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산책] 대동(大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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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건 부산대 철학과 명예교수

대동강, 대동계, 대동법, 대동사회, 대동사상…. 여기서 대동(大同)이란 무엇인가? 대동은 〈예기〉 ‘예운’ 편에 나오는 말이다. 〈장자〉의 ‘재유’ 편에서도 나타난다. ‘예운’ 편에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큰 도를 행함은 천하를 공평하게 하고 어질고 유능한 사람을 뽑아서 믿음을 강구하고 화목하는 길을 닦는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기 어버이만을 친애하지 않고 다른 이의 어버이까지 친애하며, 자기 자식만을 사랑하지 않고 다른 이의 자식까지도 사랑한다. 늙은이는 안락하게 그 수명을 마칠 수 있게 하고, 젊은이는 충분히 그 힘을 발휘하게 하고, 어린이는 건전하게 자라날 수 있게 한다. 이것이 대동의 세계이다.” 이상 사회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 대동세계를 근대적으로 계승한 것이 캉유웨이(1858~1927)의 〈대동서(大同書)〉이다. 캉유웨이는 남의 불행과 고통을 참지 못하는 불인지심(不忍之心)에서 출발하여 인류 역사가 지속적인 발전 단계를 거친 후 도달할 이상사회를 그리고 있다. 120여 년 전의 책인데 대단히 급진적이다. 모든 결혼제도와 가족을 없애고 계약동거 관계를 맺으면서 아이들은 보육원에 보내라고 이야기한다. 경쟁을 없애고 약육강식의 세계를 벗어나라 한다. 조금은 우스운 이야기지만, 머리카락부터 수염, 눈썹에 이르기까지 모든 털을 깎아 버리고 깨끗한 몸을 가지라고 주장한다. 인생은 고통이기 때문에 즐거움을 구하라고 하고, 영구불변의 선악은 없다고도 한다. 하늘·땅·사람·만물은 하나라고 하면서, 국가가 없는 세상을 말한다. 캉유웨이가 주장하는 대동의 세상은 결국 차등과 차별이 없는 세계이다. 이 대동사회 사상은 근대 중국 혁명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대동은 이상적인 사회 꿈꾸자는 것

먹고 사는 일에 희망 뺏기지 말아야

이상과 꿈이 있을 때 현실 순결해져

이상 사회를 이야기하자면 당연히 등장하는 것이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다. 당시 영국에는 걸인이 넘쳐났고, 빈부 간의 격차는 점점 커져 갔으며,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이를 비판하고 새로운 세상을 꿈꾼 것이 이 책이다. 공동 생산과 공동 소유를 바탕으로 한 금욕적 사회모델인 유토피아는 아무도 무엇 하나 가진 것은 없지만 누구를 막론하고 부자인 세계이다.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 이 시대에 들을 만한 이야기다.

비틀스 멤버였던 존 레넌의 유명한 노래 ‘이매진’이 있다. 이 노래는 천국도 지옥도 없다고 읊고 있다. 국경이 없는 세상을, 종교도 없는 세상을,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소유가 없는 세상을, 탐욕도 굶주림도 없고 인류애가 넘치는 세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세상은 하나가 될 것이라고 소리치고 있다. 이 노래가 1970~1980년대 그 어두운 시절에 번안되어 이 땅에 소개되었더라면 당장 금지곡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도 이 가사에 거북해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비틀스는 해체되기 전 영혼의 목마름을 달래기 위해 인도의 요가 수행처인 리시케시를 찾아가 오래 머문 적도 있다. 그들은 명상과 영혼을 찾아서 갔고 뒷날 저항정신과 만난다. 그들은 큰 꿈을 꾸었던 것이다.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는 〈희망의 원리〉 마지막 부분에서 진정한 창세기는 인류 역사의 출발점에 있지 않고 오히려 마지막에 있다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세상이 변화하면 진정한 세상의 창조는 비로소 서서히 진척될 것이라고 서술한다. 창세기는 과거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미래에 있다는 뜻이다.

곧 한 해가 가고 새해가 다가온다. 흔히 ‘다사다난했던 지난 한 해’라는 말을 자주 쓴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그렇지 않는 해가 있었던가. 성인에게도 과거가 있고, 죄인에게도 미래가 있다. 누구든 새해에는 새로운 희망과 꿈을 가지게 된다. 그 소망과 꿈은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꿈은 좌절과 실현이란 이중성을 갖는다. 그러나 먹고 살기 위하여 꿈을 팔고 아름다운 희망을 빼앗길 수는 없다.

유토피아란 없는 곳이라는 뜻이지만, 그것은 더 나은 삶에 대한 꿈으로서 희망을 토대로 한 미래지향적 표상이다. 그래서 우리는 신생(新生)의 낮 꿈을 꾸지 않을 수 없다. 돈키호테는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고, 잡을 수 없는 하늘의 별을 잡으려고 하지 않았던가. 이상과 꿈이 있을 때 우리의 현실은 순결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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