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게임은 의료계 블루오션이 아닌 新문명이다
/고영삼 동명대 정보사회학 교수 4차산업혁명 연구센터장
이른바 ‘결정’이란 것은 갈등과 논란을 종결시키는 맛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번의 결정은 그 반대일 것 같다. 게임중독 질병코드 이야기다. 알다시피 최근 WHO(세계보건기구)는 과도하게 게임하는 행위를 게임이용장애라는 이름의 사실상 중독으로 관리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게임 전문가들, 종사자들, 단체들, 심지어 문화체육관광부도 반대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반대 측은 우선 WHO에서 내놓은 게임중독의 기준을 신뢰할 수 없다고 한다. 의료계의 이익을 챙기는 수작이라고 간주한다. 필자는 한동안 국가기관에 근무하면서, 우리나라 인터넷이 확산되는 과정에 나타난 심리적·정신적 역기능의 문제를 다루어 왔다. 그 경험에서 볼 때 게임에 중독이란 질병코드를 입히는 것은 섣부르거나 과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의료계에서 말하는 이른바 게임중독은 애초 알코올중독이나 마약중독 등에서 착안한 것이다. 알코올이나 마약 등 화학물질을 계속 섭취하다보면 이에 대해 금단, 내성, 일상생활장애를 경험하게 되는데, 게임을 계속해도 어느 단계에 그와 비슷한 상태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게임중독이라는 용어를 사용해도 되지 않는가 라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직업적으로 내담자를 계속 만나고 그룹 데이터를 분석하다 보니 게임에 과도하게 빠진 사람들은 물질중독자와는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우선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회복시키는 방법이 다르다. 알코올⋅마약 중독의 경우 치료사는 이들을 물질이나 관련 정보로부터 평생 완전 격리시킨다. 그러나 게임의 경우 게임이나 스마트폰을 계속 사용하게 한다. 단지 절제력을 키워주려고 한다. 오히려 최근에는 그 미디어와 콘텐츠를 잘 활용하여 개인의 역량을 어떻게 향상시켜 줄 것인지를 같이 모색한다. 증상의 심각성 면에서도 차이가 크다. 즉 알코올⋅마약 중독은 매우 치명적이다. 한 번 중독자가 되면 평생 치료되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게임⋅스마트폰에 지나치게 빠져든 누군가가 있을지라도 이들은 비질병적이라고 할까? 약물치료가 필요 없을 정도다. 그러니 약 처방을 위주로 치료하는 병원에 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여러 데이터를 분석하다 보니 언론에서 독자 편의를 위해서 사용하는‘중독’의 용어에 대해 의문이 생겼다. 그래서 게임중독의 용어가 저널리즘은 몰라도 아카데미즘 용어로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했다. 그 결과 전문가들과 의논해서 2016년부터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통해 ‘과의존’ 용어를 공식화했다. 우리나라는 이미 밤 12시 이후에 아이들이 게임을 아예 못하게 하는 게임통금법을 운영하고 있다. 이것도 사실 선진국형 법이 아니다. 실효성도 의심받고 있다. 국민들에게 공공적 차원의 건강시스템을 강화하고자 하는 의료계의 의도는 나쁘지 않다. 그러한 노력으로 우리나라는 이 정도의 선진적 의료시스템을 만드는데 성공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이번은 지나친 것 같다. 망치는 늘 못을 찾는다는 말이 있다. 의도가 지나쳐 과학적 근거를 가볍게 하지 않을지 염려스럽다. WHO의 표적은 ‘게임’인데, 시대 추세에 따라 스마트폰 게임도 못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면 그 다음은 무엇일까? SNS와 스마트폰이 될 것이고, 그 다음은 웨어러블과 가상현실 기술이 될 것이다.
이 기술 문명의 심리적 정신적 위험성은 엄밀히 연구해야 한다. 이 기술들은 지구에서 수 만년 서식해온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 우리는 인간 역량을 더 향상시키는 기술, 더 치유적인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그러니 위험성을 왜 가볍게 다루겠는가? 하지만 충분히 규명되기도 전에 기존의 틀에서 만든 용어인 ‘질병’으로 부르겠다는 것은 과하다. 미래문명에 대한 규제다. 과거의 낡은 시각을 넘어서서 4차산업혁명의 신문명으로 가야 하는 대한민국은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다.
변현철 기자 byunhc@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