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주례동 노거수

임성원 기자 fore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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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본디 신성한 존재로 대접받았다. 단군신화에서는 환웅이 무리 3000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신단수(神壇樹) 아래로 내려왔다고 한다. 대종교에서는 환웅이 하늘 문을 열고 신단수 아래에 내려온 것을 ‘개천(開天)’이라 부른다. 그 신성한 나무 아래 펼쳐진 세상은 신시(神市)였다. 나무는 신성한 존재였고, 숲은 신의 처소였음을 우리 신화는 웅변한다. 경주의 계림, 신유림, 천경림을 비롯하여 오늘에도 마을마다 남아 있는 당산과 서낭당이 주민들로부터 신성시되는 것은 이런 역사와 전통이 나무와 숲을 에워싸고 면면히 흐르는 까닭이다.

나무를 신성한 것으로 여겨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수목숭배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인류 대부분이 공유하는 문화유산이다. 한반도를 비롯하여 만주, 몽고, 시베리아 등 샤머니즘 문화권에서는 수목숭배가 두루 존재하는 자연숭배이자 식물숭배였다. 유럽의 게르만족은 나무에 신의 이름을 붙이고 나무가 우거진 숲을 ‘신성한 숲’으로 여겼다. 켈트족의 드루이드교 사제들은 떡갈나무를 숭배했고 유럽 곳곳에서 월계수, 올리브나무, 떡갈나무 등이 신성시되었다. 신목은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이 만나는 거룩한 곳이자 우주의 중심인 우주목이었다.

종교의 영역을 벗어나도 나무는 사람들에게 소중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50년 된 나무 한 그루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면 1억 4000만 원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나무 한 그루가 자라는 50년 동안 3400만 원어치의 산소를 생산하고, 3900만 원에 해당하는 물을 재생산하며, 대기오염물질 제거 효과가 6700만 원어치의 가치에 맞먹는다고 한다. 더운 날 온도를 낮춰주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할 뿐만 아니라 우울증에 걸릴 확률을 낮추고 신체를 더욱 건강하게 만들어 주기에 최근에 와서는 산림복지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회자할 정도다.

부산 최고령 노거수로 600년간 부산 사상구 주례동 터줏대감 역할을 해 오던 회화나무가 재개발 바람으로 뿌리째 뽑혀 쫓겨난 지 8개월 만에 고사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경남 진주의 한 조경 농장에 강제 이송되었지만 관리는커녕 거의 방치되다시피 하는 바람에 광합성도 못 해 인간으로 치면 존엄사를 해야 할 판이라는 게 전문가 진단이다. 부산의 노거수 관리 실태를 온몸으로 보여 주는 생생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말 못하고 스스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늙은 나무라고 해서 이리 핍박해도 되는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임성원 논설위원 forest@


임성원 기자 fore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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