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터치] ‘도시재생 사업’에 대한 비판과 변명
/ 정주철 부산대 도시공학과 교수
자존(自尊)이냐, 타협이냐. 이 문제에 목숨을 걸었던 이가 있다. 그는 국가의 신을 믿지 않고 청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쳤다는 혐의로 고발돼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그의 제자들은 법정에서 펼친 스승의 자기변론을 정리해 저작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시대의 화두였지만, 당시 주류의 생각과 불화로 생을 마감한 그의 치열하고도 경건한 철학 정신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최근 20년간 도시사회의 화두 ‘재생’
주민 소외된 성과중심엔 비판 고조
하지만 지방도시 쇠퇴 대응에 필수
정체성과 철학적 방향 고민 있어야
2400여 년 전 소크라테스 이야기이다. 저작명은 플라톤이 쓴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다. 현대 사회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진실과 현실 속에서 수많은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정체성과 철학을 지키기 위해 우리 선택에 대한 자기변론을 준비해야 한다.
최근 20여 년간 우리나라 도시사회의 화두는 ‘재생’이었다. 전국적으로는 불균형 발전이 심화됐다. 특히 지방도시의 쇠퇴 현상이 도드라지는 현실 속에 우리 사회 거의 모든 분야에서 재생이라는 주제를 놓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도시개발 측면에서 재생은 과거 경제논리에만 의지한 채 원주민을 대거 내쫒았던 철거 재개발에 대한 반성이다. 또 신도시 건설과 자동차 보편화로 도시 외곽이 확산되면서 급속히 사라져가는 마을 중심 공동체사회를 부활시키기 위한 마지막 해결책으로 여겨진다. 이를 반영하듯 이전 정부에서 시작된 ‘도시재생 사업‘은 현 문재인정부에서도 50조 원 국책사업인 ‘도시재생 뉴딜 사업‘으로 더 확대·강화되고 있다. 부산 역시 10여 년 전 시작한 감천문화마을 사업을 비롯해 원도심 일대 산복도로 르네상스 등이 진행돼 ‘도시재생 사업’의 메카로 불리었다. 현재도 많은 재생활동가, 공무원, 전문가들이 도시재생 사업 현장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 도시재생 사업에 관한 비판도 함께 고조되고 있다. 미숙한 사업 방식으로 인해 ‘주민 중심이 아닌 보여주기식’, ‘관·전문가 주도의 행정 편의주의’, ‘밑빠진 독에 물 붓기식 혈세 낭비’ 등의 비판이 이미 현장에서 제기돼 왔다. 〈부산일보〉 기획보도 ‘도시재생 1번지 부산의 민낯’은 부산시 도시재생 사업 10년을 구체적으로 평가했다. 이에 따르면 부산의 도시재생 사업 10년은 시민들이 도시재생을 학습하는 시기로 평가하면서도 관광지 만들기, 건물 짓기 등 성과 중심의 진행은 아쉬움을 남겼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가슴 아픈 지적은 재생 사업이 진행된 지역에서 나타난 지속적인 인구 감소이다. 실제 감천문화마을 인구는 사업 이후 30% 이상 줄었다. 그러나 재생 사업 방식의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현행 사업지역 내 인구 감소, 더 나아가 도시재생 실패의 모든 책임을 온전히 도시재생 사업 그 자체에 돌릴 순 없다. 이 지점에서 ‘도시재생 사업’을 위한 자기변론이 필요하다.
먼저 도시재생은 단순 사업이 아니라 시정부의 주요 정책이자 철학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동안 부산시의 주거 정책 방안은 지난 10여 년간 도시재생 사업 시기에도 여전히 시장(市場)에 기반을 둔 수익 중심의 재개발, 재건축에 있었다. 재생 사업의 영향력은 거의 없을 정도였다. 또 도시 외곽으로의 개발 확대 정책은 원도심지의 인구 유출을 가속화시켰다. 이런 시정부의 철학적 부재보다 더 심한 부정적 영향은 중앙정부의 수도권 중심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수도권 중심의 개발 정책은 지방을 소멸 단계로까지 밀어붙이고 있다. 현 정부 들어서도 계속되는 제3기 신도시 사업과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사업 등 수도권 강화 정책은 지방도시 쇠퇴를 더 가속화할 것으로 우려된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의 소규모 도시재생 정책으로는 지역 쇠퇴를 막을 수가 없다.
강조하건대 지방도시의 쇠퇴 현실 속에서 도시재생은 필수불가결한 선택이자 도시의 철학적 방향이어야 한다. 이 때문에 부산시 도시재생 사업에 관한 비판은 사업 방식에 관한 건설적 비판에 머물러야 한다. 도시재생 성공을 위해서는 부산시의 시정철학으로 도시재생이 정착돼야 한다. 동시에 중앙정부도 국토 균형 발전을 위한 경제와 도시재생 정책을 함께 펼쳐야만 지방 부활을 위한 도시재생 뉴딜 사업이 성공할 수 있다. 우리는 시대의 화두와 선택인 ‘도시재생’의 정체성과 철학을 지킬 ‘변론의 시간’을 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