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의 도시 싱가포르] 싱가포르 맛보면 세계 맛본다
1915년 싱가포르 슬링이 처음 탄생한 래플스 호텔의 롱바에서 한국인 바텐더가 칵테일을 만들고 있다. 영국의 작가 서머셋 몸은 싱가포르 슬링을 ‘동양의 신비’라고 극찬했다.
인도양과 태평양을 잇는 도시국가, 동서무역의 중심지이자 국제금융도시인 싱가포르. 위치가 가장 큰 자원이라는 싱가포르의 음식은 중국과 말레이, 두 민족이 뒤섞인 페라나칸, 인도와 아랍까지 다양한 부분을 아우른다. 그만큼 싱가포르 음식은 세계 각국 음식들의 경연장이자 미식의 최전선에 놓여있다. 전 세계의 세프들이 싱가포르로 모여드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고급 식당부터 길거리 음식까지 ‘풍성’
칠리 크랩·카야 토스트·치킨 라이스 유명
정부 주도로 만든 골목식당 ‘호커스’
노점 최초로 미슐랭 스타 받은 식당도
‘싱가포르 슬링’ 탄생 래플스 호텔 ‘롱바’
땅콩 껍질 바닥에 버리기 전통으로 굳어져
핫한 밤문화 즐길 수 있는 ‘클락키’
24시간 쇼핑센터 ‘무스타파’도 인기
노점상들이 한데 몰려있는 골목식당 호커스. 미슐랭 스타를 받은 가게도 있다.
실패 없는 가성비 골목식당 호커스
싱가포르에서는 반드시 예약을 해야 하는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부터 현지인처럼 간단히 즐길 수 있는 길거리 음식까지 선택의 폭이 넓다.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음식은 칠리 크랩이다. 싱가포르에서 발명된 요리로 모든 크랩 요리의 왕이라고 불린다. 이름과 달리 크게 맵지 않으며, 달콤하면서 짭짤한 소스의 맛이 일품이다. 칠리 크랩은 만토우라고 불리는 튀기거나 찐 빵하고 같이 먹는데, 만토우를 크랩 소스에 찍어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추로 만든 소스가 뿌려진 페퍼 크랩은 최근들어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더 맵고 더 자극적이지만 손에 양념이 많이 묻지 않아 특히 여성들이 즐겨 찾는다.
카야 토스트는 아침 식사로 즐겨먹는 구운 샌드위치다. 숯불이나 팬에 구운 빵 조각에 버터 조각을 넣고 코코넛과 달걀로 만든 전통 잼인 카야를 넉넉히 발라 만든다. 커피에 연유를 넣어 만든 싱가포르식 커피인 ‘코피’와는 환상의 짝꿍이다.
닭 육수와 생강 등을 넣어 지은 밥 위에 부드럽게 삶은 닭고기를 얹은 치킨 라이스는 싱가포르의 국민음식으로 불린다. 하이난식 닭 덮밥으로 길거리와 유명 레스토랑, 호텔 등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이밖에 코코넛 밀크로 맛을 낸 면 요리인 락사, 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 꼬치 구이 사테 등은 현지에서 사랑받는 음식이다.
페라나칸 요리는 우리나라처럼 한 상 가득 차려져 나와 서로 나눠먹는 페라나칸 가정식이다. 낯설지만 입안을 오래 감도는 블랙너트를 기본양념으로 해 현지인은 물론 여행객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페라나칸 요리. 우리나라처럼 한 상 차림이다.
이 다양한 음식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장소가 싱가포르식 푸드코트인 호커스, 또는 호커 센터다
싱가포르에는 노점상 대신 일정한 구역보다 간이식당이 몰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곳이 호커스다. 정부가 위생관리를 이유로 노점상들을 한데 모아 만든 골목식당으로 안심하고 저렴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각 매장에 가서 음식을 주문한 뒤 받아와 가운데 있는 식탁 아무 데나 앉아서 먹으면 된다.
노점으로는 최초로 미슐랭 스타를 받은 식당도 있어 여행객과 현지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싱가포르를 배경으로 지난해 개봉해 큰 화제를 모은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에 세계적 재벌인 주인공이 호커스에서 음식을 즐기는 모습이 방영되기도 했다.
호커스 말고도 시내에는 쇼핑센터 안에 푸드코트가 많이 있어 일반 레스토랑보다 훨씬 싼값으로 다양한 메뉴를 즐길 수 있다. 오차드 로드의 ‘푸드 리퍼블릭’과 ‘푸드 오페라’, 부기스 지역의 ‘푸드 정션’이 대표적이다.
석양을 닮은 핑크 색깔이 인상적인 칵테일 싱가포르 슬링.
최고급 바에서 싱가포르 슬링 맛보기
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도 한번쯤은 이름을 들어봤을 칵테일이 싱가포르 슬링이다. 진과 체리브랜드를 사용해 맛과 향이 적절히 조화를 이룬 칵테일로 석양을 연상케 하는 핑크색깔과 술잔에 꽂은 파인애플 한 조각이 포인트다.
싱가포르 슬링이 처음 탄생한 곳은 래플스 호텔의 롱바. 1915년 이곳의 바텐더였던 니암 통 분이 당시 음주가 금지됐던 여성들을 위해 과일 주스처럼 색깔과 향을 만든 것이 시초다. 영국의 작가 서머셋 몸이 ‘동양의 신비’라고 극찬하면서 더 유명해졌다.
