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주의 맛있는 인터뷰] 10여 년째 ‘문화골목’대장 노릇 최윤식 건축사

윤현주 기자 hoho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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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고 짓는 건 고쳐 쓰는 것만 못 해… 문화골목에 실현”

최윤식 건축사가 자신이 대장으로 있는 ‘문화골목’에서 포즈를 취했다. 그는 “문화골목의 성공 사례를 통해 건축학도들에게 부산에서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강원태 선임기자 wkang@ 최윤식 건축사가 자신이 대장으로 있는 ‘문화골목’에서 포즈를 취했다. 그는 “문화골목의 성공 사례를 통해 건축학도들에게 부산에서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강원태 선임기자 wkang@

최윤식(61) 건축사의 별명은 ‘골목대장’이다. 주먹깨나 쓰는 ‘어깨’라서가 아니라, 복합문화공간 ‘문화골목’의 주인장 노릇을 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경성대 인근 주택가에 자리한 문화골목은 지난 2008년 문을 연 뒤 문화 교류와 소통 공간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다. 부산 토박이인 최 건축사의 B급 감성과 열정이 버무려진 결과이다.

이곳에서는 1년 내내 음악이 흐르고 연극이 펼쳐지며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이뤄진다. 몇 년 전부터는 건축을 전공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매년 건축제를 열고 있다. 선발된 학생들은 무료로 숙식을 제공 받고 화려한 강사진의 강의를 들으며 인문학적 식견을 넓히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최 건축사는 내년 1월 제4회 건축제 일정을 벌써 확정하고 학생 모집에 나섰다.

문화골목에서 그를 만나 골목 운영과 건축철학 등에 대해 들어 봤다. 그는 “작금의 부산 건축은 분명히 과잉 상태”라고 진단했다.

부산서 건축 식견 넓힐 기회 주고 싶어

내년 1월 초에도 ‘골목 건축제’ 개최

건축 관련 전공 학생 20명 선발해

3박 4일간 초청 강연·토론 등 진행

건축제 주관은 ‘문화호위단 장용영’

친목 조직 출발, 곧 비영리단체 전환

10여 년간 지원 없이 문화골목 운영

건축·음악·그림·음식 어우러진 공간

폐자재 재활용한 도시재생 전범 평가

여전히 컴퓨터 대신 손으로 스케치

감성·섬세함은 손 스케치 못 따라와

바다서 보는 부산, 콘크리트 절벽 같아

고층 일변도 정책은 시민 모두의 책임

그림전이 열리고 있는 갤러리 내부 모습. 그림전이 열리고 있는 갤러리 내부 모습.

-지난 1일부터 12월 말까지 갤러리에서 그림전을 열고 있는데….

“완전한 기성 작가는 아니고 중앙대 출신의 중견급 화가들 그림을 전시하고 있다. ‘골목’에 어울릴 만한 내용을 담고 있는 그림들로 구성했다. 한동안 그림전이 뜸했는데, 이제 경영이 궤도에 올랐으니 자주 개최할 계획이다.”

그의 겸양과는 달리 이곳에서 지금껏 20여 회의 그림전이 열렸다.

-내년 제4회 골목 건축제(1월 10~13일) 행사의 세부 항목이 벌써 결정됐나?

“그렇다. 예년과 달리 서울과 해외 학생들을 포함해 건축·도시·실내디자인·조경 등을 전공하는 20명의 학생들을 선발해 3박 4일간의 디자인 캠프를 열 예정이다. 초청 강연과 팀별 토론 및 발표 등으로 진행된다. 강사로는 서현 건축가, 박청화 역술인, 최은희 경성대 무용학과 교수, 선재 계명암 주지스님 등이 나선다.”

골목 건축제는 화려한 강사들 면면으로 정평이 나 있다. 지금까지 거쳐간 강사는 승효상 건축가, 김홍희 사진가, 류춘수 건축가, 김수우 시인, 오준식 디자이너, 이원복 부산박물관장, 이해인 수녀, 박찬일 셰프, 김춘자 화가 등이다.

-골목 건축제를 여는 목적은 뭔가?

