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의심의 두 얼굴 ‘의혹’과 ‘의문’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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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부경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이진우 포스텍 교수는 공대생을 위한 철학 강의에서 “정답을 의심하라. 의심하지 않으면 질문할 수 없다. 과학도, 정의도, 신도 심지어 나의 존재조차도 의심하라”고 했다(〈의심의 철학〉). 코페르니쿠스 이전의 사람들은 누구나 의심 없이 천동설을 믿었다. 지동설을 받아들인 지금도 ‘해가 뜨고, 진다’와 같이 천동설에 근거한 표현이 많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제시했을 때 당시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했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에게 동조했던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교황청의 명령에 따라 교수 자격을 박탈당했고 가택 연금에 처해 우울한 말년을 보내야 했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근대 과학혁명은 당연히 받아들여졌던 사실조차 의심하는 데서 출발했다.

의혹은 파괴, 의문은 해결을 향한 것

최근 조국 ‘의혹’ 보도, 개인 삶 파탄

누구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성찰을

언론이 충성 바칠 대상은 오로지 국민

기자들은 의심이 몸에 밴 사람들이다. 보도국에는 하루에도 기사 제보가 차고 넘친다. 이 모두를 전혀 의심하지 않고 보도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밖에 없다. 남을 해코지하기 위한 거짓 제보도 있을 수 있고, 자신의 행위를 과장해서 홍보하고자 하는 이들도 많기 때문이다. 검사도 피의자를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사람이다. 피의자 대부분이 범죄 사실을 순수히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교도소에서 몇 년 혹은 수십 년을 썩어 지내야 할 판인데 먼저 자백할 바보는 없다. 지능형 범죄가 늘면서 오죽하면 ‘플리바게닝’(범죄를 자백하면 형을 감해주는 제도)도 생겼겠는가.

의심 많은 이들 두 집단이 지난 2개월 동안 한국 사회를 들쑤셔 놓았다. 바로 조국 법무부 장관과 관련해서다. 인사청문 대상 공직 후보자에 대한 검증 보도는 기존의 관행이었기에 그렇다 치자. 여기에 검찰이 개입한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그러다 보니 기존에 없던 공직 후보자 검증 보도 행태가 탄생했는데, 그게 바로 ‘의혹’으로 점철된 기사들이다.

‘의혹(suspicion)’과 ‘의문(question)’은 ‘의심(doubt)’이라는 동일한 뿌리를 가지고 있지만 전혀 다른 가지이며 그 열매도 다르다. 가령 신의 존재에 대해 ‘의혹’을 품은 사람은 무신론자가 될 가능성이 높고, ‘의문’을 품은 사람은 종교라는 사회현상을 진지하게 성찰할 가능성이 높다. ‘선셋 리미티드’라는 영화에 이 둘을 구분 짓는 명대사가 나온다. “의혹을 갖는 것과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다른 것이오. 의혹은 파괴하고 소멸시키고자 하는 질문이고, 의문은 완전해지고자 하는 욕망이오.” 과연 ‘의혹’ 보도를 통해 조국과 그 가족은 철저히 파괴되었다. 그 여파로 한국 사회마저 좌우로 분열되어 파괴될 지경인데, 언론은 이런 결과를 원했던가?

이 시점에서 조국 장관에 대해 우리 언론이 왜 유독 ‘의혹’에 집착하는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국민일보는 지난 24일 ‘조국 사태에서 우리가 품는 의문’이라는 한양대 박찬운 교수의 페이스북 글을 옮기면서도 ‘조국 사태에 우리가 품는 의혹’이라고 제목을 바꿔 달았다. 박찬운 교수의 의문은 검찰 수사에 대한 것이기에 후보자 검증 보도와는 다소 동떨어진 내용이다. 그렇기에 나는 조국 관련 보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보고자 한다. 첫째, 조국 관련 보도가 정녕 사회정의의 실현이라고 생각하는가? 둘째, 조국에 대한 언론의 공통된 검증 기준은 있는가? ‘단독’ 보도가 난무하는 것은 그런 기준이 없다고 봐도 무방한 것인가? 셋째, 후보자의 도덕적 수준과 업무 능력 중에서 무엇에 중점을 두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넷째, 사법개혁의 필요성을 인정하는가? 만약 인정한다면, 왜 조국이어야 하는가? 혹은 왜 조국이어서는 안 되는가? 다섯째, 지금 언론은 누구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가?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이라는 책에서 저자들은 언론이 가장 충성을 바쳐야 할 대상은 시민들이라고 했다. 그런데 조국 관련 보도를 통해 이득을 보고 있는 이들은 시민이라기보다 검찰과 일부 야당으로 보인다. 언론이 스스로 경계해야 할 것 중의 하나가 권언 유착이다. 현재의 조국 관련 ‘의혹’ 보도는 검찰 권력과 언론이 밀착한 결과는 아닌가? ‘사법계’라는 익명의 취재원을 내세워 사실이 아닌 자신의 주장을 펼친 기자도 있었다. “가장 큰 이익을 얻은 자가 범인이다”는 말이 있다. 조국 관련 보도로 누가 이익을 보고 있는지 언론 스스로 진지하게 ‘의문’을 던질 것을 권한다. 언론이 검찰의 나팔수라는 ‘의혹’을 받지 않으려면.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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