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원 칼럼] 아베와 일본을 깊게 보라

임성원 기자 fore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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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원 논설위원

지금은 고인이 된 문학평론가 김윤식 선생을 〈부산일보〉 신춘문예 심사위원으로 모신 적이 있다. 심사를 맡아 달라고 처음 전화를 넣었을 때 선생은 고사를 거듭하다 “이제는 고향에 봉사 좀 하시라”라는 기자의 말에 “까마귀도 고향 까마귀가 반가운 법”이라며 흔쾌히 수락했다. 몇 해 동안 내처 신춘문예 심사를 맡았는데, 올 때마다 고향 김해 진영에 대한 사랑을 빠트리지 않았다. 특히 “나는 대통령 깜이 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노무현 대통령이 초등학교 후배라며 자랑스러워하곤 했다.

미국엔 아첨, 한국엔 오만 일관

아베 정권의 모순적 이중적 외교

마침내 한국 수출 규제 카드 꺼내

‘각자 알맞은 위치’, 일본 이해 열쇠

세계 속에서 당당한 한국의 위상

‘깜이 되는 나라’ 증명해야 할 때

“문학평론은 평론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을 골라 평론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신춘문예 심사를 하면서 들려준 김 선생의 지론이다. 시쳇말로 ‘깜’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 번은 ‘임성원 형께, 역자 드림’이라는 쪽지를 안에 붙인 책을 내밀었다. ‘일본 문화의 틀’이라는 부제가 붙은 〈국화와 칼〉이었다. 문학 관련 저술이 아니어서 좀 의아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선생이 역자로 참여한 이 책의 초판이 1974년 2월에 나왔는데 2002년 2월의 제4판을 선물했으니, 30년이 지나도 이 책의 가치는 여전하다는 선생의 주장이 새삼 느껴졌다.

한·일 관계가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서가에 꽂힌 〈국화와 칼〉에 버릇처럼 눈이 간다. 예의 바르고 착하고 겸손한 일본 사람들 속에 무서운 칼이 숨겨져 있다는 은유로서의 ‘국화’와 ‘칼’. 저자인 미국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는 ‘제1장 연구과제-일본’에서 “일본인에 대해 쓰인 저작에는 세계 어느 국민에게도 일찍이 쓰인 적이 없을 정도로 기괴하기 짝이 없는 ‘그러나 또한(but also)’이라는 표현이 연발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모순적이며 이중적인 일본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가 저술의 출발이었고, 1970년대 초 도쿄대학 유학 당시 번역을 결심했다는 역자들(김윤식 오인석)도 서문에서 ‘과연 우리는 일본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최근의 아베 정권 행태도 이해하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다. ‘아첨 외교’라는 굴욕적인 말을 들어가면서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에는 그지없이 친절하다가 한국은 상대조차 안 하는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태도를 보였다.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는 한국과는 관례적인 정상회담조차 거부했다. 마침내 아베 정권은 반도체 핵심 품목 3개의 한국 수출 규제를 4일 자로 발동했다. 아베 정권은 “한국이 한일청구권협정, 한일위안부 합의와 같은 국가 간 약속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취해진 조치”라면서도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에 대한 대항 조치는 아니다”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미국과 한국에 대한 판이한 태도를 보면 아베 정권은 그들만의 ‘외교 원칙’을 가진 듯하다. 여기서 〈국화와 칼〉에 나오는 ‘각자 알맞은 위치 갖기’라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일본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각자가 알맞은 위치를 갖는다”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가에 관한 일본인의 견해를 알아야 한다. 계층 제도(hierarchy)에 대한 일본인의 신뢰야말로 인간 상호 관계 및 인간과 국가의 관계에 관해 일본인이 품고 있는 관념 전체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모든 국가가 세계 속에서 각기 알맞은 자기 위치를 갖게 하는 데 대한 일본 정부의 정책은 불변이다.’

아베 정권은 세계 질서를 이끄는 미국은 떠받들 만하지만, 한때 지배했던 한국은 일본이 상대하기에는 여전히 ‘깜’이 안 된다는 오만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마치 진주만 습격에 나서듯 방어할 틈을 주지 않고 한국의 느슨한 고리를 집중적으로 타격해 이참에 본때를 보이겠다는 생각일 터이다. 한국의 국론이 분열되고 우왕좌왕할수록, 성급하게 감정적인 대응에 나설수록 효과는 배가될 것이다. 급하다고 바늘허리에 실을 매어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럴 때일수록 시간을 갖고 차분하게 접근해야 일본이 쳐놓은 덫에 빠지지 않는다.

한국의 대응책은 자명하다. 세계 속의 한국 위치를 이참에 제대로 보여 주는 것이다. 일본이 흔든다고 해서 마구 휘둘리는 한국이 아니라 당당하게 경쟁할 것은 경쟁하고 협력할 것은 협력하는 이웃 나라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마침 지금의 상황이 한국에 크게 불리한 것도 아니다. 일단 일본 언론이 아베 정권의 이번 조치에 대해 비판 일색이다. 나아가 따지고 보면 한국 경제가 일본에 지나치게 의존해 온 것도 사실이어서 이쯤에서 변화의 전기를 마련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베 정권이 아니라 일본, 나아가 세계의 여론을 보면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대응책을 차근차근 내놓는 게 필요하다. ‘깜이 되는 나라냐 아니냐’, 3·1 독립운동 100주년에 불쑥 우리를 찾아온 새로운 미션이다. forest@busan.com


임성원 기자 fore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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