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비아토르-여행하는 인간] 14. 리스본행 야간열차

김은영 논설위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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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영화가 이끈 마법 같은 리스본 여행

리스본 도심을 여행하기에는 트램이 제격이다. 리스본대성당 앞 언덕길을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트램과 사람들 모습도 명물 중 하나다. 리스본 도심을 여행하기에는 트램이 제격이다. 리스본대성당 앞 언덕길을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트램과 사람들 모습도 명물 중 하나다.

리스본이 배경이 되는 작품이 흔치 않아선지 포르투갈 여행을 앞둔 이라면 곧잘 찾아보는 영화가 있다. 파스칼 메르시어가 2004년 발표한 소설을 2013년 영화화하고, 이듬해 국내서도 개봉한 ‘리스본행 야간열차’이다.

처음 이 작품에 관심을 가졌던 건, 제레미 아이언스라는 배우가 출현했기 때문이다. ‘가브리엘의 오보에’ 선율이 생생한 롤랑 조페 감독의 ‘미션’(1986)을 보고 난 뒤 가브리엘 신부로 열연한 아이언스의 팬이 되었다. 그러다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웨인 왕 감독의 ‘차이니즈 박스’에 아이언스가 주인공으로 출연하면서 부산을 방문한 그를 만나기도 했다. ‘팬심’까지 작동한,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취재여서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가 출연한 작품은 거의 챙겨봤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아이언스 못지않게 리스본이라는 도시에 빠지는 계기가 됐다. 그로부터 2년 뒤 ‘리스본행 야간열차’ 소설을 챙겨서 리스본행 비행기를 탔다. 영화 대사처럼, 꼭 요란한 사건만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결정적 순간이 되는 건 아님을 다시 한 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영화로 인해 리스본이라는 도시에 환상을 품었지만 영화 속 장면을 찾아다닌 건 아니다. 걷고 또 걸어도 지루하지 않다. 그라피티가 넘친다. 수도치고는 고층 빌딩도 별로 없다. 15세기 대항해시대를 연 흔적은 곳곳에 남아 있다. 포르투갈의 독특한 타일 장식인 ‘아줄레주’ 덕분에 평범한 건물도 고색창연함을 풍긴다. 하릴없이 탄 ‘28번 트램’은 실핏줄처럼 연결된 리스본 언덕 구석구석을 엿볼 수 있게 했다.

리스본에서 가장 좋았던 한 가지를 꼽으라면, 흔하디 흔한 해 질 녘 풍경이라고 하겠다. 리스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상조르주성에서 테주강과 오렌지색 지붕이 펼쳐지는 도시 풍경을 볼 타이밍이면 더 기가 막힌다. 서커스인들이 꾸리는 식당 ‘샤피토 아 메사’에서 석양빛에 버금가는 색깔의 생맥주 한 잔으로 목을 축였다. 리스본 명물 에그타르트는 입에 사르르 녹았다.

리스본의 하룻밤은 바이루 알투나 알파마 지구를 찾아가 포르투갈의 영혼이 담긴 전통음악 ‘파두’를 들어 보라고 하고 싶다. 우리 애간장을 녹인 아리랑 곡조와 어딘지 모르게 빼닮았다. 음악에 심취한 나머지 여행자는 얇디얇은 지갑을 더 열고 말았다. 당시는 포르투갈 여름 와인 ‘비뇨 베르데’가 나올 시기여서 해산물 요리에 곁들였다.

다시 생각해도 침이 고인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불현듯 올라탄 영화 속 주인공처럼, 운명이 결정되는 드라마틱한 순간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사소할 수 있다. 다만, 그 우연이 가진 내면의 목소리에 우리가 얼마나 귀 기울이느냐에 따라 인생은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김은영 논설위원 key66@


김은영 논설위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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