“현재 부산건축제도 나름대로 많은 활동을 하고 있지만, 보여주기 위한 측면이 있다. 건축학도들 사이에 아직도 건축을 하려면 무조건 서울로 가야 한다는 막연한 동경이 있는데, 서울과 해외 학생들을 불러 와 부산 학생들과 교류하게 함으로써 부산에서 건축적 식견을 넓힐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마련해 주고 싶었다.”

-건축제 주관 단체가 ‘문화호위단 장용영’으로 돼 있는데, 어떤 모임인가?

“후배 건축가들과 건축직 공무원, 박물관장 등으로 구성된 친목 조직으로 출발했는데, 곧 비영리단체로 전환할 예정이다. 인문학 공부, 문화마실 행사, 스케치 작업 등을 같이 하려 만든 조직이다. 장용영은 정조대왕의 호위무사 이름이다. 고 신해철의 팬클럽 이름인 ‘철기군’에서 힌트를 얻어 지었다. 부산 문화를 호위하자는 거창한 뜻을 담고 있다.(웃음)”

-당초 문화골목을 만든 의도는 뭔가?

“오래 묵은 숙제라고 해야 하나. 대학 시절에 고 김수근 선생이 운영하던 서울의 ‘공간’ 사옥에 견학간 적이 있다. 그때 나도 건축사가 되면 저런 건물을 하나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건축학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문화골목의 성공 사례를 통해 ‘부산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무엇을 부수고 그 자리에 완전히 새로운 건물을 짓는 건 낭비적 요인이 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낡은 단독주택 5채를 매입해 리모델을 통해 골목을 내고 연결 통로를 만들어 문화골목을 완성했다.”

최 건축사는 10여 년간 관의 지원 없이 문화골목 운영을 성공적으로 해 왔다. 특히 ‘문화마실’ ‘영화마실’ ‘건축마실’ 등 ‘마실’ 시리즈의 모임을 주도하며 전문가는 물론 일반 시민의 인문적 소양 함양에 힘써 오고 있다. 그의 노력으로 이제 문화골목은 건축은 물론, 연극·음악·그림·음식 등이 어우러져 소비되고 그것이 일상의 창의성으로 재생산되는 공간이 되고 있다.

문화골목의 외부 모습. 문화골목의 외부 모습.

-처음과 비교해 변화가 있지 않았나?

“그렇다. 하드웨어 측면에서 길 건너 있던 ‘노가다’ 건물을 매각하고 대신 원룸을 인수해 게스트하우스를 열었다. 숙박이 가능해지면서 건축제를 개최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 소프트웨어 측면에선 1인 운영 체제에서 직원들을 독립시켜 각 업소를 운영하도록 세를 내줬다.”

현재 ‘골목’은 용천지랄소극장, 꽃갤러리 포레, 전통주점 고방, 커피와 와인 전문점 다반, 퓨전요리점 몽로, 일식집 해화도, 음악이 있는 생맥주집 노가다, 게스트하우스 길손, 작업실, 사진 스튜디오, 사무실 등으로 구성돼 있다. 최 건축사는 돈 없이는 이 같은 문화공간의 지속 가능성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경제적 자립 기반 조성에 힘을 쏟아 왔다고 밝혔다. 그는 “그 결과 굴러 가는 바퀴가 처음엔 사각형이었다가 육각형을 거쳐 팔각형 정도가 됐다”며 “결국 부채를 줄이면 원통형 바퀴로 굴러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향후 문화골목의 진화 방향은?

“주차장 확보가 시급하고 갤러리 공간을 넓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독립영화관 확보도 중장기적 과제이다. 아무튼 내가 없더라고 이 공간이 잘 굴러갈 수 있도록 기반을 탄탄히 하려고 고민하고 있다.”

-건축 철학은 뭔가?

