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산책] 시모노세키조약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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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건 부산대 철학과 명예교수

일본 시모노세키(下關)에 가면 1895년 청나라 전권대사 이홍장과 일본 대표 이토 히로부미가 시모노세키조약을 체결한 일청강화기념관이 있다. 이곳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축배를 든, 우리로서는 무척 슬픈 곳이다. 청은 이 조약을 체결하면서 조선의 독립과 랴오둥반도의 할양, 다른 열강과 같은 특권의 인정 등을 일본에 약속하였다. 이에 따라 동아시아에서 중국이 차지하고 있던 위상이 붕괴되고, 일본은 서구 열강과 같은 근대적 국가의 기틀과 위상을 확보하게 되었다.

청일전쟁 승리하면서 침략 야욕

조선왕조의 몰락으로 이어져

배타적 적대 의식은 경계해야

그 시모노세키조약의 1조는 이렇게 시작한다. “중국은 조선이 완결무결한 자주 독립국임을 확인하며 무릇 조선의 독립 자주 체제를 훼손하는 일체의 것은 이 이후에 모두 폐지하는 것으로 한다.” 어떻게 보면 조선의 독립국임을 선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제 조선은 중국의 것이 아니라 일본 것이라는 것을 둘러 말한 것이다. 비극의 시작이었다.

그 비극은 이미 이전에 있었다. 1875년 운양호 사건이 있었고, 그것은 근대 일본의 조선 침략 신호탄이었다. 일본은 이 사건 다음 해 이른바 강화도조약, 또는 병자수호조약이라는 불평등조약을 체결하여 조선 식민지화의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이즈음 일본에는 정한론이라는 요괴가 출몰하고 있었다. 그 중심이 아베의 고향, 아베가 가장 존경한다는 명치유신의 정신적 지도자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의 고향인 야마구치현이다. 요시다 쇼인은 바로 일본 정한론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정한론을 받들고 청일전쟁 당시 일본 군사 8000을 이끌고 조선으로 넘어와 경복궁을 점령했던 오시마 요시사마가 아베의 외고조부이다.

비극은 계속되어 시모노세키조약이 있던 해에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있었고, 또 그다음 해 고종이 마지막 방편으로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해 살았던 아관파천의 시절도 있었지만, 이미 나라는 기울고 노일전쟁과 을사늑약을 거쳐 한·일 강제병합으로 근대사 비극의 1막은 종지부를 찍는다.

조선왕조실록은 순종조 1910년 8월 29일 자에서 다음과 같은 기록으로 끝난다. “짐이 스스로 결단을 내려 한국의 통치권을 종전부터 친근하게 믿고 의지하던 이웃 나라 대일본 황제 폐하에게 양여하니 대소 신민들은 번거롭게 소란을 일으키지 말고 각각 그 직업에 안주하여 일본 제국의 문명한 새 정치에 복종하여 행복을 함께 받으라.” 한 나라 제왕이 나라를 빼앗기면서 한 말이다. 순종의 이 말은 할 말을 잊게 하고 가슴을 치게 한다.

최근 한·일 관계가 얼어붙고 있다. 일본이 경제적 선전포고를 하였으니 전면전을 하여야 한다는 이야기부터, 현실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말까지 목소리가 다양하다. 소설가 박경리는 생전에 일본은 무사(武士)의 나라라 공격적이고 침략적이라고 진단하면서, 일본에 대한 글을 모은 책 〈일본산고〉에서 “일본인에게는 예(禮)를 차리지 말라. 아첨하는 약자로 오해 받기 쉽고 그러면 밟아버리려 든다. 일본인에게는 상다리가 휘어지게 음식을 잘 차린 곰배상을 차리지 말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의 대응이 일본인과 일본문화를 무시하고 적대시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은 염려되는 일이다. 일본의 민낯을 보여 주는 일본 지배권력과 일본은 구별할 필요가 있다. 우리도 해방 후 반민족 부일세력을 척결하지 못한 잘못이 있기에 일제와 일제의 잔재에 대한 준엄한 심판은 있어야 하고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경계해야 하지만, 근대사 때문에 가지는 일본에 대한 배타적 적대 의식은 아름답지 못하다.

지금은 일본을 적국으로 삼아 경제전쟁을 할 때가 아니다. 일본을 비판하는 것과 일본을 부정하는 것은 다르다. 일본에도 양심세력이 있고, 그들과 교류하면서 손잡아야 한다. 바위 같은 굳은 마음만 가져서는 안 된다. 바위는 바다에 이르지 못한다. 흐르는 물만 바다로 갈 것이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며, 비에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겠는가? 지금 바람 불고 비 오고 있지만, 그건 꽃을 피우기 위해서일 것이다. 부디 얼어붙은 한·일 관계가 오래가지 않고 빨리 해빙되기를 바란다.

오늘날 경직된 한·일 관계를 만든 문제의 단초는 조선 침략에 대한 일본 정치권의 진정한 사죄가 없었다는 데 있다. 그들의 깊은 반성과 사과가 먼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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