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원의 시네아트]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초상화가 불 지핀 여성들의 로맨스
셀린 시아마의 신작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영화는 한 장의 초상화로부터 시작한다. 초상화 수업을 하던 화가 마리안느(노에미 메를랑)는 ‘치마에 불이 붙은 여인’의 그림을 발견하고 회상에 잠긴다. 시간을 거슬러 마리안느는 귀족 부인으로부터 딸 엘로이즈(아델 하아넬)의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귀족 부인은 마리안느에게 두 가지를 당부한다. 하나는 밀라노에 있는 딸의 정혼자가 마음에 들 그림을 그릴 것, 다른 하나는 엘로이즈가 모르게 그려달라는 것이다. 마리안느는 엘로이즈의 산책 친구가 되어 생활하기 시작하고, 서로에 대한 관심으로 상대를 지켜보는 사이 예상치 못한 감정이 싹튼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로맨스물이다. 카메라는 초상화를 매개로 마리안느와 엘로이즈 사이 오가는 시선을 부지런히 쌓아나간다. 바라본다는 건 곧 발견한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상대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자신의 욕망을 발견하며,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사랑의 형태를 발견한다. 그렇게 여성에 의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한 폭의 풍경화가 돼 스크린 위에 켜켜이 쌓인다. 마리안느와 엘로이즈의 공간은 격리된 세계이자 일종의 이상향이다. 물론 이 낙원은 한시적이다. 두 사람 감정이 농밀해질수록 초상화는 충실해지고 그림이 완성될수록 예정된 끝이 다가온다.
마리안느와 엘로이즈는 예고된 이별이라는 상황에 대해 변명하는 대신 영원히 꺼지지 않을 감정에 집중한다. 그것이 지나간 기억을 영원으로 승화시키고자 했던 그녀들의 선택이다. 여기엔 어떤 원망이나 변명도 없다. 그저 흔들림 없는 시선을 통해 주체와 욕망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교감의 순간이 있을 따름이다. 그리하여 함께 완성한 그림은 두 사람만의 역사가 된다. 이들의 사적이고 내밀한 역사가 일으킨 파장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녀들의 사랑을 ‘목격한다는 건’ 지워진 역사를 복원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섬세한 로맨스에 퀴어 서사가 더해질 때 영화는 가려지고 억압된 여성의 역사, 아니 현재를 소환해낸다. 마리안느와 엘로이즈의 사랑이 양각(陽刻)으로 도드라진 이야기라면 음각(陰刻)으로 파인 것은 이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적 시선, 즉 여성에게 가해진 억압의 무게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18세기 봉건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차별받는 여성들의 이야기는 잊힌 여성 예술가의 초상을 매개로 번지고 공명하여 시간마저 뛰어넘는다. 강렬하게 뒤흔들고 아름답게 각인되는 한 장의 이미지. 사랑, 역사, 연대, 예술에 대한 초상. 여기에 어떤 이름표를 달아 줄지는 온전히 당신의 몫이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