유의 대상”이라고 밝혔다.

50살에 세계적인 명문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에 입학해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만학도 김성희(68·여) 박사. 김 박사는 ‘글로벌 지식 전도사’라 불린다. 옥스퍼드대 밸리얼 칼리지에 적을 둔 지식 공유 프로그램인 ‘Voices from Oxford’를 설립, 10년간 대표(디렉터)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김 박사는 일흔을 앞둔 나이에도 영국과 한국, 중국을 부지런히 오가며 세계적인 석학들을 섭외·인터뷰하고 이를 전 세계에 전파하기 위해 열정을 불사르고 있다. 김 박사는 CBS TV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 출연, 청중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은 명강의로도 유명하다. 그의 유튜브 동영상은 조회수 40만 회에 육박하고 있을 정도. 평범한 주부에서 늦깎이 대학원생을 거쳐, 명영어강사, 베스트셀러 작가, 지식 전도사 등으로 변신을 꾀해 온 그의 삶은 드라마틱하다.

옥스퍼드대 석학·글로벌 리더 인터뷰해

내용을 웹·SNS로 공유하는 게 ‘VOX’

데니스 노블·빌 더튼 교수와 식사 중

내가 제안해 2009년 설립, 대표 맡아

일반인도 쉽게 이해하는데 초점 맞춰

해당 분야 비전문가를 인터뷰어로 선정

‘티 톡스’는 VOX보다 짧은 지식 공유

미국 TED의 유럽 확장판이라 할 만해

50살에 입학해 4년 6개월 만에 석·박사

처음엔 미운 오리 새끼처럼 왕따 당해

파티서 신나게 춤췄더니 백조로 변신

예순 넘어도 댄스대회 금 8개 딴 실력

버킷리스트는 억지로 찾을 필요 없어

지금 하는 일을 버킷리스트로 만들면 돼

기자는 최근 영국 여행 도중 짬을 내 옥스퍼드로 그를 만나러 갔다. 한국에서 이틀 전에 돌아왔다는 그는 시차 탓인지 다소 피곤한 기색이었으나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금세 열정적인 모습을 되찾았다.

-‘보이스 프롬 옥스퍼드’(VOX)가 뭔지부터 설명해 달라.

“옥스퍼드대 내의 석학들뿐만 아니라 이곳을 찾는 글로벌 리더들을 인터뷰해서 그 내용을 웹사이트(www.voicesfromoxford.org)나 SNS에 올려 전 세계인이 공유하도록 하는 지식 공유 인터넷 매체이다.”

기자, 김 대표, 세계적 석학인 데니스 노블 교수가 자리를 함께했다. 김성희 제공 기자, 김 대표, 세계적 석학인 데니스 노블 교수가 자리를 함께했다. 김성희 제공

-어떻게 대표를 맡게 됐나?

“옥스퍼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과 영국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었는데, 2008년 가을 옥스퍼드대 최고의 석학인 데니스 노블 교수, 그리고 당시 옥스퍼드대 인터넷연구소 소장이던 빌 더튼 교수와 식사를 하게 됐다. 그 자리에서 내가 옥스퍼드처럼 우수한 학문을 가르치는 대학이 왜 지식을 공유할 생각을 하지 않느냐며 안타까움을 피력했고, 두 분이 적극 호응하면서 VOX를 만들기로 의기투합했다. 제안자인 내가 자연스럽게 대표가 됐다.”

2009년 VOX를 발족시킨 김 박사는 지금까지 대표를 맡고 있다. 김 박사는 1987~1993년 EBS TV에서 BBC와 옥스퍼드 영어 프로그램을 진행한 경험이 VOX를 설립하고 이끌어 오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VOX 운영의 원칙 같은 게 있나?

“일반인들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원칙은 인터뷰어를 해당 분양의 비전문가 중에서 정한다는 점이다. 가령 의학 전문가가 인터뷰이라면 인터뷰어는 경제나 인문 분야의 에디터로 선정하는 식이다. 영국의 학문은 통섭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VOX에는 10명의 석학들이 에디터로 참여해 인터뷰어로 나설 뿐만 아니라 펀드도 모으고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댄다. 김 박사는 “이들이 강연차 세계 각지로 가면 알아보는 사람들지 적지 않을 정도로 VOX가 많이 알려졌다”며 은근히 자랑했다.

