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로 쫓겨난 부산 최고령 노거수, 진주에 방치…‘600년의 삶’ 고사 위기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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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에 감긴 채 경남 진주시의 한 농장에 방치된 부산 최고령 노거수의 모습. 사상구의회 제공 천에 감긴 채 경남 진주시의 한 농장에 방치된 부산 최고령 노거수의 모습. 사상구의회 제공

속보=주택재개발로 인해 경남 진주시의 한 조경 농장으로 강제 이송된 부산 최고령 노거수(본보 올 2월 14일 자 10면 등 보도)가 관리 없이 수개월간 방치돼 고사 위기에 처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상구청은 노거수가 진주로 옮겨진 이후 생육 상태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학계와 전문가들에게 전했지만, 제대로 된 확인도 거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진주 농장에 수개월간 버려져

사상구청, 생육 상태 확인도 안 해

광합성 못 해 잠정 고사 판정

조경 전문가 “존엄사 해야 할 판”

14일 사상구의회에 따르면 이달 초 구의원들이 노거수가 있는 경남 진주시 이반성면의 농장을 찾은 결과, 노거수는 천에 감긴 채 길가에 방치돼 있었으며 나무 영양제 주사는 모두 빈 상태로 꽂혀 있었다. 노거수 생육을 눈여겨보던 전문가들은 현재 노거수의 상황을 보고 ‘잠정 고사’ 판정을 내렸다.

이 나무는 부산 최고령 노거수로, 600년간 부산 사상구 주례동에서 마을 터줏대감 역할을 해 왔다. 하지만 올 2월 노거수 부지에 아파트 건립 계획이 추진되면서 12m 높이의 노거수는 주택재개발조합에 의해 하루아침에 뽑혀 나갔다. 논란이 불거지자 구청은 이식된 노거수의 생육 보고를 꾸준히 받기로 약속하고 주기적으로 현장 확인을 거치기로 했다.

하지만 최근 현장을 방문한 구의원들은 노거수가 이식된 곳은 농장이라 할 수도 없는 곳인 데다 관리 없이 버려져 있었다고 설명했다. 사상구의회 조병길 의원은 “제대로 관리 중이라는 설명과는 달리 수액 주사도 연결관이 빠져 있는 데다 비어 있는 상태였다”며 “주변 모든 수목이 노거수와 함께 썩어 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관리가 아니라 버려진 채 방치돼 있는 것이 맞는 표현”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노거수의 수명이 거의 다했다고 진단했다. 부산대 김동필 조경학과 교수는 “죽지 못해 사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라며 “제대로 관리가 안 돼 본 모습을 상실한 채 광합성도 못하는 상황이다. 인간으로 치면 존엄사를 해야 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노거수 관리가 잘되고 있다’는 입장을 고수한 구청은 의회와 전문가 측 반발에 입장을 바꾸고 노거수 생육 보고를 제대로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구청 관계자는 “올 2월 이후 이달 초 7개월 만에 현장을 찾아 확인해 보니 전반적으로 잡초라든지 덩굴류가 제거가 안 돼 관리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며 “농장 측과 연락이 잘 되지 않았다. 아직 죽은 것은 아니니 생육 상태를 꾸준히 확인하겠다”고 설명했다.

의회 측은 예산 투입과 함께 사상구 자체 노거수 조례를 제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사상구의회 장인수 의장은 “체계적인 관리를 통해 다시 사상구로 데려와야 할 노거수가 고사 위기에 처해 있다”며 “부산시가 노거수 조례를 제정 중인데, 사상구도 별도의 구 조례를 제정해 이번과 같은 비극을 방지하겠다”고 말했다.

곽진석 기자 kwak@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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