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문화의 수도 안동] 선비혼 면면히, 낙동강 유유히

정상섭 선임기자 ver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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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대에서 바라본 하회마을 전경. 낙동강 줄기가 마을 앞쪽을 에스(S) 자 모양으로 크게 휘돌아 나가는 모습에서 하회(河回)라는 이름이 유래됐다. 부용대에서 바라본 하회마을 전경. 낙동강 줄기가 마을 앞쪽을 에스(S) 자 모양으로 크게 휘돌아 나가는 모습에서 하회(河回)라는 이름이 유래됐다.

경북 안동은 대한민국 정신문화의 수도라고 불릴 만큼 유교와 선비문화의 본향이다. 일제 강점기에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독립투사를 배출한 독립운동의 성지이기도 하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저항시인 이육사는 모진 감옥생활에서도 고향 안동을 그리며 항일 의지를 다졌다. 이번 여름방학에는 가족들과 함께 ‘편안한 동녘 마을’ 안동으로 떠나보자. 전통문화의 아름다움과 진정한 보수의 가치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英 여왕·왕자 감탄한 ‘하회마을’

양진당 등 유서 깊은 고택 많아

조선 유교 건축물 백미 병산서원

부용대 오르면 마을 전경 한눈에

독립유공자 10명 배출 ‘임청각’

일제, 마당 가로질러 철도 놓아

‘99칸 기와집’ 옛 모습 복원 결정

유학자 퇴계 이황 모신 도산서원

안동호 부교 선성수상길도 명소

하회마을, 부용대 그리고 병산서원

안동하면 하회마을이 떠오를 정도로 하회마을은 안동을 대표하는 여행지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1999년 하회마을을 찾아 생일잔치를 열었고, 올 5월에는 아들 앤드루 왕자가 20년 전 어머니 여왕이 걸었던 길을 따라 걸었다.

하회(河回)는 낙동강 물이 마을을 감싸 돌면서 흐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마을 앞쪽을 에스(S) 자 모양으로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과 깎아지른 듯 아찔한 부용대, 울창한 만송정 소나무 숲이 절경을 이룬다.

하회마을은 풍산 류(柳) 씨가 대대로 살아오던 전형적인 집성촌이다. 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전통마을로 인정받아 지난 2010년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마을 중심부에는 류 씨들이 사는 큰 기와집이 자리잡고 있다. 마을 중심부의 큰길을 기준으로 북촌과 남촌으로 나뉘며, 지금도 유서 깊은 고택들이 많이 남아있다.

대표적인 곳이 풍산 류 씨의 대종가인 북촌의 양진당, 임진왜란 때 ‘하늘이 내린 재상’이라 일컬었던 류성룡의 종택인 남촌의 충효당이다. 충효당의 바깥마당에는 영국 여왕과 아들 왕자의 방문을 기념하는 ‘로열 웨이’(왕의 길) 표시와 함께 기념식수가 심어져 있다.

하회마을 가운데 자리잡은 삼신당에 소원을 비는 종이들이 달려있다. 하회마을 가운데 자리잡은 삼신당에 소원을 비는 종이들이 달려있다.

하회마을 한가운데 골목길에는 수령 600년의 커다란 느티나무 신목과 아기를 점지해주는 삼신당이 자리 잡고 있다. 나무 주위로는 방문객들이 소원을 적어 놓은 하얀 종이들이 빽빽하게 달려 있어 신령스러운 기운을 더한다.

마을을 둘러보고 낙동강 쪽으로 돌아 나오면 마을의 약한 기운을 보완하기 위해 소나무 만 그루를 심었다는 만송정 솔숲과 제방길을 만난다. 그 끝에는 지난 5월 앤드루 왕자의 방문을 앞두고 놓은 섶다리가 놓여있다. 섶다리는 낙동강을 걸어서 건너는 색다른 경험으로 하회마을의 새로운 명물로 자리 잡았다. 휴가철인 오는 8월 14일까지만 한시적으로 운영된다.

새 명소로 자리잡은 하회마을 섶다리. 새 명소로 자리잡은 하회마을 섶다리.

섶다리를 건너 류성룡 선생이 징비록을 집필한 옥연정사를 지나면 부용대로 오르는 숲길이다. 100여m의 숲길 끝에 갑자기 시야가 탁 트이면서 나타나는 절벽이 부용대다. 아래쪽으로 낙동강 줄기가 마을을 휘돌아 나가는 하회마을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조선 시대 유교 건축물의 백미로 일컬어지는 병산서원은 하회마을에서 자동차로 20여 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이곳 만대루 위에 오르면 앞쪽으로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고 강 건너편으로 커다란 병산이 마주한 멋진 풍광이 세월을 잊게 한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하회마을에서 낙동강 옆으로 난 병산서원까지 걸어서 가는 3㎞ 남짓의 유교문화길을 추천한다. 7월부터 피기 시작하는 배롱나무의 붉은 꽃이 병산서원과 어우러져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는다.

