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이제 내 안의 촛불을 켤 때
/차재권 부경대 정외과 교수
‘조국 대전’의 승부가 조국 전 장관의 자진 사퇴로 싱겁게 마무리된 느낌이다. 두 달 넘게 이어진 ‘살아 있는’ 조국에 대한 검찰과 야당 그리고 언론의 집요한 공격은 결국 조 전 장관과 정부·여당, 그리고 촛불시민들에게 ‘의문의 1패’를 안겼다. 물론 조국을 지지하는 쪽에선 그의 사퇴가 검찰개혁의 새로운 마중물이 될 것이라 믿고 있다. 하지만 서초동에서 여의도로 옮겨 붙은 검찰개혁의 촛불이 2016년 그때의 촛불처럼 격렬하게 타오를 것 같진 않다. 오히려 이제 권력의 자리에서 내려온 ‘죽은’ 조국을 부관참시하는 또 다른 망나니의 칼춤이 시작되고 있을 뿐이다.
‘조국 사태’가 우리에게 남긴 교훈
부메랑으로 돌아온 공정과 정의
누구도 자유롭지 않은 ‘내로남불’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반칙 일삼고
나 아닌 남 탓만 하는 사회로 변질
자기 안의 티끌 성찰하는 계기로
‘조국 사태’의 결말이 우리 모두에게 보여준 교훈은 무엇일까. 한 가지를 굳이 꼽자면 우리 사회의 어느 누구도 ‘내로남불’의 덫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2016년의 겨울을 뜨겁게 밝혔던 촛불이 내걸었던 ‘공정’과 ‘정의’의 프레임이 그 대상만 뒤바뀌었을 뿐 고스란히 재현된 느낌이다. 조국 사태의 엔딩 크레디트가 광화문을 가득 메운 태극기의 물결로 채워진 이유도 ‘내로남불’을 탓하며 또 다른 ‘내로남불’을 만들어 가는 한국 정치의 악순환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조국 전 장관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내뱉었던 ‘공정’과 ‘정의’라는 말들이 자신을 겨누는 부메랑으로 돌아왔을 때 광화문의 태극기집회가 외친 ‘공정’은 ‘내로남불’에 대한 저항에 다름 아니었다. 하지만 ‘내로남불’이 어디 조국 한 사람의 문제였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에서 권력의 언저리를 서성이는 사람들에게서 우리는 어렵지 않게 ‘내로남불’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국에게 덧씌워진 ‘부모 찬스’의 불공정을 앞서 비난한 자는 누구였던가. 무려 일곱 번에 걸친 ‘부모 찬스’를 통해 자녀들에게 각종 특혜를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야당의 원내대표이다. 조국을 ‘박근혜의 우병우’로 만들지 말라고 경고했던 한 야당 의원은 딸의 KT 부정채용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그럴 리 만무하겠지만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는 국회의원 자녀 대입 전수조사가 실제로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또 다른 ‘내로남불’의 아수라장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정치인들만 ‘내로남불’의 당사자일까. 우리 국민 스스로도 ‘내로남불’의 우를 범하고 있긴 마찬가지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정치에 대한 혐오와 무관심도 뒤집어 생각해 보면 ‘내로남불’의 대중 버전에 다름 아니다. 우리 국민은 국회의원들을 모두 ‘도둑놈’으로 여기며 일은 안 하고 싸우기만 한다고 구박한다. 최근 어떤 여론조사기관에서 내놓은 공공기관 신뢰도 조사에서 국회에 대한 신뢰도는 1.8%에 그쳐 꼴찌의 영예(?)를 거머쥐기도 했다. 과연 국회는 국민으로부터 그런 푸대접을 받아야만 할 존재인가. 의원 개인의 면면만 본다면 일부를 제외하고는 전문적이며, 교양 있고 사려 깊은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이 저잣거리의 필부와 다를 바 없는 싸움꾼이 된 것은 우리 사회에 내재해 있는 엄청난 생존경쟁이 반영된 탓일 수도 있다. 우리의 삶을 잠깐만 여유를 갖고 돌아보자. 매일매일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경쟁 속에서 아귀다툼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가 그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반칙과 불법으로 점철된 잘못들을 관행이란 미명 하에 행하고 있는가. 우리 사회에서 평균적인 시민들이 과연 관용과 용서를 삶의 미덕으로 삼아 살아가고 있는가.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내로남불’은 우리 사회의 솔직한 자화상이자 민낯이다.
왜 우리 사회는 정치인도 일반 국민도 이처럼 ‘내로남불’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인가.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때 ‘내 탓이요’ 운동이 천주교계를 중심으로 펼쳐진바 있다. 88올림픽이 열렸던 그해에 천주교계가 평신도의 날을 계기로 신뢰 회복 운동의 일환으로 펼치기 시작한 캠페인이 전국적인 사회운동으로 확산되어 크나큰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운동이 보내는 메시지는 간결했다. 한마디로 남 탓만 하지 말고 내 안에, 그리고 우리 안에 있는 티끌부터 성찰해 보자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그 후로 그와 유사한 국민적 차원의 ‘내 탓이오’ 캠페인이 다시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접하지 못했다. 그런 탓인지 우리 사회는 내가 아닌 남만 탓하는 사회로 빠르게 변질되어 왔던 것 같다.
나는 기독교 신앙인이 아니다. 하지만 ‘너는 형제의 눈 속에 든 티는 보면서 어째서 제 눈 속에 들어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는 마태복음 7장 3절은 이 혼돈의 시기에 우리 모두가 되새길 명언 중 명언이라 여긴다. 2016년 겨울, 박근혜 전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촛불을 들었던 우리가 이제 각자의 마음 안에 자신을 돌아보는 작은 촛불 하나씩 켜야 할 때가 된 듯하다.
유명준 기자 joon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