“건축이 삶을 보장하는 단계를 지나 너무 과잉된 상태에 있다. 나는 200만 호 건설 등 건축의 양적 팽창 단계에서 건축 일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래서 무조건 부수고 새 건물을 짓는 것에 대한 반감을 많이 가졌다. ‘헐고 짓는 것은 고쳐 쓰는 것만 못하고, 고쳐 쓰는 것은 깨끗이 쓰는 것보다 못하다’는 말이 있지 않나. 이 같은 생각 자체가 문화골목에 실현돼 있다고 생각한다. 문화골목을 만들 땐 도심재생이라든가 리모델링이란 용어가 사용되지 않을 때였다.”

문화골목은 2008년 ‘골목길을 소통의 공간으로 만들었고 폐자재를 재활용한 도시재생의 전범을 보여줬다’는 평가 속에 ‘부산다운 건축상’ 대상을 받았다. 최 건축사가 대표로 있는 ㈜가산디앤씨종합건축사사무소의 실적을 보면 사실 새 건물 설계보다는 리모델링과 인테리어 디자인, 도심재생 쪽에 방점이 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내년 초 열릴 건축제 팸플릿. 내년 초 열릴 건축제 팸플릿.

-2018년 1월~2019년 2월까지 〈부산일보〉에 ‘사라진 근대 건축, 잊힌 근대 건축’ 스케치 연재를 했는데, 뭘 보여 주고 싶었나?

“건축가로서 부산의 주요 근대 건축물들을 기록하고 싶었다. 대부분 사라지고 사진으로만 남은 것들인데, 상상력을 발휘해 원형을 복원해 남겨 놓고 싶었다.”

김 건축사는 컴퓨터 대신 손 스케치에 천착하고 있다. 아무리 컴퓨터가 뛰어나다 해도 손 스케치의 감성과 섬세함은 따라오지 못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년 6월에는 부산 동구청과 함께 ‘2020 부산 하꼬방 도시 스케치 페스티벌’을 열 계획이다. 지난 1월 40여일 간의 남미 여행을 다니며 스케치한 내용을 〈건축사신문〉에 연재하기도 했다.

최 건축사는 스케치 실력이 빼어날 뿐만 아니라 음악과 연극 등 예술 분야에 두루 소질이 있다. 과거 일신설계에서 일할 때 음악주점 ‘고방’을 운영하기도 했고 인형극단 ‘까치’에 몸을 담기도 했다. 현재 문화골목의 ‘노가다’에는 그가 학생 때부터 모은 LP와 CD 2만 여장이 소장돼 있다. 그는 손님들에게 직접 고른 음악을 틀어주는 DJ 역할도 겸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부산의 건축 정책이 고층빌딩 일변도로 흐른 데 대해 평가해 달라는 요구에 최 건축사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바다에서 보면 마치 콘크리트 절벽이 서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었다. 부산은 피란수도가 아니었나. 꼭 집어 누구를 탓하기는 어렵다. 수요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건물이 들어선 거다. 공무원, 건축가, 건축주, 시민이 각각 N분의1씩 책임이 있다.”

그러면서 건축적으로 살기 좋은 도시, 부산을 만들기 위해서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삶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전제돼야 균형 있는 도시 건설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윤현주 선임기자 hohoy@busan.com


강철 체력 비결은 ‘공인 4단’ 검도 실력

최윤식 ‘문화골목’ 대장은 작은 키에 다부진 체격을 갖고 있다. 술을 좋아하면서도 많은 일을 해 낼 수 있는 것은 탁월한 체력 덕분이다. 그의 체력을 뒷받침하는 게 바로 검도. 30년의 경력을 자랑하는 그의 검도 실력은 공인 4단. 승단에 대한 욕심을 안 내기에 4단에 머물러 있지만 진짜 실력은 그 이상이라는 게 관계자의 전언.

그는 “일주일에 4번 정도는 운동을 하려고 노력한다. 검도는 자학의 운동이다. 상대는 바로 나 자신이다. 심하게 울고 나면 개운하듯이, 검도를 하는 동안 극한까지 체력을 소진하고 나면 일종의 쾌감을 느낀다”며 검도 예찬론을 폈다.

하긴 그의 별명대로 골목대장 노릇을 하려면 강철 체력이 없이는 어려운 일일 터. 더욱이 장용영 같은 문화의 호위무사가 되려면 검도가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든다.


윤현주 기자 hoho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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