-지식과 지혜의 개념이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하나?

“그렇다. VOX를 하기 전에는 지식과 지혜는 축적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VOX를 운영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디지털 시대에 지식과 지혜는 특정인이 축적하거나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공유해야 하는 대상임을 인식하게 됐다. 그것이 인류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영향력 있는 미디어들도 VOX를 많이 공유하고 있다.”

'티-톡스' 강연 장면. 김성희 제공 '티-톡스' 강연 장면. 김성희 제공

-최근 론칭한 ‘티 톡스’(T-talks)도 화제인데.

“티 톡스는 VOX보다 더 짧은 지식 공유 매체로, VOX의 보완재라고 생각하면 된다. 미국판 TED의 유럽 확장판이라고 할까. 한국과 중국을 적극 연계하는 방안을 모색 중에 있다.”

-늦은 나이에 어떻게 옥스퍼드로 유학을 떠나게 됐나?

“1979년 남편이 '박사 후 방문연구원' 자격으로 옥스퍼드대에 부임할 때 같이 갔다. 당시 아무런 준비 없이 옥스퍼드대 대학원에 지원했다가 떨어졌다. 그 뒤 1990년부터 옥스퍼드대 한국사무소 대표로 있으면서 옥스퍼드와 계속 인연을 맺어 왔는데, 한 교수가 나의 학회 발표 자료를 눈여겨보고 같이 논문을 쓰자고 '꼬드겨' 도전하게 됐다. 아이들을 다 키우고 나서 찾아온 공허함도 한 몫을 했다.”

김 박사는 1차 도전에는 실패했다고 한다. 재도전 끝에 대학원 입학을 허가 받았으며 각고의 노력 끝에 4년 6개월 만에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김 박사의 남편은 엄융의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로, 심장생리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박사학위 졸업식 때 지도교수와 함께. 김성희 제공 박사학위 졸업식 때 지도교수와 함께. 김성희 제공

-만학도로서 어려움은 없었나?

“당연히 있었지. 공부 자체보다 자식보다는 어린 학생들과 어울리는 게 힘들었다. 처음엔 일종의 왕따를 당했다. 그런데 춤이 나를 구원해줬다. 옥스퍼드대에선 종종 파티가 열리는데, 어느 날 내가 속한 엑스터 칼리지 대학원생들의 보트 파티에 가게 됐다. 나는 친구 케이트와 무대에 나가 로큰롤에 맞춘 자이브를 신나게 추었다. 순간 파티는 토론 분위기에서 댄스 분위기로 돌변했다. 그날 이후 나는 미운 오리 새끼에서 아름다운 백조로 날아올랐다.(웃음)”

그는 우연히 댄스 동아리에 가입했으며, 이후 춤의 세계에 빠져 '댄싱 퀸'에 등극했다고 한다. 60살이 넘은 나이에 20대 남자 후배와 짝을 이뤄 아마추어 댄스대회에 나갔으며, 왈츠·퀵스텝·탱고·폭스트롯 등 4종목의 금메달을 땄다. 그는 내친김에 지난해에 다시 대회에 출전, 라틴댄스 등 새로운 4종목을 석권했다. 요즘도 매주 사나흘은 춤에 빠져 산다고 했다.

-원래 영어를 잘했나?

“대학(이화여대)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는데 그렇게 뛰어나진 않았다. 내가 영어에 눈을 뜬 것은 순전히 영국에서의 생활고 때문이었다. 1979년 남편이 옥스퍼드에 오자마자 장결핵에 걸려 사경을 헤매게 됐다. 의사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경고했다. 큰 충격을 받았다. 이러다 내가 가장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어 생계 방편으로 영어를 미친 듯이 공부했다. 2년 뒤 귀국해 대학과 방송국 등에서 영어를 가르치게 됐다.”

