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개의 빛’ 용궁 다녀왔습니다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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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즐기기] 밀양 트윈터널

수많은 전구가 환상적인 ‘빛의 축제’를 펼치는 밀양 트윈터널 ‘용궁 빌리지’ 구간. 삼랑진 만어사에서 큰 바위로 변했다는 용왕의 아들이 살던 해저 용궁을 주제로 삼아 조성했다. 수많은 전구가 환상적인 ‘빛의 축제’를 펼치는 밀양 트윈터널 ‘용궁 빌리지’ 구간. 삼랑진 만어사에서 큰 바위로 변했다는 용왕의 아들이 살던 해저 용궁을 주제로 삼아 조성했다.

중앙고속도로 삼랑진IC 인근에 있는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미전리. 고등학교 친구의 집이 아직도 있는 곳이다. 고3 여름방학 때 자율학습을 빼먹고 그곳에서 친구들끼리 밤새 대학입시 스트레스를 풀던 추억이 서린 곳이다. 벌써 35년 전 일이다. 당시만 해도 미전리는 하루에 버스가 두어 번만 오가던 시골 중에서도 시골이었다.

비둘기호 다니던 900m 추억의 공간

‘빛과 만어사의 전설’ 환상의 세계 변신

보라빛 축제 용궁 빌리지 지나면

별똥별 쏟아지는 놀라운 우주 공간

유령 세계·황금 보리밭·로봇 태권V…

꿈을 꾸듯, 별천지가 따로 없답니다

용궁 내부처럼 꾸민 상행 터널 끝부분. 용궁 내부처럼 꾸민 상행 터널 끝부분.
용궁 정문인 ‘아쿠아 캐슬’. 용궁 정문인 ‘아쿠아 캐슬’.

이후 거의 가 본 적이 없는 미전리에 재미있는 관광명소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신비로운 빛의 터널’이라는 별명을 가진 ‘밀양 트윈터널’이다.

트윈터널에 도착해 입구에서 주변을 돌아보니 눈에 익다는 느낌이 든다. 건강 문제로 대학교를 휴학하고 부산에 있는 학원에 다닐 때 이용했던 ‘비둘기호 열차’가 지나던 터널이다. 이곳을 지나면 바로 삼랑진역이 나온다. 당시 매일 이른 새벽과 저녁에 열차에서 만난 친구들끼리 삶은 계란을 나눠 먹으면서 청춘을 이야기하던 기억이 문득 새롭다.

KTX를 위한 새 터널이 생기면서 옛 터널로는 기차가 다니지 않게 됐다. 오랫동안 방치돼 있던 곳에 ‘빛’과 ‘만어사의 전설’이라는 아이디어를 심어 리모델링했다. 트윈터널은 상행 457m, 하행 443m로 총길이는 900m다. 밀양시 홈페이지 안내를 보면 터널에는 ‘1억 개의 전구가 달려 빛의 축제를 벌인다’고 한다. 정말 1억 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실제 가보면 엄청나게 많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을 상징하는 하트 모양 아치. 사랑을 상징하는 하트 모양 아치.

트윈터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입구로 내려간다. 첫인상은 다소 실망스럽다. 어디에나 있는 그저 그런 관광지일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생긴다. 게다가 입장료는 성인 기준으로 1인당 8000원. 입구 지역만 보면 잠시 주저하지 않을 수 없다.

입구를 가리고 있는 커튼을 걷고 들어가는 순간, 깜짝 놀란다. 이어 “이야~” 하는 탄성이 저절로 튀어나온다. 엄청나게 많은 전구가 터널 벽과 천장에 매달려 환상적인 보라색 ‘빛의 축제’를 펼치고 있다. 해저 용궁 개념을 담아 만든 ‘용궁 빌리지’ 구간이다. 천장에는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등 여러 가지 색깔의 공이 달려 지루해 보이기 쉬운 전체 분위기에 변화를 가져다준다. 앞서 들어온 가족들이 깔깔 웃으며 이곳저곳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뒤따라온 젊은 두 연인도 얼굴을 맞대고 즐거운 표정으로 사랑의 흔적을 남기기 바쁘다.

