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고, 버려지고, 잊힌 것들이 프레임에서 살아났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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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사진미술관·KT&G 올해의 작가 3인 사진전

고성의 ‘그림자들 헤아리다 지문이 거멓다 oss2628’.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고성의 ‘그림자들 헤아리다 지문이 거멓다 oss2628’.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사라진 존재, 버려진 존재, 잊혀진 존재에 대한 탐구. 한국 사진의 새로운 미래를 열고 있는 젊은 사진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기회가 왔다.

고은사진미술관과 KT&G 상상마당이 함께하는 ‘제11회 KT&G SKOPF 올해의 작가전’이 문을 열었다. 신진 사진작가를 발굴·지원하는 연례 기획전으로 ‘올해의 최종작가’로 선정된 김승구와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고성, 정정호 3인의 작품이 고은사진미술관(부산 해운대구 우동)에서 내년 2월 19일까지 전시된다. 지난 1일 열린 아티스트토크에서는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세계와 작업 뒷이야기를 들려줬다.


고성

풀벌레 ‘사라진’ 숲 낯선 경험

김승구

‘버려진’ 밤섬에서 만난 도시

정정호

‘잊힌’ 한국전쟁 노무자 흔적


고성 작가는 ‘그림자들 헤아리다 지문이 거멓다’라는 제목으로 부재(不在)의 존재감을 카메라에 담아냈다. 짙은 초록 숲 사이에 존재하는 어둠의 공간, 억새 사이로 보이는 호수에 비친 산 그림자 등 새벽 숲의 은밀한 모습을 보여 준다. 고 작가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의 시간을 견뎌 내는 자신의 어머니를 찍은 2011년부터 지속적으로 떠남과 부재를 관찰해서 이미지화하는 작업을 해왔다. 이번 전시 작품은 강원도 원주의 겨울 숲에서 야영을 하며 찍은 것들이다. 자신을 괴롭히던 풀벌레들이 첫 서리가 내린 뒤 싹 사라져버리는 낯선 느낌과 밤에도 여러 번 깰 정도로 힘들었던 추위를 생생히 기억하는 고 작가는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 내 작업의 원동력”이라고 밝혔다.


김승구의 ‘밤섬 128’.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김승구의 ‘밤섬 128’.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김승구 작가는 8년간 찍은 ‘밤섬’ 시리즈를 보여 준다. 1968년 여의도 개발을 위해 폭파시킨 밤섬은 한강의 퇴적작용으로 기존의 6배 크기로 복원,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김 작가는 ‘인간이 파괴하고 자연이 복원한’ 섬에 들어가기 위해 오랜 시간 서울시를 설득해 출입 허가를 받았다.

밤섬에 처음 들어간 날 작가를 기다린 것은 길도 보이지 않는 무서운 숲이었다. 실패로 끝난 첫 방문 이후로 매년 2~3회 밤섬을 찾았다. 처음에는 밀림같은 섬의 풍경에 초점을 맞췄는데 겨울로 들어서니 떨어진 나뭇잎 사이로 도시가 보였다. 7장 세트로 구성된 ‘밤섬 100’은 멀리 보이는 규격화된 도시와 비정형적 형태로 생명력을 뿜어내는 자연의 대비를 보여준다. 밤섬의 장소와 시간을 사진으로 기록해 낸 김 작가는 “버려진 땅이 역설적으로 강화된 모습에서 생태도시의 미래를 읽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정호의 ‘Coincidence Summertime in 1952’.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정정호의 ‘Coincidence Summertime in 1952’.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정정호 작가의 ‘코인시던스’는 잊혀진 존재를 탐구한 사진 작업이다. 작가의 할아버지는 한국전쟁 노무자였다. 미군이 ‘지게부대(A Frame Army)’라 불렀던 민간인도 군인도 아니었던 사람들. 총도 없이 지게를 메고 전쟁 물품을 나르다 세상을 떠난 그들은 잊혀진 영웅이었다.

할아버지의 삶을 재구성하기 위해 작가는 전쟁 노무자의 흔적을 찾았다. 옛 미군 폭격장에서 수집된 탄피, 모든 것을 목격한 바위조각 등 물건을 주워 오브제를 만들었다. 그 낯선 사물들을 사진으로 찍어 스물 남짓한 나이에 죽어간 사람들의 망각된 작은 역사를 다시 살려 냈다. ▶‘제11회 KT&G SKOPF 올해의 작가전’=2020년 2월 19일까지 고은사진미술관. 051-746-0055.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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