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서 잡고 南北 가공·수출, ‘신명태로드’ 만들자
[극동러시아에 답 있다] 5. 수산물 공급사슬 협력으로
우리나라는 러시아로부터 20만t의 냉동명태를 수입해 주로 내수용으로 쓰는 등 ‘글로벌 명태 비즈니스’에서는 변방국에 머물러 있다. 강원도 속초의 한 수산물가공업체가 직접 수입한 러시아 냉동명태를 하역하는 모습. 연합뉴스
코다리와 황태 등 명태 가공 제품과 요리로 이름난 강원도의 식품 업계와 식당이 요즘 초비상이다. 이들은 제품의 원료가 되는 명태를 러시아로부터의 수입에 전량 의존해 왔는데, 올 들어 러시아 측이 명태 원형 수출 물량을 대폭 축소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러시아 수역에 들어가 명태를 잡는 우리 합작선사들이 올 들어 러시아 정부로부터 조업 쿼터를 충분히 배정 받지 못해 어획량이 지난해의 절반 수준까지 떨어지면서 명태 수급난이 불거진 것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난 한 합작선사 관계자는 “자국 선사가 어획 쿼터의 절반 이상을 잡으면 합작 선사에 쿼터를 전배할 수 있게 해 오던 러시아 정부가 올 들어서는 70% 이상 소진으로 조건을 강화하면서 쿼터 거래가 막혔다”며 “합작선사들이 한 해 17만 t은 잡아야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는데 쿼터가 없다 보니 어선을 놀릴 수밖에 없어 상당수 선사들이 이참에 사업을 접고 철수해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명태, 수산업계 최대 비즈니스
中, 러시아산 수입 세계 호령
최근 베트남 급부상 지각변동
전문가들 “위기를 기회로…”
남·북·러 삼각협력 실현 땐
중국 넘어 신흥강자 부상 가능
■변화하는 글로벌 명태 SCM
‘세계 수산업계의 빅비즈니스 어종’으로 꼽히는 명태는 냉동 원어 기준으로 연간 4조 원, 필렛 기준으로는 6조 5000억 원 규모의 글로벌 시장이 형성돼 있다. 우리나라 역시 수입량이나 금액 면에서 수입 수산물 1위 어종은 단연 명태다.
명태는 중국이 러시아로부터 원료를 수입해 가공한 뒤 전 세계로 수출하는 방식으로 글로벌 SCM(Supply Chain Management·공급사슬 관리)이 짜여 있다. 러시아는 연간 150만 t의 명태를 생산해 이 중 절반가량을 수출하고 있다. 2017년 중국은 러시아가 생산한 냉동 명태 82만 t 중 73%에 달하는 60만 t을 수입한 뒤 명태 필렛(생선의 뼈를 제거한 살코기) 15만 t을 만들어 유럽 시장에 수출했다. 이렇게 수출되는 중국산 명태 필렛은 세계 시장의 60% 이상을 점유한다. 중국은 자국 해역에서 명태가 어획되지 않아도, 러시아로부터 수입 후 재가공 수출하는 글로벌 명태 SCM의 허브 역할을 하면서 매년 7000억 원 이상의 수입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러시아로부터 20만 t의 냉동명태를 수입해 주로 내수용으로 쓰는 등 ‘글로벌 명태 비즈니스’에서는 변방국에 머물러 있다.
■중국의 대항마로 부상하는 베트남
지난 20여 년간 이어져 온 이 같은 글로벌 명태 SCM은 최근 들어 일대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베트남이 중국의 아성에 도전장을 던졌기 때문이다. 2014년 이후 중국의 수산식품 수출이 감소세에 있는 반면, 베트남은 이 틈을 메우며 수출량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2017년 기준으로 수산식품 수출 규모에서 베트남은 중국의 46% 수준까지 쫓아왔다.
베트남은 인건비와 기술, 원료 조달, 외자 유치 등에서 중국에 비해 상대적 우위에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혁신전략연구실 장홍석 연구위원은 “베트남 공장 근무자의 임금은 중국의 3분의 1 수준으로, 명태 가공과 같은 노동집약 산업에서 임금은 경영 수익성에 절대적인 요소”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동북아 수산식품 SCM이 중단기적으로 중국과 베트남의 양대 허브 체제를 유지하다, 장기적으로는 베트남 중심 체제로 변화해 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베트남의 급부상은 동북아의 수산물 중간 유통기지 역할을 해 왔던 부산지역 수산업계에도 직격탄이 될 것으로 우려된다. 장 위원은 “러시아에서 어획된 명태는 중국의 가공공장으로 가기에 앞서 부산 감천항의 냉동냉장창고들에 환적 물량으로 보관된다”며 “동북아 수산식품 SCM이 베트남으로 재편되면, 부산의 냉동냉장창고 업계가 환적물량 감소로 존립 기반 자체가 위협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러 협력 ‘신명태로드’ 놓자
러시아와 베트남이 촉발시킨 동북아 수산식품 SCM의 균열은 우리로서는 큰 위기이다. 하지만 이를 어떻게 파고드느냐에 따라서는 한국이 글로벌 명태 비즈니스의 신흥 강자로 떠오를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우리 정부는 러시아의 투자 요청에 따라 2016년 글로벌 명태 비즈니스 모델을 제안했다. 베링해의 막대한 명태 자원을 중심으로 하는 수산식품 콤플렉스를 극동지역에 조성하고, 그곳에 한국의 수산업계가 진출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이 계획은 우리 기업들이 추진하던 나지모프 수산물 가공단지 개발사업이 무산되면서 흐지부지됐다.
이에 따라 유력한 대안으로 거론되는 것이 남-북-러 삼각협력을 통한 ‘신(新)명태로드’ 구축이다. 부산과 북한의 나진, 러시아 극동지역을 삼각 거점으로 삼아 명태의 생산부터 유통, 가공, 수출까지 이어지는 새로운 동북아 수산식품 SCM을 짜는 것이다. 러시아에서 생산한 명태 원료를 북한 나진으로 보내 1차 가공하고, 다시 이를 부산으로 옮겨와 재가공해 수출한다는 게 핵심이다. 우리나라의 기술과 자본, 러시아의 원료, 북한의 저렴한 인건비와 토지가 합쳐져 시너지 효과를 낸다면, 동북아 수산식품 SCM에서 중국이나 베트남과 경쟁 가능한 새로운 협력체제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명태로드 구축을 통해 중국 수출 물량의 30%만 분점해도 부산 수산식품산업 부가가치가 연간 3000억 원 이상 늘어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장영수 부경대 해양수산경영학과 교수는 “러시아에서 생산한 명태를 북한의 나진, 원산 등으로 옮겨와 필렛 등으로 단순 가공한 뒤, 이를 부산에서 어묵 등 고부가가치 식품으로 고차 가공한다면 물류나 원가 경쟁력 등에서 중국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끝-
블라디보스토크=박태우 기자 wideneye@busan.com
※이 기사 취재에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박태우 기자 wideney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