연거푸 사진을 찍으며 걸어 들어가는데 커다란 캐릭터 인형 하나가 가운데 우뚝 서서 환하게 웃고 있다. 인형 뒤에도 역시 많은 전구가 화려한 빛을 발산하고 있다. 이번에는 보라색이 아니라 파란색이다. 그 가운데 서서 위를 올려다보니 마치 밤하늘에 별이 쏟아지는 듯한 풍경이다. 천장에 매달린 ‘실’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란 빛은 밤하늘 별 사이를 뚫고 날아가는 ‘별똥별’처럼 느껴진다. 파란 터널은 끝이 없는 우주를 헤매고 있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갑자기 뒤가 소란스럽다. 단체 관광객이 들어온 모양이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든 외국어다. 중국 사람들이거나 대만 사람들인 모양이다. 다들 탄성을 지르며 즐거운 표정으로 연신 핸드폰 단추를 눌러댄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천천히 뒤를 따라가기로 한다.

장어 같은 커다란 물고기 모양이 보인다. 자세히 살피니 수족관이다. 여러 개의 작은 수조 안에서 다양한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다. 엔젤 피시, 플라워 혼, 시크리드미니, 우파루파, 블랙고스트, 실버샤크 등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물고기들이다.

수족관을 지나자 다시 환상적인 공간이 등장한다. 천장은 마치 생선 등뼈 같다. 아니면 공룡 등뼈인가. 거기에 빨간색, 보라색, 파란색, 연두색 등 다양한 색깔의 둥근 공이 매달려 있다. 각 공에서 비치는 그림자는 터널 바닥에 다시 컬러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끝부분에는 하트 모양의 장식이 세워져 있다. 하트 앞뒤로는 눈 부신 빛을 발산하는 조명 튤립과 해바라기가 서 있다.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라는 이야기다. 여기서 사진을 찍으면 식어가던 사랑도 다시 뜨거워질 것 같다.

상행 터널의 끝부분은 해저 용궁처럼 꾸며져 있다. 천장에 매달린 거북이는 바다에서 헤엄을 치는 것처럼 보인다. 벽에는 용궁을 상징하는 각양각색의 장식이 새겨져 있다. 현란한 모양과 색이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자극적이다.

삼랑진 만어사에서 돌로 변한 용왕의 아들을 상징하는 ‘피시 솔저’가 지키고 있는 상행 터널 끝 커튼을 젖히면 반환점이다. 이제 반대쪽 터널로 가서 돌아가야 한다. 하행 터널 입구에는 용궁인 ‘아쿠아 캐슬’이 보인다. 연분홍색 같기도 하고, 보라색 같기도 한 용궁 앞에서 다들 사진을 찍으며 웃느라 바쁘다.

용궁을 지나면 유령 세계가 나온다. 천장에는 용 같은 괴물들이 날아다니고, 벽에는 ‘핼러윈 데이’ 장식품을 연상시키는 으스스한 장식들이 붙어 있다. 삼랑진 만어사에 얽힌 ‘가야 수로왕과 독룡 전설’을 주제로 만든 공간이다. 걱정할 필요는 없다. 두 눈을 감고 서둘러 지나가야 할 만큼 무섭지는 않다.

유령 세계를 지나면 여러 가지 색깔의 ‘천사의 날개’가 나온다. 그 앞에서 사진을 잘 찍으면 모두 천사가 돼 하늘을 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날개에 이어 끊임없이 색깔이 변하는 하트 모양 아치가 줄줄이 서 있다. 아치들 사이의 벽에는 역시 하트 모양인 편지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방문객들의 다양한 사연과 소망을 담은 편지다.

아치를 지나자 ‘황금 보리’가 나타난다. 터널 벽은 성벽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그 앞에 가을 느낌을 주는 나무가 여러 그루 서 있다. 아래에는 수천 포기 보리가 황금빛을 뽐내며 출렁인다. 물론 진짜 보리가 아니라 조명 보리다.

황금 보리에 이어 놀라운 반전이 등장한다. 만화영화 주인공 ‘로봇 태권V’다. 안내판에는 ‘김청기 감독 특별전 엉뚱 산수화’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태권V가 조선 시대 산속에서 어린 소년과 우정을 나누는 모습을 산수화에 담았다. 천장에는 무지개색을 띤 우산이 수십 개 달려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태권V 탄생 40주년을 기념해 2016년에 만든 작품이다. 극장에서 만화영화에 홀려 눈을 뗄 줄 몰랐던 초등학교 시절이 갑자기 떠오른다.

이어지는 카페와 인조 벚꽃 장식을 지나면 출구다. 환상적인 트윈터널의 끝이다. 아직도 두 눈과 머리에는 터널 안에서 본 아름다운 빛의 축제가 잔영으로 남아 있다. 터널을 나와서 주변을 돌아본다. 한참이나 맑은 공기와 밝은 햇살을 느낀 뒤에야 마침내 몸과 마음은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

글·사진=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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