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시민이 만드는 풍경
타지의 건축가들은 부산에 대해 부러움을 종종 말한다. 자연적 요건들을 골고루 갖춘 도시, 다시 말하여 산, 언덕, 바다, 강이 지근에 공존하는 도시라는 것이다. 그들의 도시는 대부분 평지이거나 산악이거나 강변이거나 하는 획일적 환경이기 일쑤이니 이해가 간다. 건축이란 자연환경을 조율하여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 내는 일이기에 건축가에게 다양한 자연이란 마치 조리사 앞에 갖가지 식자재가 펼쳐진 것과 같이 창작 의욕을 불러온다고나 할까.
영주동 시민아파트 재개발 공모
공공건축가 아이디어를 시민과 소통
참신하고 새로운 시도에 뿌듯
욕망 투영된 계획도로 풍경보다
시민들이 빚어낸 골목이 아름다워
재개발, 시민 참여로 시작돼야
아무튼, 어느 지점에서나 조망할 수 있으니 이 도시는 풍경의 보고다. 다운타운에서 산을 바라보는 풍경, 아니면 산복도로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풍경, 강변에 서서 낙조를 맞대하고 탐조에 몰두하는 풍경, 심지어 어부나 마도로스가 되어 항구를 바라보는 풍경에 이르기까지. 시민인 나는 이 도시가 늘 자랑스럽다.
얼마 전, 부산 중구청에서 재개발 아이디어 공모를 위한 발표회가 있었다. 50년 넘게 부산의 한 풍경을 이루어오던 ‘영주동 시민아파트’의 재개발을 위한 공모였다. 특이했던 것은 그 자리에 평범한 시민들이 초대되었다는 것이다. 부산의 건축계에도 새바람이 불어오려는 듯 기획 의도가 참신하고 돋보였다. 공공건축가들이 재능기부로 아이디어를 내고 그 결과물을 시민들과 함께 소통하려 했다.
전망을 위한 계단식의 테라스 하우스를 비롯하여 애환이 서려 있던 건물의 흔적을 역사 속에 남겨 보려는 시도와 열악한 산복도로 주변의 경제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건축가들의 아이디어는 실로 다양하였다. 시민의 한 사람이 되어 관람한 나는 이 참신하고 새로운 바람에 대하여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처음 시도되는 시민의 참여와 토론, 그리고 공개심사는 분명 우리 건축의 상황이 진일보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생소한 시도라 시민과의 소통에는 여전히 거리감이 있음을 보았다. 여태껏 개발이라는 명제 앞에 시민의 입장이란 그저 꿀 먹은 벙어리로 간주한 것이 고작이었으니 갑자기 펼쳐진 이런 자리가 당황스럽고 어리둥절할 수밖에. 개발이란 관과 지주와 자본이 각자의 입장에서 조율하는 것이며, 그것이 이루어 내는 부를 각자 배분하는 과정의 다른 말이었으니 말이다.
집으로 오는 길엔 차를 타지 않고 내리막길을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놀라운 발견을 하였다. 열악하리라 여긴 언덕배기 마을 골목길의 풍경이 직선으로 쭉쭉 뻗은 다운타운의 계획도로보다 훨씬 정겨웠다. 누군가가 아침마다 빗자루로 쓸어 길은 윤이 나고, 허전한 구석엔 벽돌로 작은 꽃밭을 가꾸어 붉고 푸른 여름꽃이 하늘을 향해 흐드러졌다. 빈터의 텃밭엔 오이며 풋고추가 땅을 향해 또 다른 풍경을 이룬다. 사람이 만들어 가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하지만 다운타운에 가까워질수록 실망은 짙어졌다. 분명 예산도 노력도 더 많이 투여되었을 번화가의 도로와 도시의 몰골이 훨씬 더럽고 추했다. 널린 쓰레기와 그에 버금가는 비양심이 자본의 배후에 방치되어 뒹굴고 있었다. 개발이란 명제로 이루어 놓은 도시의 풍경이 이런 정도였다. 당국과 지주의 욕심으로 빚은 계획도로의 풍경보다는 시민들이 무시로 빚어낸 골목과 화단과 나무가 훨씬 아름답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개발했으며, 도시의 진실한 풍경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비로소 건축가인 사실이 부끄럽고, 우리가 만들어 가는 도시에 더럭 겁이 났다. 그리고 확인하였다. 이 도시를 제일 잘 다루는 사람들은 평범한 시민임을. 그리하여 모든 개발과 재개발은 그들의 참여와 주장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래야 건강한 도시가 만들어진다.
이종민
종합건축사사무소 효원 대표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