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한겨울 밤의 꿈
/송시섭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변호사
영국 청교도혁명은 잉글랜드 내전(1642~1651)으로 불리는 긴 전쟁의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호국경 올리버 크롬웰이 찰스 1세를 처형하고 새롭게 연 ‘공화국’은 지금과 같은 ‘민주공화국’이라기보다는 ‘왕이 없는 나라’의 다른 이름이었다. 20년간의 크롬웰 치세에 연극은 천박하고 음란한 문화였고, 법적으로 금지된 영역이었다. 이러한 ‘청교도적 공백’이 지난 후 재조명된 문화가 바로 셰익스피어의 연극들이다. 그 중에서도 단연코 ‘희극’들이 전해 준 웃음으로 인해 시대를 억누르던 엄숙함이 끝나고 유쾌함이 돌아왔고, 사회에 만연한 근엄함이 사라지고 유머가 살아났다.
집권 초 신선함 준 대통령의 웃음
어느새 사라지고 근엄함만 남아
대화 단절되고 국민은 광장에 나서
갈등과 투쟁 벗어나 여유 회복해야
대통령의 소통 재개 노력 바람직
새로운 활력의 집권 후반기 기대
임기 반환점을 돈 문재인 정부에게서 오랫동안 발견하지 못했던 모습도 바로 ‘웃음’이었다. 후보 시절 너무 웃음이 잦아 카리스마가 부족해 보인다는 평까지 들었던 대통령이 집권 초기 청와대 참모들과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환하게 웃던 모습은 국민들의 마음에 신선함과 평안함을 가져다주었다.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도보다리를 거닐면서 나눈 담소 중 보여준 미소도 일품이었다. 하지만 그 후 경제정책의 성과가 쉬 나타나지 않고, 한·일 관계가 냉각되며, 미국으로부터는 감당하기 버거운 청구서들이 도착하면서 대통령의 입가에서 미소를 찾기 어려워지더니 급기야 ‘조국 사태’를 지나면서 얼굴은 굳어지기 시작했다. 대통령의 입가에서 웃음이 사라지자 참모들의 얼굴에서도 여유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대통령의 웃음이 끊어지자 야당과의 대화도 단절되고 국민은 거리로, 광장으로 달려가게 되었다. 큰 산을 넘어 반환점을 돌고 있는 이즈음 이른바 '청교도적 공백'을 끝낼 때가 됐다. 너무 근엄한 대통령, 너무 굳어버린 각료들, 너무 싸우는 여야 대표들, 경색, 단절, 대립, 막말과 고성이 일상의 용어가 되어 버린 지금 더 추운 겨울바람이 불기 전에 우리 국민들을 광장에서 극장으로 돌아오게 해야 한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중 지금 우리들이 다시 봄 직한 연극은 ‘한여름 밤의 꿈’이다. 갈등이 촉발되는 엄숙한 아테네의 궁정을 벗어나 요정들이 사는 숲속으로 떠나볼 수 있는 여유를 가져다주는 이야기는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공기를 들이마실 여유를 가져다줄 것이다. 긴장을 늦추고, 허리띠를 풀고, 주변의 조명을 살그머니 낮춘 다음, 소소한 익명성의 세계로 다시 돌아갈 준비를 해보자. 사랑의 대상이 잘못 이어지는 바람에 벌어지는 쫓고 쫓기는 젊은 연인들의 모습에서 관객들은 현재 우리나라의 얽히고설킨 갈등과 분쟁의 실타래를 보게 될 것이다. 큐피드의 화살처럼, 사랑의 묘약처럼 일순간 우릴 다시 한 번 사랑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수 있는 ‘꽃즙’은 어디 있는가. 다시 한 번 다른 진영 사람들을 적으로 보지 않고 보듬고 경청하고 존중할 수 있게 만들어줄 장난꾸러기 ‘퍽’은 어디 있는가. 수많은 외침(外侵)과 어두운 식민지배를 꿋꿋하게 버텨온 저력의 한민족은 어디 있는가. 새로운 호흡을 가다듬고, 한마음 한뜻이 되어 새로운 나라, 멋진 대한민국을 만들어 낼 우리는 어디 있는가.
최근 대통령과 야당 대표들과의 만찬이나 청와대 실장 3인방의 최초 합동 기자회견, 다가올 국민과의 대화 등을 통해 비록 작은 마찰음이 들려오더라도 더 자주 만나고 소통하고 대화하고자 하는 모습은 바람직하고도 마땅한 일이다. 이제 남은 국정 후반기에는 그동안의 굳은 표정, 근엄한 질책을 내려놓고 참모들과의 가벼운 농담과 야당에 대한 여유 있는 대꾸를 통한 호탕한 웃음소리를 회복하길 기대한다. 이를 계기로 우리 국민 모두도 차가운 광장, 스산한 거리에서 따뜻한 감성이 넘치는 극장으로 돌아올 수 있길 바란다.
첫눈이 내려 더욱 깊어져 가는 겨울, 청와대로부터 시작된 웃음소리가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누비게 되고, 우리 모두가 함께 키득거리면서 보게 될 ‘한겨울 밤의 꿈’에서 벌어질 정치인들의 유쾌한 이합집산을 통해 새해에는 보다 많은 웃음바이러스를 퍼뜨릴 인재들이 여의도에 입성하길 바란다. 이제 투사의 시대는 끝나야 하고 광대의 시대가 도래해야 한다.
‘한여름 밤의 꿈’ 속에는 연극 속의 작은 연극이 등장한다. 주인공들이 헤매던 숲속에서 준비되고 있다가 극의 마지막에 드디어 무대에 오르는 단막극의 주연들은 목수, 직공, 재단사 등 평범한 그 시대의 노동자들이다. 그들이 펼치는 신나는 한판의 마당극을 통해 주인공들 간에 그 동안 쌓였던 모든 갈등과 피로가 해체되는 경험을 하게 되면서 연극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지난 몇 달간 우린 너무나 길고도 깊은 미로 속을 허우적거리며 헤맸다. 하지만 이제 그 모든 어두움을 물리치고 새로운 빛을 찾을 때가 되었다. 우리 모두가 ‘희극’을 즐길 줄 아는 평범한 시민들로 돌아올 때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