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터치] 사라진 광장과 유라시아플랫폼
/김태만 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
부산역 광장이 달라졌다. 물을 뿜지 않는 분수대와 노숙인에게 점령당한 벤치들이 사라졌다. 테라스식 전시장, 회의실, 사무실들이 기존 역사(驛舍)와 자연스럽게 이어져 눈에 거슬리지 않아 좋다. 청년스타트업, 코-워킹, 메이커 스페이스 등 혁신 창업 클러스터 지역으로 거듭나길 꿈꾸는 ‘유라시아플랫폼’이다. 유라시아의 기점이자 해륙 결절점, 그래서 부산의 얼굴로 재탄생한 공간에 대한 기대로 사라진 광장에 대한 아쉬움을 느낄 틈도 없다.
광장 사라지고 새롭게 바뀐 부산역
부산의 미래 기약하는 플랫폼이지만
시민사회 공론장 역할 수행하는 광장
민주주의 위기에 여전히 필요한 공간
부산역 광장은 기억한다. 1960년대 파월 장병 환송식, 1970년대 올림픽 메달리스트 금의환향식, 40년 전 부마항쟁 민중 집회나 1980년대 대통령 후보들의 선거 유세 등이 여기서 열렸다. 도심 한복판에 있는 가장 넓은 공간의 운명이었다. 바다를 건너 배에서 내린 승객이나 열차를 내려 갯내음에 코를 비비는 내륙 손님들이 섞여 헤어지거나 만나는 공간이다. 부산만의 스토리를 한껏 품은 이야기보따리와도 같다.
원래 광장이란 길과 길이 연결되고 우물과 쉼터가 있어 나그네와 주민들이 섞여 교류하고 소통하는 오픈 스페이스다. 사람들이 들고나며 모이고 교류하는 개방된 공간이다. 왕가(王家)의 정원을 개조해 조성한 런던의 ‘트래펄가광장’의 야경을 상상하라! 자유분방한 버스킹과 어떠한 통제나 간섭도 없는 정치 연설과 다양한 집회가 무시로 열린다. 공연장, 극장, 쇼핑 가게와 펍 등이 즐비한 뉴욕의 ‘타임스퀘어 광장’은 또 어떠한가? 매일 300만 명이 유동하고 연간 4000만 명이 방문하는 맨해튼 최고의 광장이다. 정치적 상징으로 치자면 베이징의 ‘톈안먼 광장’을 빼고 말할 수 없다. 아편전쟁 이후 근대 중국 역사의 변곡점마다 등장하는 공간이다. 올해로 100년이 되는 5·4 신문화운동의 발상지이자 문화대혁명을 종식시킨 1976년 ‘톈안먼 사건’과 권위주의 중국이 종말을 고하고 현대화로 전환하는 결정적 계기였던 1989년 ‘6·4 톈안먼 사태’도 벌어졌던 광장이다. 주요 법령 공포나 황제 즉위식 등 공공 행사를 집행했던 모스크바 ‘붉은 광장’의 아름다움도 빼놓을 수 없다
광장은 공적인 공간이다. 사적 공간인 집이나 방과는 다른 영역이다. 광장은 놀이, 공연, 토론, 발언, 휴식 등 자유로운 공공적 행위를 누릴 수 있는 공간이다. 시민이 모여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자발적이고 민주적인 정치 행위가 일어나는 장(場)이다.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나 로마의 ‘포럼’이 그랬다. 광장의 전통은 18세기로 이어져 시민의 공론장으로 기능하면서 시민혁명의 토대를 제공했다. 도시에 광장이 결핍될 수 없듯, 서구 시민사회의 탄생은 광장을 떠나 상상할 수 없다.
대한민국 현대사는 ‘광장’을 촛불로 기억한다. 2008년의 ‘광우병 촛불’, 2016년 그 혹독한 겨울을 밝혔던 ‘박근혜 촛불’, 그리고 ‘검찰 개혁’을 외치는 2019년 ‘검찰청 앞 촛불’ 말이다. 광장이 촛불이듯, 촛불은 민주주의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의 근대는 진정한 깨어있는 시민의 탄생을 대망하며 여전히 미완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 광장은 더 이상 전통적 기능을 유지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대형마트마저 전자상거래나 쇼핑 채널에 잠식되고, 집단 정치 퍼레이드보다 1인 팟캐스트의 힘이 훨씬 세진 세상이다.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으로 활성화된 초연결 사회의 소통은 SNS가 주도하기 때문이다. 부산의 상징으로 조성된 ‘송상현 광장’은 도로로 둘러싸인 소통 불가의 섬으로 전락했고, 도시의 숨통으로 존재해 오던 부산역 광장은 도시재생의 이름으로 사라졌다. 유라시아 기종점인 부산의 미래와 플랫폼 경제 시대를 선도하기 위한 ‘유라시아플랫폼’ 조성은 무죄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장은 살아 있어야 한다. 심각한 민주주의의 위기를 맞고 있는 한국 사회는 여전히 광장을 필요로 한다. 개점 휴업인 국회 탓에 대한민국의 대의민주주의는 질식사 직전이다. ‘아고라’에서 정치를 논하던 로마의 시민들처럼, 지금 대한민국 시민들이 광장 말고 더 이상 숨 쉴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밀실을 떨치고 광장을 찾아 나섰던 소설 〈광장〉의 이명준식 고뇌가 다시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다. 밀실에 박혀 있을 것인가, 광장으로 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