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의 세상 속으로] “우리는 이제 희망이 없구나”
논설위원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정유사 아람코(Aramco)가 세계 경제의 이목을 끌고 있다. 아람코는 지난주 기업공개를 통해 시가총액에서 세계 1, 2위인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의 기업가치를 가볍게 뛰어넘었다. 그런데 아람코는 상장 시기를 왜 하필 지금으로 정했을까? ‘석유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람코는 투자설명서에서 원유 수요의 고점이 2020년대 후반으로 앞당겨질 수 있다는 보고서를 인용했다. 기후 변화에 따른 원유 수요 감소, 전기 자동차와 차량공유 서비스 확산이 근거다.
아람코 상장 ‘석유 시대 종언’ 의미
10년 내 전기차·자율주행차 상용화
미국선 자동차 80% 감소 전망
현대차 노사도 살아남기 총력전
삼성차 6개월 만에 다시 파업 위기
미래 생각해 지혜로운 해결 기대
사우디 정부는 또한 경제개혁 정책 ‘비전 2030’을 추진하기 위한 재원 마련이 시급해 아람코 상장에 힘을 쏟았다. 이 정책의 핵심은 사우디의 석유 의존형 산업구조를 제조업과 금융, 문화와 관광산업 중심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 가운데 가장 큰 예산이 투입되는 프로젝트는 스마트시티인 네옴 메가시티 건설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율주행차가 달리고, 도심형 비행 모빌리티가 날아다닐 이 첨단 도시 건설에는 585조 원이 투입된다고 한다. 사우디 외에도 많은 중동 산유국이 석유 그 이후를 치열하게 준비하고 있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차는 세상을 바꿀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될 경우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2025년까지 절반 수준으로 감소한다고 예상했다. 전기차로 바뀌면 부품이 최소한 지금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다고 한다. 부품 수가 줄면 공정이 줄고 결국 공장 노동자가 준다는 뜻이다. “그래도 전기차는 비싸서….” 전기차는 2030년이면 내연기관차와 가격이 비슷해질 전망이다. 정유사, 주유소, 그리고 보험사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고속도로 면적의 95%는 사고 방지용 간격 유지를 위해 필요한 빈 공간이라고 한다.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주고받는 자율주행차는 긴 안전거리가 필요 없다. 지금 도로의 30%만 가지고도 충분하다니 큰 변화가 예상된다. 자율주행차가 공유 플랫폼과 묶이면 주차 걱정이 사라지고 차종도 수시로 바꿔가며 탈 수 있다. 완전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되면 10년 이내에 미국 자동차 수가 20%로 감소한다는 충격적인 전망까지 나왔다.
현대차도 살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2027년까지 자율주행차 상용화를 목표로 2025년까지 20조 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2025년까지 세계 전기차·수소전기차 시장에서 3대 제조업체로 올라선다는 목표도 세웠다. 투자가 분산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한다. 현대차 노조는 그동안 악명이 높았다. 매년 기본급과 성과급 인상을 요구해 2011년 이후 지난해까지 7년간 단 한 차례도 빠짐없이 파업을 벌였다.
현대차 노조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8월에는 분규 없이 임단협이 타결됐다. 이달 초 전국금속노동조합 소속 현대차 지부가 중도·실리 노선의 이상수 후보를 새 지부장으로 선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현대차 외부 자문위가 내놓은 ‘전기차와 수소차 등이 본격화하는 2025년에는 현대차가 생산인력을 지금보다 40% 이상 줄여야 한다’는 보고서를 외면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국민이 안티(반대세력)가 되고 차가 안 팔리면 회사는 망한다. 전기차 시대 전환과 4차 산업혁명을 맞아 고용을 유지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현대차 신임 지부장이 한 이야기다.
르노삼성차를 생각한다. 불과 6개월 전에 1년여에 걸친 노사 분쟁을 마무리 짓고 내놓은 ‘노사 상생 공동 선언문’에는 ‘회사 정상화 과정에서 노사 모두가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고, 신차 출시와 판매에 협력하기 위해 노사 평화기간을 가진다’는 내용이 담겼다. 르노삼성차 노조는 이미 파업을 가결하고 오늘까지 집중교섭 중이다. 르노 그룹으로부터 신차 물량을 배정받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아 부산공장의 중장기 로드맵을 제시하지 못한 사측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하겠다.
르노삼성차는 큰 폭의 구조조정으로 인력이 줄어 노동 강도가 세진 게 사실이다. 노조는 “현대차와 같은 수준으로 맞추려면 월 24만 원이 더 올라야 한다. 12만 원 인상이 무리한 요구인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자동차산업은 전기차, 수소차, 자율주행차로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르노삼성차 부산공장 노사는 어떤 식으로 대비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르노삼성차가 갈등 봉합 반년 만에 이런 일이 또 발생하면서 우리는 이제 희망이 없구나….” 부정적인 생각만 든다는 협력업체 관계자의 심경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다. 르노삼성차가 앞은 보지 않고 바닥만 쳐다보며 운전하는 게 아닌지 걱정이 된다. 지금이라도 르노삼성차가 희망의 증거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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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