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회안전망 보완 없으면 '간병 살인' 비극 막을 수 없다
79세 남편이 20여 년간 병시중을 해 온 동갑내기 아내를 살해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부산에서 발생했다. 숨진 아내는 그동안 심장질환을 앓아 왔는데 최근에는 담도암과 간암 말기 판정까지 받아 급기야 남편이 더는 자식들에게 부담을 지우기 싫다며 ‘간병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다고 한다. 긴 시간 간병에 따른 스트레스와 우울증이 범행 동기라는 게 전문가들의 추정이다. 간병 살인을 막을 사회안전망 구축이 발등의 불이 된 현실을 여실히 보여 주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노인이 노인을 간병하는 ‘노노(老老) 간병’ 끝에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는 간병 살인은 이제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일상적인 사건이 되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간병의 긴 터널에 갇혀 괴로워하다가 병상의 배우자나 노부모를 숨지게 하거나 동반 자살하는 참극이 잇따르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 되었다. 간병을 위해 직장을 그만두는 ‘간병 실직’을 겪거나 간병이 필요한 노인 부부 세대가 사회로부터 고립될수록 상황은 더 악화되게 마련이다.
동남권원자력의학원과 고신대학교가 함께 연구한 ‘노인 암 환자 가족원의 돌봄 부담감 영향요인’에 따르면 노인 암 환자의 평균 나이는 72.6세이고 배우자가 주 간병인이 되는 경우가 절반이 넘는 52.1%에 달한다고 한다. 간병인이 돌보는 시간은 하루 12시간 이상으로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다면 사실상 온종일 간병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한다. 배우자가 중환자일 경우 간병하는 배우자 중 67%가 우울 증세를 보인다는 통계도 있다.
노인복지를 강화하는 한편 ‘돌봄이들을 위한 돌봄’이 절실한 실정이다. 먼저 지속적인 간병이 필요한 노인들을 지원하는 장기요양보험의 시간과 서비스를 확대하고 가정·간병 통합서비스에 대한 예산 지원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간병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분명히 하는 사회안전망의 구축이 무엇보다 시급한 것이다. 고된 간병에서 놓여나는 여가 생활을 보장하고 적절한 교육 기회를 마련하는 등 돌봄이들에 대한 다양한 복지 수요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할 때 간병 살인 같은 참극의 재발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