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양심적 병역거부 '등대사 사건' 80주년 부산특별전 개최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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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서 재판 기록 등 자료 전시
집안 4대가 양심적 병역거부로 총 28년간 수감

여호와의 증인 제공 여호와의 증인 제공

한국 최초의 양심적 병역거부 사례로 평가받는 '등대사 사건' 8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 전시회가 부산에서 열린다.

여호와의 증인 한국지부는 12일 부산 남구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6층 멀티미디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날 오후부터 내달 13일까지 역사관 기획 전시관에서 등대사 사건 재판 관련 기록 등을 대중에 공개하는 "변하는 역사, 변하지 않는 양심" 전시회를 연다고 밝혔다.

'등대사 사건'은 일제강점기인 1939년 6월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천황 숭배와 징병을 거부해 치안유지법 위반 및 불경죄로 체포된 사건이다. 등대사는 '여호와의 증인' 법인체인 '워치타워(watchtower)'의 번역 표현이다.

일제는 최소 66명을 기소했으며, 당시 한반도 전역의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해방으로 석방될 때까지 평균 4년 6개월을 비전향 장기수로 복역했고, 이들 중 6명은 옥사했다. 이 사건은 한반도 최초의 양심적 병역 거부 사건이자 일제 저항운동으로 기록되었다.

부산에서 열리는 전시회에는 국사편찬위원회에 보관된 6천쪽 분량의 등대사 사건 관련 기록들을 정리하고 분석한 자료들이 공개된다. 또한 ▲ 등대사 사건 시작부터 종결까지의 과정 ▲ 일제 천황 숭배 거부자에게 가해진 고문 및 옥사자 사례 ▲ 일제 강점기 당시 등대사 기능과 구성원 ▲사건으로 체포된 신도 명단 등을 적은 등대사 조직도 ▲ 병역거부로 조사받은 피의자 신문조서 등이 공개된다.

여호와의 증인 제공 여호와의 증인 제공

전시회 자료에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 장순옥 씨가 서대문형무소에서 일본 천황의 궁을 향해 절하는 '궁성요배'를 끝까지 거부해 5년 5개월간 수감되고 고문을 당했던 일, 집안 4대가 양심적 병역거부로 총 28년간 수감된 옥계성 씨 일가 이야기도 포함됐다.

옥 씨의 장남과 차남은 일제의 신사참배와 병역을 거부해 감옥살이를 했고, 삼남은 일본에서 옥사했다. 해방 후에는 그 후손들도 병역거부를 이유로 형사처벌을 받았다.

부산 사상구에 거주하고 있는 옥 씨의 증손자 옥규빈 씨는 2016년 병역을 거부했으나 2018년 11월 양심적 병역거부가 정당하다는 대법원 판결 이후 대체복무를 기다리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옥규빈 씨는 양심적 병역거부 선언 이유에 대해 "할아버지처럼 신념을 굳게 유지하면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며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성경에서 사랑을 거듭 강조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체복무제가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라며 "이미 많은 국가에서 대체복무제가 잘 시행되고 있는데, 한국에서도 민간 차원의 대체복무제가 도입된다면 열심을 다할 것이다. 더는 범죄자가 아닌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주시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 여호와의 증인 제공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 여호와의 증인 제공

역사학자인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는 "여호와의 증인에 대해 '수혈도 안 하고 국기에 대한 경례도 안 하는 이상한 사람들'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살다가 2000년대에 병역거부 문제를 통해 처음 알게 됐다"며 "(대체복무 도입이)분단국가라 시기상조라는 이야기를 많이들 했는데, 지금 3대가 감옥에 가지 않느냐. 일제 시대에도 감옥을 갔고, 군사독재 시절에도 감옥에 갔는데, 민주정부가 들어섰으면 좀 달라져야 하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등대사 사건에 대해 "성직자도 없이 신자 전원이 수감됐는데 모두 비전향한 것은 기가 막힌 일이다. 사회주의 운동사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갔지만 해방 당시 비전향한 사람은 스무 명 남짓"이라고 언급했다.

입법을 앞두고 있는 대체복무제도에 대해서는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화가 많이 난다"면서 "(도입을)하려면 제대로 해야하는데 아직도 징벌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돌이켜보니 헌법에 양심의 자유라는 것이 있지만 그것을 가장 철저히 수행해온 사람은 여호와의 증인들이었다. 그 점은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면서 "한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깊은 경의를 표하는 바"라고 덧붙였다.

2018년 대법원의 양심적 병역거부 허용 판결 전 여호와의 증인 신도 관련 병역법 위반 재판은 937건이었다. 대법 판결 이후에는 관련 재판을 받던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에게도 무죄가 확정되고 있다. 한국 전쟁 이후 병역법 위반으로 수감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는 모두 1만9천350명이다.

등대사 사건 전시회는 앞서 지난 9월 한 달간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개최된 바 있다. 여호와의 증인 측에 따르면 전시회에는 외국인 관광객 5,700여 명을 포함해 총 51,175명이 참관했다.


여호와의 증인 제공 여호와의 증인 제공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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