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창동예술촌 골목 나들이

정상섭 선임기자 ver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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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둘러·먹어봐! 예술이지?

골목마다 특별한 이야기와 예술가의 열정이 흘러 넘치는 창동예술촌. 3개의 테마 골목을 따라 작은 공방과 갤러리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골목마다 특별한 이야기와 예술가의 열정이 흘러 넘치는 창동예술촌. 3개의 테마 골목을 따라 작은 공방과 갤러리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도시에는 그곳의 이야기가 있다. 오래된 도시일수록 이야기는 정겹고 풍부하기 마련이다. 거기에 문화와 예술이 덧붙여진다면 금상첨화, 그보다 더 좋을 수 없다. 경남 창원시의 창동예술촌이 바로 그런 곳이다. 창동은 오랜 시간 옛 마산시의 중심이었다. 조선 중기에 대동법이 시행되면서 영남지방의 세곡을 보관하던 조창이 이곳에 들어섰다. 창동이라는 이름도 이 창고에서 비롯됐다. 한동안 잊힌 옛 도심의 골목길이 예술촌으로 변모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상상길, 소리길, 250년 골목 등 골목길로 이어지는 특별한 이야기와 예술가들의 열정이 방문객을 반긴다. 초가을의 문턱, 볼거리와 즐길거리, 먹거리가 다양한 창동으로 떠나보자.

상상길·소리길·250년 골목길

곳곳 예술작품·공방·갤러리

3·15 의거 역사의 흔적도

문신미술관·꼬부랑 벽화마을

아귀찜·장어구이·복국 등

인근 즐길거리·볼거리도 가득

창동의 거리는 모두가 예술, 창동예술촌

마산 창동은 한때 ‘경남의 명동’으로 불릴 정도로 상권이 번성한 곳이었다. 1960~1980년대가 창동을 중심으로 한 마산 원도심의 전성기다. 마산수출자유지역이 들어서면서 전국의 젊은이들이 모여 들었고, 창동은 경양식집과 다방, 극장 등이 잇달아 들어서며 문화와 낭만의 거리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마산수출자유지역이 쇠퇴하고 한일합섬이 부도나면서 창동은 덩달아 급격히 몰락했다. 창동이 다시 활력을 되찾은 것은 정부와 창원시가 2011년부터 도시재생 사업을 펼치면서부터다. 지역의 젊은 예술가들이 빈 점포에 둥지를 틀면서 창동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떠나간 젊은이들이 돌아왔고, 상점이 다시 문을 열면서 창동은 대한민국 도시재생 1번지로 자리잡았다. 지난해 12월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방문으로 유명세를 얻었다.

창동의 골목여행은 창동예술촌과 상상길로 크게 나뉜다. 여기에 불종거리와 부림시장, 아구찜거리 등이 생기와 활력을 더해주면서 방문객의 발길을 이끈다.

창동예술촌은 창동 아트센터를 중심으로 문신 예술, 마산예술 흔적, 에꼴드 창동이라는 3개의 테마 골목으로 구성돼 있다. 골목길마다 작은 공방과 갤러리가 곳곳에 자리해 ‘창동의 거리는 모두가 예술이다’는 말이 피부로 다가온다.

에꼴드 창동 골목에 들어서면 조각가 문신의 작품에서 모티브를 얻은 붉은색 아치형 조각이 반긴다. 예술 문화의 한 파(派)를 뜻하는 에꼴드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이 골목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 예술인들이 둥지를 틀고 작품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산예술 흔적 골목에는 옛 마산의 모습을 표현한 ‘추억의 나무’가 아련한 향수를 느끼게 한다.

창동예술촌 골목여행의 진수는 문신 예술 골목이다. 옛 시민극장을 끼고 뒤쪽으로 부림시장과 이어지는 골목에는 체험 아트공간들이 자리한다. 작가와 얘기를 나누며, 같이 공예품을 만들어 볼 수도 있다. 골목길 곳곳에서 만나는 벽화와 조각, 315개에 달하는 화분도 골목길의 정취를 더해준다. 화분은 민주화의 성지 마산의 3·15의거를 기념한 숫자로 315명의 시민 정성이 모인 것이다.

세계인의 길 상상길, 세월 간직한 250년 골목길

창동에서 나고 자란 이선관 시인은 “…서울의 그 누군가를/ 명동 백작이라 했던가/ 당신은 창동 공작이라 하던데/ 아니다 아니다/ 당신은 분명/ 창동 허새비다/ … / 마산, 그 창동의 숨쉬는 허새비다”라고 노래했다. 허새비는 허수아비의 사투리로 고향 마산과 창동을 죽어서도 영원히 사랑하리라는 다짐의 표현이다.

창동을 다시 활력 넘치는 예술촌으로 바꾼 데는 허새비를 자처하는 지역 문화 예술인들의 헌신과 상상력이 큰 역할을 했다. 그 상상력을 세계인의 길로 바꾼 것이 바로 상상길이다.

상상길은 불종거리에서 부림시장으로 이어지는 155m 구간의 길지 않은 길이다. 상상길은 전 세계인의 마음이 모인 길이다.