-당신의 저서 〈나는 어제보다 오늘이 좋다〉를 보면 독특한 '인생철학'을 개진하고 있는데.

“나는 버킷리스트를 만들지 말라고 주문한다. 억지로 버킷리스트를 찾기보다 내가 하는 일을 버킷리스트로 만들면 더더욱 살 만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어떤 상황이든 내 선택이 최고라고 믿어야 그 일을 즐기게 되고 잘하게 되는 법이다. 지금 주어진 순간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어느덧 한 발짝 나아가게 되는 것이 인생이다. VOX를 통해 세계적 석학들을 인터뷰해 보면 이들은 한결같이 거창한 미래보다 눈앞에 주어진 순간을 더 소중히 여기더라. 미래만 생각하다가 소중한 현재를 놓쳐버리게 되니까.”

-꿈을 접은 중년 여성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나는 여자니까, 엄마니까, 나이가 들었으니까…. 우리는 살면서 무수한 '룰'을 정해 놓는다. 불필요한 룰이다. 세상의 꽃들이 한 번에 피었다가 한 번에 지는 것이 아니듯, 사람도 저마다 날개를 펴는 시점이 다를 뿐이다. 그건 자신의 노력과 의지로 정해진다.”

-한국의 대학들은 학령인구의 급감으로 위기에 처해 있다. 살길은 뭐라고 보나?

“두 가지 상반된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대학의 본령에 충실하는 것이다. 특히 융합과 통섭이 가능한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열린 캠퍼스를 지향하는 것이다. 아카데믹한 인재양성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훌륭한 성과를 낸 인재를 과감하게 대학으로 데려와야 한다. 또 40대 이상의 잠재적 학생들에게 재교육을 할 수 있는 장으로 거듭나야 한다.”

-한국의 청년실업이 심각한데.

“영국에서는 프리랜서나 아르바이트 자리도 다 직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너무 정규직에만 매달리는 것 같다. 영국에선 인턴십이 매우 중요하다. 돈 안 받는 한이 있어도 좋은 데서 인턴십을 하면 나중에 좋은 직장을 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최저임금 때문에 젊은이들이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놓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마지막으로 ‘영어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학창시절 10년 이상 영어를 공부하고도 늘 주눅이 들어 있다. 시험 위주의 영어공부를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그럴 필요가 없다. 프랑스 사람들이 프랑스 액센트로 영어를 하면 굉장히 매력적이다. 한국 사람들도 코리안 액센트로 영어를 해도 문제가 없다. 언어는 소통이 중요하다.”

옥스퍼드(영국)/글·사진=윤현주 선임기자 hohoy@busan.com


옥스퍼드인 사로잡은 '춤과 열정과 온정'

댄스 파트너인 20대 남자 후배와 함께. 김성희 제공 댄스 파트너인 20대 남자 후배와 함께. 김성희 제공

김성희 ‘보이스 프롬 옥스퍼드’ 대표는 옥스퍼드대학교 안에서 ‘써니’’로 통한다. 써니라는 애칭에는 그에 대한 옥스퍼드인들의 깊은 신뢰와 애정의 감정이 이입돼 있다. 김 대표는 자신만의 쾌활함과 다정함으로 옥스퍼드 특유의 학구적 분위기와 무뚝뚝함의 세계에 균열을 내며 분위기 메이커로서 역할도 하고 있다.

기자가 옥스퍼드를 찾은 날 밸리얼 칼리지(Balliol college) 수위실의 나이 지긋한 수위는 그렇게 친절할 수가 없었다. 알고 보니 김 대표가 미리 귀띔해 둔 덕분이었다. 김 대표는 자신보다 높은 사람들에겐 선물을 하거나 잘 보이려고 하지 않지만 수위, 정원사, 청소부 등 음지에서 일하는 분들에겐 최대한 베풀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춤과 열정뿐만 아니라 한국인 특유의 온정이 콧대 높은 옥스퍼드인들을 사로잡은 요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밸리얼 칼리지에서 한 컷. 김성희 제공 밸리얼 칼리지에서 한 컷. 김성희 제공


윤현주 기자 hoho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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