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사랑한다”면서 왜 떠나려고 하나요?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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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딱지 할아버지/신순재

민이와 코딱지 튕기기 ‘검은 띠’인 할아버지 둘만의 비밀에 새로운 비밀이 하나 더 추가됐다. 민이는 할아버지의 새 이빨이다. 책읽는곰 제공 민이와 코딱지 튕기기 ‘검은 띠’인 할아버지 둘만의 비밀에 새로운 비밀이 하나 더 추가됐다. 민이는 할아버지의 새 이빨이다. 책읽는곰 제공

민이네 할아버지에게는 비밀이 있다. 그것도 민이만 아는 특별한 비밀이다.

비밀이지만 민이가 큰마음 먹고 알려준다. “우리 할아버지는 코딱지 할아버지다.” 콧구멍이 커서 코딱지도 많고, 그 코딱지를 돌돌 말아 톡하고 튕기면 멀리멀리 날아간다. 만약 코딱지 튕기기 기술에 태권도처럼 띠를 준다면 할아버지는 당연히 ‘검은 띠’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코딱지’와 ‘흔들리는 앞니’ 소재로

할아버지와 민이의 이별 그려내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낸 이들 위로

민이가 세상에 태어나서 말하고, 걷고, 뛰는 그 모든 순간을 할아버지는 지켜봤다. 할아버지가 자신에게 웃어주고, 손잡아 주고, 같이 놀아준 모든 순간을 민이는 기억한다. 그렇게 ‘진짜 좋아하는 사이’가 된 두 사람은 “민이한테만” “할아버지한테만” 자신의 비밀을 나눴다.

할아버지를 빼닮은 민이가 오늘도 코 파기에 집중하는데 “어?” 입안에서 뭔가 흔들린다. 혀로 살짝 밀어도, 손가락으로 슬쩍 건드려도 흔들거리는 이빨이 완전히 마음에 들었다. 가족 누구도 이런 이빨을 가지고 있지 않다. 심지어 할아버지도!

엄마가 보더니 흔들리는 앞니를 곧 빼야 한다고 말한다. 안 되는데…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이빨인데. ‘진짜 좋아하는 거랑 언제까지나 헤어지지 않는 법’을 할아버지는 알 수 있지 않을까? 할아버지는 뭐든지 잘 아니까. 얼른 할아버지를 만나 ‘특별한 이빨’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데 요즘 할아버지가 아주 바쁘단다.

이쯤이면 짐작할 수 있다. 흔히 ‘앞니가 빠지는 꿈을 꾸면 윗사람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해석한다. 민이네 할아버지는 지금 가족과의 영원한 이별을 준비 중이다.

〈코딱지 할아버지〉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에 대해 알려주는 책이다. 아이들에게 죽음은 이상한 일이다. 다정다감했던 할아버지가 자신을 보지 않고 누워 잠만 잔다. 엄마는 자꾸 울고, 아빠는 할아버지에게 작별 인사를 하라고 한다. “사랑한다” 말해 놓고는 왜 떠나려는 걸까? 할아버지랑 헤어지지 않을 방법은 없을까?

신순재 작가는 본인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뒤에 글을 썼다. 어린 딸을 위해 쓴 글이었는데 여러 해가 지난 지금 보니 작가 자신을 위한 이야기였다. 그림을 그린 이명애 작가는 시아버지 무덤 앞에서 천진난만하게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며 죽음과 슬픔이 언제나 동의어인 것은 아니라고 느꼈다. 이 그림책의 ‘이별 방식’이 밝고 따뜻한 이유가 여기 있다.

이별이 다가왔을 때 민이 이빨이 빠졌다. 울먹이는 민이에게 할아버지는 말한다. “이가 빠지면 다시 새 이가 나오는 거야.” 코딱지도 파면 다시 생기듯 영영 이별하는 것은 아니다. 당장은 허전하겠지만 헌 이가 빠지면서 새 이를 남겨둔다. 똑같지는 않지만 꽤 많이 닮은 새 이빨이다. 민이는 할아버지가 남겨둔 새 이빨이다.

이제 민이와 할아버지 사이에 비밀이 하나 더 늘었다. 민이가 할아버지의 새 이빨, 할아버지를 쏙 빼닮은 아주 특별한 이빨이라는 사실. 소중한 사람이 떠난 뒤엔 함께했던 추억이 남겨진 사람들을 위로한다. 신순재 글·이명애 그림/책읽는곰/44쪽/1만 3000원.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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