상상길 블록에 전세계 2만3000여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상상길 블록에 전세계 2만3000여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2015년 ‘당신의 이름을 한국에 새겨보세요’ 글로벌 캠페인에 응모한 전 세계 200여 개국, 30여 만 명의 참가자 중 2만 3000명을 선정해 블록에 새겨 놓았다. 한국을 상징하는 다섯 가지 색깔로 색을 입힌 상상길은 창동에 활기를 불어넣고 전 세계 젊은이들을 끌어 모으는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

상상길에서 오른쪽 골목은 창동예술촌으로 들어가는 남쪽 입구다. 반대편 왼쪽 골목의 초입에는 ‘250년 골목길’이라는 가로 현판이 서 있다. 조선시대에 마산창이 설치된 이래 지금까지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골목길이다.

250년 세월의 멋과 맛이 스며있는 듯 작은 공방과 갤러리, 소담스런 식당들이 아기자기하게 들어선 정겨운 길이다. 골목 안에는 창동예술촌에서 유일한 게스트하우스 리좀이 있어 젊은층의 핫플레이스로 자리잡았다. 경남에서 유일한 예술영화 전용관이 있고, 카페와 갤러리도 들어서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젊은이들의 인기를 한 몸에 끌고 있다.

상상길에서 불종거리를 건너면 오동동 문화광장과 3·15 의거 발원지를 만난다. 2016년 12월에 조성된 오동동 문화광장은 만남의 장소이자 열린 문화공간으로 바닥분수, 지하주차장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문화광장에 설치된 ‘미디어 글라스’다. 결혼기념일, 사랑고백 이벤트 등 소중한 날을 더욱 빛나게 하는 사연들을 투명 전광 유리에 띄워 보여준다. 해가 질 때부터 밤 9시까지 운영된다.

3·15의거 발원지에 세워진 조형물. 3·15의거 발원지에 세워진 조형물.

창동 골목여행의 가장 큰 특징은 걸음마다 역사와 문화를 만난다는 것이다.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에 대항한 3·15의거의 현장이 창동이고, 유신 독재의 종말을 가져온 부마민주항쟁이 시작된 곳도 창동 사거리다. 문화의 거리 바닥에는 ‘3·15의거 발원지’ 기념 동판이 있고, 건물 뒤편의 벽면에는 조형물도 설치돼 있다. 일본군 위안부 추모 동상과 다짐비도 이곳에 세워져 있다.

창동사거리 인근 학문당은 마산 시민의 약속 장소로 유명하다. 1955년 개업한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으로 아직 영업 중이다. 창동 아트센터 옆의 영록서점은 100만 권이 넘는 헌책에 LP판, 고서화 등을 갖추고 있어 수집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제과점인 코아양과와 고려당 역시 그대로 남아 여행자를 기다린다.

문신미술관, 시원한 전망과 세계적 작품을 한눈에

문신미술관. 문신미술관.

창동 예술촌을 찾았다면 빠뜨리지 말아야 할 곳이 인근에 있는 문신미술관과 마산박물관이다. 문신은 파리를 중심으로 이름을 떨친 마산의 대표 조각가다. 16살에 일본으로 밀항해 도쿄에서 미술공부를 한 뒤 프랑스에서 활동하다 1980년 홀연히 귀국해 15년 동안 손수 미술관을 짓는 일에 집중했다.

‘사랑하는 고향에 미술관을 바치고 싶다’는 작가의 유언에 따라 현재 시립미술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미술관은 제1전시관, 제2전시관과 대형 작품이 전시된 야외전시장, 작가의 조각 원형 틀을 전시한 문신 원형미술관 등으로 구성된다. 마산항과 창동 예술촌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 잡아 시원한 전망이 일품이다.

문신미술관 옆의 마산박물관에는 2010 문신 국제조각심포지엄에 출품된 작품들을 전시한 야외조각미술관이 있다. 이은상의 가고파 영문 번역판을 한자어처럼 표현한 쉬빙의 ‘석-경’ 등 세계적인 작가 10명의 작품이 야외 광장과 주변 숲길을 따라 조성돼 있다.

가고파 꼬부랑 벽화마을 입구. 가고파 꼬부랑 벽화마을 입구.

문신미술관과 이웃한 성호동에는 가고파 꼬부랑 벽화마을이 있다. 꼬불꼬불 이어지는 산동네 골목을 따라 다양한 그림들이 그려진 담장 갤러리다. 백년 우물과 추억의 물지게 체험 등 경남미술협회 소속 화가들이 그린 벽화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것만은 맛보자, 마산의 먹거리

마산 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아귀찜이다. 오래전 오동동에서 장어국을 팔던 혹부리 할머니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아귀에 콩나물을 넣어 만든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다른 지역과 달리 약간 마른 아귀를 사용해 훨씬 쫀득하고 맛있다. 창동 예술촌과 인접한 오동동 아구찜 거리에는 20여 개의 전문 음식점이 손님을 맞이한다.

환절기 건강 관리에는 장어구이가 제격이다. 바다장어에 양념을 발라 구운 장어는 달콤하고 담백한 맛으로 남녀노소 모두에게 인기가 좋다.

술꾼들이 즐겨찾는 복국도 빼 놓을 수 없다. 마산어시장 선창가로 접어들면 복집 거리가 형성돼 있는데 회, 불고기, 수육, 튀김, 무침 등 다양한 복 요리를 맛볼 수 있다.

한 잔 술에 여행의 피로를 풀고 싶다면 오동동의 통술 골목을 찾아가자. 통영의 다찌, 삼천포의 실비집과 비슷한 마산 통술은 시키는 술 양에 따라 새로운 안주가 끊임없이 나오는 독특한 시스템으로 유명하다. 글·사진=정상섭 선임기자 verst@busan.com


정상섭 선임기자 ver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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