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한·일, ‘치킨게임’ 계속해선 안 돼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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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국 동서대 총장



한·일 관계가 최악이다. 작금의 사태는 표면적으로 2개의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2015년 12월에 맺은 한·일 위안부합의를 한국 정부가 실질적으로 파기한 것이 하나다. 또 하나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이 배상하라고 명한 지난해 10월 대법원 판결이다. 이에 맞서 일본 정부는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에 대해 수출 규제를 가했고, ‘화이트리스트’ 혜택으로부터 한국을 배제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지난 금요일에는 모종의 조치를 예고하는 고노 담화를 발표했다. 한국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한국에 대한 중대한 도전을 멈추라”고 경고했고, 여야 정치권은 초당적 비상기구를 추진하기로 했다. 시민 차원에서는 일제 불매와 일본 여행 자제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한·일 관계가 이렇게까지 험악한 지경으로 치닫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 두 사건을 바라보는 양국 간의 현격한 시각 차이다. 한국은 영원한 피해자이고 도덕적 우위에 있으니 일본에 대해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아직 많이 남아 있다고 믿고 있다. 예를 들어, 주부산 일본총영사관 앞 강제노동자상 설치 시도는 그 ‘권리’를 압박을 통해 주장하기 위함이고,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은 그 남은 ‘권리’의 사법적 확보를 의미한다. 그러나, 일본의 시각은 크게 달랐다. 한국의 ‘끝없는 요구’에 이제는 제동을 걸 때가 되었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정권만 바뀌면 ‘골대를 옮겨대는’ 한국에 대한 불신이 사회 전반에 팽배해졌다. 이러한 현저한 시각 차의 충돌은 일본이 ‘보복’ 준비를 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둘째, 한국은 가슴으로 문제에 접근하지만, 일본은 머리로 대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피해 당사자가 납득하지 않는 정부 간 합의는 잘못된 것이고 국민 정서에 맞지 않다는 것이 한국의 입장이다. 이에 반해 일본은 철저히 법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국가 간 합의는 정권이 바뀌어도 지켜져야 하고, 이를 파기하면 국제법을 위반하는 행위라고 보는 것이다. 한국의 역대 정부조차 1965년 한·일협정으로 징용자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었다고 인정한 것을 이제 와서 갑자기 뒤집으려 한다고 보고 이는 한·일 관계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뜨거운 가슴’과 ‘냉정한 머리’의 충돌은 문제 해결의 접점 자체를 찾기 힘들게 했다.

셋째, 양국에 일어나고 있는 사회변화에 대한 상호이해 부족이다. 최근 한국은 직접민주주의적 요소가 강한 정치 형태로 탈바꿈되어 민의가 외교정책 결정 과정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아베 정부의 일본은 ‘전후 체제로부터의 탈피’를 내걸고 있다. 과거사로부터 자유로운 새로운 체제로 옮아가겠다는 것이다. 아베 정권이 국내 지지 기반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한·일 위안부합의에 응한 것도 이러한 의도가 작용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처럼 변화한 두 사회의 충돌은 서로를 이해 불능의 상태로 빠져들게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일 관계가 극적으로 회복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불신과 분노, 강 대 강 대결, 국민감정의 폭발, 상호 흠집 내기로 치닫고 있다. 그러나, 한 발짝 물러서 생각해 보면 과연 무엇을 위한 분투인지 명확하지 않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 승리를 거둔다 해도 상처뿐인 영광이 있을 뿐이다. 먼저 우리 국민과 정부는 실리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 이번 사태로 당장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이 매우 심각하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 진단이다. 당장은 국민감정에 맞지 않더라도 실리를 취할 줄 알아야 현명한 정부이다. 한국판 ‘도광양회(韜光養晦)’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둘째, 일본은 일방적 조치를 즉각 철회하고 상황이 더 이상 악화되어 파국으로 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일본 역시 양국 간에 존재하는 차이를 차분하게 이해하려는 노력을 시작해야 하고, ‘신의 한 수’와 같은 외교적 해법을 도출해 내야 한다. 평생 안 볼 사이는 아니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한 걸음 더 나가서 이제는 우리 스스로가 피해자 의식에서 과감하게 벗어나야 한다. 한국은 이미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고, 세계인이 강한 매력을 느끼는 나라가 되었다. 그에 걸맞은 관대함과 포용성이 겸비되어야 더 멋진 대한민국이 될 수 있다. 동등한 한·일 관계의 출발은 피해자의식의 탈피로부터 시작된다. 일본에서 가장 가까운 부산이 한 차원 높은 한·일 관계를 견인하는 데 앞장설 수 있으면 좋겠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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