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이중권력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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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재권 부경대 정외과 교수

정치학 용어 중에 이중권력이란 말이 있다. 한마디로 하나의 정치 시스템 내부에 복수의 정치 권력이 공존하는 상태를 말한다. 러시아의 근현대 정치사에서는 중요한 정치적 변곡점에서 그와 같은 이중권력의 상황이 빈번하게 나타났다. 로마노프 왕조의 초대 황제(차르)였던 미하일 1세와 그의 친부이자 총대주교였던 필라렛 로마노프 사이에 권력 공유가 이루어지면서 이중권력이 나타났다. 성속의 권력 간에 공동 통치의 형태로 권력 공유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1917년 2월 혁명 이후 멘셰비키와 볼셰비키 간에 권력 공유가 이루어지면서 또 다른 이중권력이 탄생했다. 공산주의 몰락 이후 러시아 특유의 강력한 대통령제가 완성되어 가는 과정에서도 이중권력이 생겨났다. 후계자 대통령인 메드베데프와 실세 총리 푸틴 간에 이루어진 공생적인 권력 관계가 그것이다.

오늘의 시점에서 우리 역시 또 다른 의미에서의 이중권력 상황에 처해 있음을 실감한다. 청와대와 정부 여당을 한 축으로 하는 겉으로 드러난 대의 권력과 검찰과 보수 언론을 또 다른 축으로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기득 권력 간에 미묘한 권력 공유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확대되고 있는 검찰 수사의 칼끝은 정부 여당의 권력 핵심을 정조준하고 있다. 촛불에 의해 탄생된 새로운 대의 권력에 보내는 기득 권력의 분명한 경고 메시지에 다름 아니다. 우리를 건드리면 어떤 종말을 맞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 주겠다는 의지가 선연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또 다른 권력의 한 축인 윤석열 검찰총장은 다른 새의 둥지에서 자라난 뻐꾸기 새끼이거나 살모사, 그도 아니면 트로이의 목마 격이다. 우리는 그가 얼마나 순수하며 공명정대한지 알 수 없고 그가 설계하는 인생의 마지막 여정이 어디를 향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그가 보여 온 언행과 정치적 상황의 맥락은 그의 순수함과 공명정대한 의지를 의심케 한다.

정치 시스템 내 복수 권력 공존하는

이중권력 근현대 역사에서 빈번

우리나라도 대의와 검찰 권력 팽팽

불안한 권력 공유에 국민들만 피해

결국 국민의 선택 통한 해결이 온당

총선 무게감이 달리 느껴지는 이유

조국 사태 이후 방송 시간과 지면을 채워줄 새로운 뉴스거리에 목말라하던 언론 또한 총력을 기울이긴 마찬가지다. 청와대와 정부 여당이 관계된 권력형 게이트라도 터져주길 바라는 듯 연일 검찰을 위해 여론에 군불을 지피고 있다. 무차별적 필리버스터를 선언한 보수 야당의 극단적인 전략은 이러한 이중권력 상황을 더 도드라져 보이게 한다. 국민의 직접 선거에 의해 선출된 살아 있는 대의 권력과 우리 사회의 가장 영향력 있는 집단이 보유하고 있는 실체적 사회 권력이 검찰개혁을 소재로 격돌하는 상황은 러시아의 근현대 정치사가 보여 준 이중권력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러시아 근현대 정치사의 변곡점에서 나타난 이중권력과 현재 한국 정치의 갈등 상황에서 드러나고 있는 이중권력은 그 성격이 판이하다. 러시아의 이중권력 상황은 국민이 납득할 만한 실질적인 권력 분점의 상황을 반영하는 측면이 강했다. 이제 막 시작된 왕조의 심약한 황제였던 미하일 1세에겐 아버지인 필라렛 총대주교의 보살핌이 필요했다. 2월 혁명 또한 멘셰비키와 볼셰비키의 합작품이어서 권력의 분점과 공유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푸틴은 사실상의 대통령이었지만 헌법의 3선 연임 금지조항 때문에 메드베데프라는 형식적 대통령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이해되기도 했다.

그에 비해 현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이중권력의 상황은 어떤가. 무엇보다 우리의 경우 권력 공유의 명분이 제대로 납득되지 않는다. 일반 국민은 검찰이 왜 그토록 집요하게 정부 여당의 아킬레스건을 전례 없이 과감한 방식으로 건드릴 수밖에 없는지 쉽게 납득하지 못한다. 이중권력의 한쪽이 선거 결과를 통해 정당화되는 대의 권력의 담지자라면 이중권력의 다른 한쪽이 향유하는 권력은 도대체 어디로부터 온 것인가. 또 그들은 어떻게 스스로의 권력을 정당화하고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는 질문들이 가득하다.

이처럼 이중권력 상태가 지속되는 오늘과 같은 상황에서 이래저래 불안하고 불편한 건 일반 국민이다. 한마디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기분이다.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내고 있는 서민들에겐 끝물인 국회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민생법안이 관심의 전부일 뿐이다. 하지만 정작 여의도의 관심은 거기에서 한참을 비켜 서 있는 듯하다.

이런 이중권력의 폐해를 어떻게 없앨 것인가. 결국 국민이 중심을 잡고 선거라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경쟁하는 권력에 질서를 부여하는 방법만이 지금과 같은 이중권력의 대치 상황을 해결하는 가장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내년에 실시될 21대 총선은 현재의 이중권력 상태를 해결할 마지막 승부처라 할 수 있다. 21대 총선을 5개월여 남겨둔 상황에서 다가올 총선의 무게감이 달리 느껴지는 이유도 그것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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