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효상의 전세계 수도원 순례기

이준영 선임기자 gap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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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승효상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승효상은 부산 피란민 주거지에서 태어나 교회 마당을 놀이터 삼아 자랐다. 그는 또 교회 골방을 공부방 삼아 성장했다. 그렇기에 찬송과 기도 소리는 그에게 일상이었다. 신과 신앙에 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방황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로마에서부터 파리까지 50여 곳

전부 흑백사진 사용 경건함 강조

이런 성장기를 거친 승효상은 신학자를 꿈꾸었으나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건축의 길로 들어선다. 그래서 그의 건축에는 늘 종교의 사유를 배어있다. 이는 자본주의와 상업주의에 맞서는 ‘빈자(貧者)의 미학’이라는 건축 철학으로 발현한다. ‘하양 교회’ ‘명례성지’ ‘사유원’ 등 종교 건물 건축으로도 이어진다.

승효상은 이제 종교와 건축이 어우러진 수도원 순례에 나선다. 〈묵상-건축가 승효상의 수도원 순례〉는 이러한 건축 여행 에세이이다. 〈묵상…〉은 승효상이 최초로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긴 호흡으로 써 내려간 책이다.

이 책은 이탈리아 로마에서 프랑스 파리까지 종교 건축물을 찾아다니며 사색한 기록을 담았다. 아울러 이전 여행 때 방문한 그리스, 아일랜드, 티베트 등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이를 합치면, 30여 개의 도시와 50여 곳의 건축적 장소에 관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한국 기독교의 문제 또한 고민하고 성찰한다. 독자는 이 책으로 기독교사를 이해하는 동시에 비판적으로 사유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는 종교 건축물은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렐만하다. 저자가 르코르뷔지에 최고의 작품이라 평하는 라 투레트 수도원, 르코르뷔지에가 ‘진실의 건축’이라 칭한 ‘르 토르네 수도원’, 현대 건축사에서 위대한 족적을 남긴 롱샹 성당, 1천년 만에 최초로 내부를 공개한 그랑드 사르트뢰즈 수도원이 독자 앞으로 다가온다. 수도원 화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풍부한 사진들도 볼거리이다. 종교 시설의 경건함을 부각하기 위해서인지 전부 흑백사진으로 편집한 것도 눈에 띈다.

이 순례기는 실용적인 면에서도 유용하다. 저자가 실제로 이용한 수도원 여행책자, 여행사 정보 ,지도 등을 구체적으로 수록해놓았기 때문이다. 승효상 지음/돌베개/ 520쪽/2만 8000원.

이준영 선임기자 gapi@


이준영 선임기자 gap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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