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에 살아 숨쉬는 해학의 재발견

백태현 선임기자 hy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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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로 보는 한국의 미의식2:해학/최광진

신윤복 ‘주유청강’, 18세기 후반. 신윤복 ‘주유청강’, 18세기 후반.

〈미술로 보는 한국의 미의식 2: 해학〉은 한국미술을 ‘해학’이라는 미학적 관점에서 통찰한 해학의 미술사

라고 할 수 있다. 기획 시리즈 1권 ‘신명’에 이어 ‘해학’을 주제로 한 두 번째 이야기로, 고대부터 현대까지 우리 미술 작품들 속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해학의 전통과 정신적 가치를 세밀하게 조명한다.

민화·풍속화에서 현대미술까지

180점 넘는 미술 작품 소개하며

익살·유머의 가치 새롭게 조명

중국·일본·서양 작품과 비교 통해

한국미술 미의식·독자성 재인식

부조리한 현실 대처 ‘지혜’도 배워

책에 실린 180여 점의 미술 작품과 그 해설을 따라가다 보면, 한국인이 얼마나 해학이 많은 민족인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또 그것이 예술 창작의 동력이 되어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이 책을 통해 본성에서 우러나는 유쾌한 웃음을 만날 수 있고, 부조리한 현실에 대처하는 해학의 지혜와 유머를 배울 수 있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1장에서는 귀면 기와와 장승, 사천왕상 등 민속신앙이 배어 있는 작품들 속에서 악을 징벌하면서도 포용하려는 한국 특유의 해학적인 표정을 읽어낸다. 2장에서는 윤두서 김홍도 신윤복 김득신으로 이어지는 조선 풍속화에 담긴 해학을 서양의 리얼리즘과 비교해 설명한다.

3장에서는 인간의 소박한 꿈과 낙천적인 유희본능이 담긴 민화를 현대미술의 관점에서 재조명한다. 4장에서는 이중섭 장욱진 이왈종 주재환 최정화 등과 같은 현대 작가들의 작품에서 한국 특유의 해학이 어떻게 계승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한국미술을 미학적으로 조명하면서 주변 국가인 중국과 일본, 그리고 서양의 작품들과 비교를 시도해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비교는 한국미술을 흥미롭게 이해할 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세계미술사에서 한국미술의 독자성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한다.

특히 조선시대 풍속화를 서양의 리얼리즘의 관점에서 재조명하고 있는 점이나, 그동안 한국미술사에서 소외됐던 민화를 현대미술의 논의로 끌어올린 점은 주목할 만하다. 저자는 이를 통해 한국미술의 독자적인 자생력을 명징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회적 편견과 굳어진 관습을 타파하는 예술가의 자유로운 미의식이 우리를 감동케 함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다.

장 앙투안 바토 ‘키테라 섬의 순례’, 1717. 장 앙투안 바토 ‘키테라 섬의 순례’, 1717.

예를 들면 이런 부분들이다. 18세기 후반 작품인 신윤복의 그림 ‘주유청강(舟遊淸江)’은 녹음이 우거진 여름날, 병풍 같은 암벽 아래에서 양반 세 명이 배 안에서 기녀들과 풍류를 즐기는 장면이다. 저자는 이 작품을 서양의 로코코 작가인 장 앙투안 바토의 ‘키테라 섬의 순례’(1717)와 비교해 설명한다. 사회적 금기에서 오는 긴장을 드러낸 신윤복의 작품과는 달리 바토의 작품은 귀족의 향락적인 문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책가도’ 19세기. ‘책가도’ 19세기.
르네 마그리트 ‘개인적 가치’, 1952. 르네 마그리트 ‘개인적 가치’, 1952.

민화로는 책을 넣어두는 ‘책가도’(19세기)를 편견과 관습 타파의 자유로운 미의식을 보여주는 사례로 든다. 책의 비중이 줄어들고 청동기와 문방구, 과일과 식물로 가득 채워져 있는 책가도다. 이 책가도는 그림 속 기물의 내용이 관습을 어리둥절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기물이 실제의 크기와 위치에서 벗어나 낯선 결합을 이루고 있다. 바로 그런 점에서 르네 마그리트의 초현실주의 데페이즈망 기법을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마그리트의 작품 ‘개인적 가치’(1952)도 이질적인 사물들을 병치하고 크기를 변형하여 ‘친근한 것을 기묘한 것으로 복귀’시키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중섭 ‘춤추는 가족’, 1950년대. 이중섭 ‘춤추는 가족’, 1950년대.
앙리 마티스 '춤', 1909~10. 미술문화 제공 앙리 마티스 '춤', 1909~10. 미술문화 제공

현대 작가들의 작품 중에서 이중섭의 ‘춤추는 가족’(1950년대)과 앙리 마티스의 ‘춤’(1909~10)을 비교하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온가족이 함께 알몸으로 강강술래를 하며 놀고 있는 이중섭의 작품이 각자의 익살스러운 표정을 놓치지 않고 있다면, 발가벗은 5명의 여인이 손을 잡고 원을 돌며 춤을 추고 있는 마티스의 작품은 녹색·청색·황색의 평면으로 대상을 단순화하면서, 역동적인 춤의 동작을 극대화함으로써 다소 엄숙한 숭고함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한국미학 연구자인 저자는 서문에서 “해학의 미의식은 한국 특유의 자연친화적인 풍류사상과 만물 평등주의에서 비롯됐다”면서 “한국인의 DNA 속에 잠재된 해학의 정서를 회복하여 부조리하고 우울한 현대사회를 치유하는 백신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최광진 지음/미술문화/304쪽/1만 9000원.

백태현 선임기자 hyun@busan.com


백태현 선임기자 hy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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