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지난 시대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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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윤곽이 드러나면서, 예기치 못했던 난감한 일도 함께 발생했다. 이 사건은 장기 미제 사건으로 남았고, 급기야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21세기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수작으로 꼽히는 ‘살인의 추억’은 장르 영화의 문법을 따르면서도, 내부에서 이를 배반하는 문법으로도 유명하다.

화성 연쇄살인 발생 1980~90년대

5공화국 이후 정권 혼란기와 맞물려

독재권력으로부터 민중 핍박 받아

제도화된 폭력과 공권력 무차별적 발호

당시 민중은 내일의 변화 갈구하며

이춘재 말고도 싸워야 할 적 많아

추리 영화는 대개 ‘범인 찾기’라는 문법을 공유하기 마련이다. 영화 속에서 사건(살인)이 일어나면 형사들이 등장하여 단서(힌트)를 추적하고 종국에는 범인 검거에 도달하는 일련의 플롯이 공통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봉준호는 관습화된 문법에 도전했고, 범인의 얼굴을 모르는 현실 상황을 이용하여, 긴장감을 갖추면서도 결국에는 범인의 형상을 공개하지 않는 이단적인 문법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런데 범인이 체포면서 영화적 애매함이 망실될 위기에 처했다. 현실에서도 범인의 자백은 우리를 놀라게 했다. 우리는 범죄의 참혹함에 놀라야 했고, 대담한 범인의 심리에 다시 놀라야 했다. 그런데 범인의 얼굴이 밝혀지면서, 이 범죄는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기 시작했다. 범인은 반사회성을 지닌 예외적인 존재로 규정되었고, 범죄는 사이코패스가 저지른 손속의 잔인함으로 규탄되었다.

하지만 막상 범인의 얼굴 뒤에 가려진 시대의 얼굴에는 둔감한 분위기이다. 살인자가 출몰했던 시점의 한국 사회는 일종의 정치적 격변기에 해당한다. 1986년 9월부터 1991년 4월까지 화성(태안)에서 일어난 부녀자 폭행 살해 사건을 일컫는 화성 연쇄살인 사건 시기는, 대체로 5공화국과 그 이후 정권의 혼란기와 맞물려 있다. 당시 민중은 독재(자) 권력으로부터 핍박을 받고 있었고, 뜻 있는 인사들은 핍박을 이겨내기 위하여 반체제 운동을 계획하고 있었으며, 그 과정에서 죽음과 폭력과 의문이 난무하고 있었다. 인명 경시의 풍조도 분명 심각했다. 개인의 생명과 인권을 소홀하게 여기는 풍조가 일반적이었고, 제도권으로부터 감행되는 폭력의 강도도 훨씬 강력했다. 시위대는 백골단이라는 불법적인 검거조와 맞서야 했고, 시위 이후에 감당해야 할 피해도 매우 심각했다. 어쩌면 이처럼 혼란한 사회였기에 범인의 폭력은 덜 주목받고, 범인의 얼굴은 더 쉽게 숨겨졌을지 모른다. 제도적인 폭력과 공권력의 무차별적 발호 앞에서, 범인의 폭력이 적어도 지금보다 두드러져 보이지 않았던 것만은 분명하다. 이춘재의 범행이 단순히 개인적 소치로 치부되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 시대 부당함을 평가하는 데에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사소한 사례일지 모르지만, 그 시대의 폭력을 이해하는 데에는 꽤 유용한 실례일 수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은 부당한 폭력의 시대였고, 당시 민중은 ‘이춘재’ 말고도 싸워야 할 적이 많은 상태였다. 1980년 광주 학살의 주범과도 싸워야 했고, 이를 기반으로 부도덕하게 세워진 정권과도 대결해야 했다. 학원은 시위와 저항의 물결로 넘쳤고, 민중은 내일의 변화를 갈구하며 ‘얼굴 없는 시대의 적’과의 싸움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때는 분명 미래의 독자들이 이 사실을 이해하기를 간절하게 바랐을 것이다. 얼굴 없는 적이 도처에 널렸지만 밝혀내기 어려웠기에, 적어도 미래에는 그 정체가 분명하게 드러나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 시대, 크고 작은 범죄자 얼굴은 이춘재만큼이나 어릿했다고나 할까. 문제는 지금도 그 얼굴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한다는 사실이며, 그 범인을 올곧게 지목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춘재 뒤에 숨어 있는 그 시대의 범죄와 그 범인을 함께 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폭력의 시대에서 더 큰 폭력으로, 이춘재의 폭력을 덮었던 그 범인도, 우리는 꼭 확인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김남석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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