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만의 ‘고향 여행’… 부산 찾은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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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부산 남구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을 방문한 위안부 피해자인 이옥선(92) 할머니가 소녀상을 어루만지고 있다. 강원태 기자 wkang@ 18일 부산 남구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을 방문한 위안부 피해자인 이옥선(92) 할머니가 소녀상을 어루만지고 있다. 강원태 기자 wkang@

“내가 태어난 곳, 보수동에 한번 가 보고 싶어.”

지난 18일 오후 1시 50분 부산 남구 대연동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이하 역사관) 4층 상설전시실. 16년 만에 고향을 찾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92) 할머니는 어릴 적 살았던 보수동이 그립다고 했다.

남구 일제강제동원역사관 방문

종이 소녀상 바라보며 감회 젖어

보수동·용두산 공원·송도 둘러보고

짧은 2박 3일 일정 마친뒤 떠나

그러나 2박 3일 일정으로 부산에 온 이 할머니는 역사관부터 찾았다. 나눔의 집이 주관한 전시 ‘할머니의 내일’을 둘러보기 위해서다. 휠체어에 의지한 채 전시실로 들어섰다. 강제동원 역사가 담긴 ‘기억의 터널’에 이어 ‘할머니의 내일’이 그를 맞았다.

이 할머니는 자신을 포함한 위안부 피해자 15명의 사진과 작품을 관람하고 전시 중인 ‘종이 소녀상’을 어루만지며 “우리의 역사를 그대로 드러내 줘서 반갑고 고맙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를 향한 한 서린 일침도 빼놓지 않았다. 육신은 비록 사그라들고 있지만 “일본 정부에 대한 공식 사과와 법적 배상을 원한다”는 일관된 의견을 부산에서도 내비친 것이다.

다음 날인 19일부터 이 할머니의 본격적인 고향 여행이 시작됐다. 오전 11시께 동구 초량동에 있는 소녀상부터 찾았다. 감회는 전날 역사관의 종이 소녀상을 쳐다볼 때와 다를 바 없었다. 소녀상 앞에서 이 할머니는 “우리가 이럴 적에 끌려갔어…”라며 차마 말을 잊지 못했다. 오빠가 다녔던 서구 동대신동 화랑초등학교 담벼락도 그를 추억에 잠기게 했다. 형편 탓에 학교에 가지 못해 할머니가 숨어서 눈물을 짓곤 했던 바로 그 학교 담벼락이었다.

다시 찾아온 이 할머니의 기억은 보수동으로 발걸음을 이끌었다. 그러나 15살 때까지 살았던 할머니의 그리운 집은 사라진 지 오래. 그러나 이 할머니는 여전히 남아 있는 집 앞 우물터를 더듬었다. 나눔의 집 관계자는 “우물터 바로 앞에 ‘양철 지붕으로 된 우리 집이 있었다’며 옛 기억에 잠기셨다”며 “그동안 연고도 없으시고 딱히 오려고 하지 않으셨는데 이번에는 유독 부산을 찾고 싶다고 하셨다”고 전했다. 할머니는 용두산공원 부산타워, 송도해수욕장에 이어 20일 해운대 바닷가까지 둘러본 후에야 힘든 걸음을 재촉해 고향을 떠났다.

1927년 부산에서 태어난 이 할머니는 1942년 중국 연길에 있는 ‘위안소’에 끌려가 3년간 성노예 생활을 했다. 2000년 중국에서 돌아와 2006년부터는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서 생활 중이다. 이 할머니는 지금도 수요집회 등에 참석하며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이어가고 있다. 이우영 기자 verdad@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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