롱바 앞에는 니암 통 분의 입간판이 서 있고, 항상 대기 인원으로 북적거린다. 롱바 안은 바 이름의 유래가 된 긴 테이블이 늘어서 있다. 천장에는 에어컨 대신 줄지어 매달린 동양식 부채가 자동으로 바람을 일으키는 고풍스런 분위기다.
바닥에는 롱바의 상징이 된 땅콩 껍질이 수북하다. 쓰레기 버리는 것에 엄격한 싱가포르지만 이곳에서만은 땅콩 껍질을 바닥에 던지는 것이 전통으로 굳어졌다.
싱가포르 슬링은 바텐더에 따라 다양한 레시피가 존재하는데, 지금 롱바의 바텐더는 35살의 한국 청년 신재민 씨다. 신 씨의 화려한 손놀림에 싱가포르 슬링이 만들어지고, 다른 손님들이 감탄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색다른 볼거리다.
싱가포르는 낮보다 밤이 더 아름답다. 싱가포르의 야경을 한눈에 보기 위해서는 금융 중심가에 위치한 원 앨티튜드 바가 제 격이다. 싱가포르에서 제일 높은 건물의 63층 루프탑에 자리해 마리나 베이가 한눈에 들어온다.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에서 펼쳐지는 야간 레이저 쇼를 옥상에서 내려다보며 싱가포르 슬링 한 잔을 기울이면 싱가포르를 제대로 즐기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마리나 베이 주변에는 이밖에도 야경과 함께 한잔 기울일 수 있는 호화로운 바들이 가득하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양조장’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레벨 33에서는 야외 테이블에 앉아 갓 나온 맥주를 즐길 수 있다.
밤이 더 즐거운 마리나베이와 클락키
싱가포르라고 해서 밤이 밋밋할 것이라고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싱가포르 강을 따라 연결된 마리나 베이와 클락키에는 일찍 잠들기에는 너무나 아쉬운 화려한 밤이 펼쳐진다.
마리나 베이는 물 확보를 위해 싱가포르 강 하구를 댐으로 막으면서 생긴 호수로, 싱가포르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들을 품고 있다. 거대한 배 모양 조형물이 타워 3개를 연결하고 있는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머라이언이 물을 내뿜는 머라이언 파크 등을 모두 걸어서 볼 수 있다.
싱가포르는 ‘사자의 도시’라는 뜻인데 14세기 초반 이 도시를 발견한 수마트라 섬의 왕자가 사냥 도중에 사자를 봤다는 전설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싱가포르에는 사자가 살았다는 기록이 없으니 왕자가 본 것은 아마도 호랑이였을 가능성이 크다.
마리나 베이에서는 매일 밤 8시와 9시 30분에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에서 시작하는 레이저쇼를 볼 수 있다. 이곳에서 ‘통캉’로 불리는 범보트를 타고 강을 거슬러 클락키로 가 보자. 키는 화물을 내리던 부두라는 뜻으로 지금은 싱가포르에서 가장 활기 넘치는 밤 문화가 있는 곳이다.
밴드가 연주하는 트렌디한 클럽이나 강변을 따라 놓인 노상 펍에서 시원한 맥주와 함께 야경을 바라보면 싱가포르의 밤이 조금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가족과 함께 호젓한 밤을 즐기고 싶다면 세계 최초의 야간 동물원인 나이트 사파리를 방문해 보자.
동남아의 열대 우림, 아프리카의 사바나 등을 재현한 8개 구역을 전기 트램을 타고 40분간 둘러보는 코스가 인기다. 사자, 코뿔소, 코끼리, 하이에나 등이 밤에 먹이활동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차이나타운의 골목길.
오랜 역사, 이야기를 담은 헤리티지 호텔
싱가포르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우아한 분위기를 갖춘 유서 깊은 호텔이 많다. 마리나 베이와 싱가포르 강을 끼고 있는 풀러턴 호텔은 200년 전에 세워져 우체국으로 사용돼 오던 싱가포르의 국립기념물이다.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호텔로 거대한 석조 기둥과 호텔 앞에 놓인 싱가포르 최초의 다리가 인상적이다. 다리 위에는 “짐 수레와 우마차는 통행을 금한다”는 옛 안내판이 그대로 서 있어 눈길을 끈다. 다리를 건너면 바로 아시아 문명박물관 등이 있는 올드타운과 이어지고 머라이언 파크와 클락키도 가깝다.
래플스 호텔은 싱가포르에서 가장 오래된 호텔로 싱가포르 슬링 칵테일의 원조인 롱바가 있는 곳이다. 하얀 색의 고풍스런 건물과 터번을 쓴 시크 용병이 문 앞을 지키고 서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래플스는 싱가포르를 옛 조호르 왕국에서 사들어 영국 식민지로 만든, 싱가포르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다. 싱가포르의 지명 곳곳에 래플스의 이름이 남아있다. 래플스 호텔은 모든 객실이 스위트룸으로 돼 있으며, 세계의 왕족들과 찰리 채플린 등 유명인이 묵었던 호텔로도 유명하다.
리틀 인디아 지역에 있는 원 패러 호텔은 호텔 내부를 장식한 예술품들과 직접 호텔 옥상에서 재배한 유기농 식재료를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주변에 24시간 운영하는 쇼핑센터인 무스타파가 있어 한국인들이 즐겨 찾는다. 인기 상품은 히말라야 수분크림과 호랑이 연고, 부엉이표 커피, 하마 초콜릿 등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물건을 따로 모아놓은 코너도 있다.
정상섭 선임기자 verst@busan.com
정상섭 선임기자 verst@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