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으로 뭉친 글로벌 인재들, IT 지형도 바꾼다 [부산산업 미래보고서-5. 파리 에꼴 42]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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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IT 교육기관 에꼴 42의 작업실.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IT 교육기관 에꼴 42의 작업실.

오후 2시가 지나자 전동퀵보드를 탄 20~30대 청년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미처 점심을 해결하지 못한 이들의 손에는 도시락 같은 먹을거리가 들려 있다. 이들이 들어서는 공간에는 커다란 평면 모니터가 달린 PC가 수백여 대 놓여 있다. 마음 내키는 자리에 앉아 제각기 할 일에 몰두한다. 삼삼오오 모여 토론을 벌이는 이들도 있다. 쇼파에 누워 쪽잠을 청하는가 하면, 온라인 게임에 몰두한 무리도 눈에 띈다. 이들을 관리하거나 감독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출석체크 따위의 시스템도 물론 없다. 프랑스 파리 17구에 위치한 대학 교육기관 ‘에꼴(Ecole) 42’의 모습이다.


24시간 오픈돼 있는 에꼴 42에서는 쇼파에서 쪽잠을 해결하는 학생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24시간 오픈돼 있는 에꼴 42에서는 쇼파에서 쪽잠을 해결하는 학생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까다로운 입학시험만 통과하면

스스로 전공 정해 프로젝트 수행

코딩 열정 있으면 제한사항 없어

학생 창의력 위해 게임룸 마련

세계적 업체 배출 기업 만족도↑

■‘코딩 열정’ 있으면 누구나 입학

2013년 문을 연 에꼴 42는 전세계 인재들이 모여드는 IT 교육기관이다. 파리 캠퍼스에는 3700명 가량의 학생들이 등록돼 있으며 이 가운데 외국인의 비율은 15~20% 정도다. 매년 1000명 안팎의 학생을 선발하며 졸업생 숫자는 유동적이다. 에꼴 42는 2020년까지 유럽과 미국은 물론 브라질, 인도네시아, 일본 등 전세계 20곳에 캠퍼스를 열 계획이다.

에꼴 42의 시스템은 한국인들의 상식을 뛰어 넘는다. 우선 학비가 존재하지 않는다. 1년에 4번씩 치러지는 입학 테스트만 통과하면 누구나 에꼴 42의 학생이 될 수 있다. 프랑스 역시 한국과 마찬가지로 IT와 관련한 전문 대학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연간 1000만 원 이상의 학비를 지불해야 하는데, 에꼴 42는 이러한 틀을 깬 것이다.

에꼴 42는 프랑스의 이동통신사 프리모바일의 자비에 니엘 회장이 사비를 털어 세운 학교다. 제2의 스티브 잡스를 꿈꾸던 니엘 회장은 프랑스의 IT 산업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에꼴 만들었다. 소피 비제 교장은 “코딩에 대한 열정만 있으면 나이, 인종, 국적, 학력 등에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는다는 게 학교의 모토”라며 “니엘 회장이 매년 학교 운영을 위해 기부금을 제공하며, 프랑스 정부와 대기업들로부터도 후원을 받고 있어 학생들에게 굳이 학비를 받지 않아도 운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창의력을 북돋아 주기 위해 게임용 PC는 물론 콘솔게임기까지 전용 게임룸에 배치해 놨다. 학생들의 창의력을 북돋아 주기 위해 게임용 PC는 물론 콘솔게임기까지 전용 게임룸에 배치해 놨다.

■교수·교재 없지만 스스로 동기부여

교육 커리큘럼도 독특하다. 에꼴 42에는 교수와 교재가 없다. 학교에서 기본적으로 설정해 놓은 20여 개의 프로젝트가 있지만 정해진 순서는 없다. 기초 프로젝트 5개만 수행하면 나머지는 학생이 원하는 순서와 방향으로 진행할 수 있다. 인공지능(AI), 웹, 게임 등 자신의 전공을 능동적으로 정하게 되는 셈이다.

프로젝트 수행은 학생들과의 협업과 경쟁 속에서 진행된다. 교수가 없기 때문에 프로젝트의 완성도는 학생들이 서로 평가한다. 5명 이상의 학생들이 특정 그룹이 수행한 프로젝트를 분석·토의하고 이에 대해 평가를 내린다. 문제점을 발견하면 이 부분을 다시 시도해보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식이다. 모르는 게 나오면 학생들끼리 머리를 맞대 구글링을 하든 전문가를 찾아가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결책을 마련한다. 24시간 오픈된 이 학교에서 먹고 자고 씻으면서 프로젝트에 몰두하는 일은 학생들에겐 일상이다. 학생들 자발적으로 해커톤 프로젝트(해킹과 마라톤의 합성어로 쉼 없이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이를 기반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완성)를 열기도 한다.

학교 벽면 곳곳에 그려진 그래피티와 콘솔게임기까지 갖춰진 게임룸 등은 모두 학생들의 창의력을 북돋아주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에꼴 42의 올리버 크루제 교육 디렉터는 “학생들이 자신의 목표와 주변 동료들을 생각하며 스스로 동기부여를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며 “이것이 바로 서로 협력하면서도 자신만의 고유한 해결책을 만들어 내는 에꼴 42의 피어러닝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에꼴 42 파리 캠퍼스의 소피 비제 교장. 에꼴 42 파리 캠퍼스의 소피 비제 교장.

■기업 수요 반영한 실무 교육

에꼴 42 파리 캠퍼스에는 35명의 스태프가 있다. 각자 부서가 있지만 가장 주된 업무는 기업의 실제 수요를 학생들과 연결시켜 주는 것이다. 소피 비제 교장은 “게임, 예술, 의학 등 학생들이 관심을 가지는 분야가 다양한데 현업에 종사하는 기업 실무자들의 이야기를 전달해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며 “기업에서 원하는 프로젝트를 학생들에게 전달하면, 학생들이 스스로 프로젝트를 구성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졸업생이 배출된 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기업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라는 게 학교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론보다 실제 업무현장에서 필요한 코딩 기술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실무보다 중요한 이론은 없다는 게 에꼴 42의 교육 철학이다.

하지만 에꼴 42에 입학하는 게 말처럼 쉬운 일만은 아니다. 에꼴 42는 입학 시험을 ‘피신(piscine)’이라고 부르는 데 프랑스어로 수영장이라는 뜻이다. 지원자들을 물 속에 빠뜨린 뒤 열정과 어느정도의 능력을 갖춘 이들만 선발한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그만큼 입학을 위한 프로젝트가 까다로워 입학 시험 기간에는 남녀를 불문하고 학교에서 숙식하는 청년들이 많다. 경쟁률은 통상 수십 대 1에 달하지만 내국인과 외국인의 차별은 없다.

까다로운 입학시험을 통과한만큼 학생들의 동기는 확실하다. 취업을 원하는 데 취업하지 못한 졸업생은 없다고 자부할 정도로 취업률도 높다. 재학생 또는 졸업생이 만든 스타트업은 200개에 가깝다. 이 가운데 세계적인 선도 모델을 만들어 성공 가도를 달리는 업체도 많다. 소피 비제 교장은 “한국 정부와도 서울에 에꼴 42 캠퍼스를 짓는 것을 논의하고 있다”며 “에꼴 42의 교육정신이 한국은 물론이고 전세계에 확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파리(프랑스)/글·사진=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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