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말고 취업 준비해’ 관행으로 얼룩진 대학 ‘유령강의’

kwa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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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부산 동아대학교 학사관리팀 앞으로 한 학생이 쓴 익명의 편지가 도착했다. 편지에는 “A학과 4학년 전공필수 강의가 기존 계획과는 다르게 엉터리로 진행된다. 대학이 이런 식이면 안 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해당 강의는 기존 계획에 따르면 월요일과 수요일 주 2회 75분 강의로 이뤄져야 하지만 올 3월부터 현재까지 주 1회 강의만 진행돼 왔다. 해당 강의는 A학과를 졸업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강의다.

동아대 한 학과 4학년 주 2회 과목

‘취업 배려’ 관행으로 1회만 수업

부산대에서도 ‘자율학습’ 명목

수업계획서 제출만으로 출석 인정

“비싼 학비 내는데 면학 망친다”

“취업난, 어쩔수 없는 현실이다”

학생과 교수들 의견도 엇갈려

학생 신고를 접수한 동아대 측은 A학과 교수를 상대로 사실관계를 거쳐 기존 계획과는 다르게 강의가 진행됐음을 확인했다. 해당 교수는 4학년 학생들의 ‘취업 배려’ 차원이었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학교 측은 오는 22일 정규 학사일까지 수강생을 대상으로 보충 강의를 시행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그 결과 이 강의를 듣는 학생 30여 명에게 ‘하루 11시간 강의’ 일정이 주어져, 학생들의 반발이 속출하고 있다. 해당 학과 학생 B 씨는 “강의 시작 때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취업 준비 ‘관행식’으로 배려해 주겠다는 인식이 공유됐었다”며 “일부 학생 반발이 있기도 했지만, 합의된 사항”이라고 토로했다. 최근 이 같은 ‘유령 강의(수업만 있고 학생과 교수가 없는 강의)’는 대학의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 대학 고학년 강의 대부분이 형식적인 ‘반쪽 강의’로 전락하면서 대학의 본질이 퇴색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취업을 위한 대학’과 ‘학문을 위한 대학’ 사이에서 의견이 팽팽한 가운데 학계에서도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부산대학교 C학과 4학년 전공선택 강의의 경우 ‘자율학습’이라는 명목으로 출석 없이 수업계획서를 매주 제출하는 것만으로도 출석을 인정하고 있다. 기존 학사 일정에 전공 강의로 등록돼 있는데도 강의가 빠져 있는 셈이다. 학교 측은 취업 설명회, 입사 시험 등 고학년을 배려하기 위한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학생 반발이 큰 실정이다. 부산대 재학생 C 씨는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수백만 원에 이르는 학비를 내고 있는데도 자율과 배려라는 허울 아래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가 무너지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른바 유령 강의를 두고 교수들의 입장도 엇갈리고 있다. 신라대학교 교육학과 강정찬 교수는 “대학에서는 학문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러 학교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학사 일정 관리에 엄격하고 체계적으로 임하고 있다”며 “이처럼 문제 되는 학과 강의의 경우 ‘관행식 단축 강의’보다는 학생을 위한 학문적 강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교수는 “배움의 가치가 학생 취업에 밀려난 것은 슬픈 일이지만, 최근 닥친 극심한 취업난에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며 “최근 사회적 변화에 맞춰 대학이 유동적으로 움직여야 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동아대학교 김병남 총학생회장은 “4학년 학생들이 배려식 단축 강의나 취업 강의 등을 반기는 경향이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학생의 합의가 필수적인 것”이라며 “교수와 수강생들 간의 의견이 100% 맞아떨어져야 취업난 속에서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한 ‘배려식 강의’라고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곽진석·박혜랑 기자 kwa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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