하회마을에서는 하회 별신굿 탈놀이가 매일 오후 두 시에 열린다. 매년 가을 열리는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기간 중에는 전통 불꽃놀이인 ‘선유 줄불놀이’가 낙동강 위에서 펼쳐진다. 공중에 매단 줄불과 달걀 껍데기 속에 기름을 묻힌 솜을 넣고 수면에 띄우는 달걀 불놀이 등이 동시에 진행돼 장관을 이룬다. 올해 국제탈춤페스티벌은 9월 27일부터 10월 6일까지 개최된다.

집보다 사람이 아름다운 집, 임청각

3대가 독립운동에 나선 독립운동가의 집 임청각. 3대가 독립운동에 나선 독립운동가의 집 임청각.

안동의 독립운동 명소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임청각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닌 이상룡 선생의 생가이자 3대가 독립 투쟁에 나서고 독립유공자 10명이 배출된 명실상부 독립운동가의 집이다.

임청각은 500년 전에 지어진 안동 고성 이 씨의 대종택이다. 조선 건국과 임진왜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도 훼손되지 않고 원형이 남아있는 불가사의한 건물(보물 182호) 이기도 하다. 이중환의 택리지에도 임청각이 ‘고을 내 명승’으로 기록돼 있을 정도다.

임청각 안에 있는 군자정에는 퇴계 이황이 쓴 현판과 독립 유공자 증서가 나란히 걸렸다. 임청각 내부에 마련된 전시관에는 이상룡과 그 가족이 걸어온 험난한 여정이 자세히 기록됐다.

임청각 옆의 법흥사지 칠층전탑. 임청각 옆의 법흥사지 칠층전탑.

임청각은 원래 궁궐을 제외하고 가장 큰 99칸 기와집이지만 지금은 70여 칸만 남아 있다. 그 사연이 기막히다. 이상룡 선생은 전 재산을 내놓아 만주에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독립군을 길러 나라를 되찾기 위한 항일투쟁을 벌였다. 그러자 일제는 맥을 끊겠다며 마당을 가로질러 철도를 놓으면서 대문과 행랑채 등 수십 칸을 강제로 뜯어냈다.

그동안 숨겨져 있던 임청각의 사연은 문재인 대통령의 2017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지금은 찾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고택 체험도 운영하는 등 안동의 명소로 떠올랐다. 다행히 철도 이설과 임청각 복원도 결정돼 몇 년 뒤에는 온전하고 웅장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임청각 주변에는 400년이나 된 미라 상태로 발견된 ‘원이 어머니’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테마로 한 공원과 월영교가 있어 여행객의 발길을 붙든다. 월영교에는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뒤 뱃속에 있는 아이와 함께 험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회한을 담은 편지와 머리카락으로 삼은 미투리 얘기가 담겨있다. 미투리 모양의 나무다리는 야경이 특히 아름다워 연인들이 즐겨찾는다.

유교 정신의 총 본산 도산서원

안동호 위의 선성수상길에 수몰된 옛 초등학교의 풍금 모형이 놓여있다. 안동호 위의 선성수상길에 수몰된 옛 초등학교의 풍금 모형이 놓여있다.

안동 시내에서 벗어나 봉화, 태백으로 이어지는 국도를 따라 자동차로 20분 정도 달리면 조선의 대표적인 유학자 퇴계 이황을 모신 도산서원에 닿는다.

천 원짜리 구권 지폐에 퇴계 이황의 초상화와 함께 그림으로 실려 있는 바로 그곳이다. 서원은 조선 시대 사립대학 역할을 했던 곳이고, 도산서원은 영남학파를 이끈 명문 사립대였다.

서원 입구에는 안동댐 상류의 강줄기가 눈 앞에 펼쳐지는데 강 건너에 우뚝 서 있는 것이 시사단이다. 이황의 학덕을 기려서 이 지방의 인재를 별도로 선발하기 위한 과거 시험이 펼쳐진 곳이다. 원래는 도산서원과 마주 보는 강변에 있었는데, 안동댐이 생기자 10m 높이로 돌 축대를 쌓아 올린 뒤 옮겨 지었다.

도산서원은 크게 이황이 직접 제자들을 가르쳤던 도산서당과 선생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도산서원으로 나뉜다. 도산서원의 현판은 명필 한석봉의 글씨로도 유명하다.

전체적으로 단정하게 절제된 자태에 기품이 흐르는 모습이다. 금세라도 긴 소맷자락 늘어뜨린 유생들의 책 읽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도산서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육사 문학관이 있다. 저항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이육사 선생과 만나는 공간이다. 2층 문학카페에서는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과 함께 청포도가 익어가던 선생의 고향 마을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도산서원 가는 길에는 한국국학진흥원 앞 안동호를 가로질러 안동호반자연휴양림으로 연결되는 1㎞ 길이의 선성수상길이 놓여있다. 수위 변동에 따라 뜨고 가라앉는 부교다. 부교 위에는 안동댐 건설로 수몰된 예안국민학교의 책상과 풍금 등이 놓여있어 사진찍기 좋은 새로운 명소로 자리 잡았다.

정상섭 선임기자 verst@busan.com


정상섭 선임기자 ver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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