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가 제한되면 예측하지 못한 작품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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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용 ‘신체의 사유’전

이건용 작가의 ‘신체의 풍경 76-1-2019. 데이트갤러리 제공 이건용 작가의 ‘신체의 풍경 76-1-2019. 데이트갤러리 제공

캔버스 앞에 서서 팔을 뒤로 뻗어 그림을 그린다. 캔버스 뒤에 서서 팔이 닿는 곳까지 붓질을 한다. 신체의 한계 속에서 작가는 어디까지 표현할 수 있을까.

몸과 연결된 행위 과정 기록

‘틀을 깨는’ 작품 50여 점 전시

이건용 작가의 ‘신체의 사유’ 전이 데이트갤러리(부산 해운대구 중동)에서 열리고 있다. 이 작가는 한국 아방가르드 미술그룹 ST(Space and Time)의 창립자로 한국 행위미술에서 선도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우선 바닥에 길게 펼쳐진 검은 종이가 보인다. 총 1500cm의 검은 하드보드지 위에 분필로 반복적인 선을 그리고 맨발로 선을 뭉개며 걸어간 흔적을 남긴 작품의 제목은 ‘달팽이걸음’이다. 이 작품은 몸과 연결된 모든 행위 과정 자체를 작품의 결과물로 기록하는 이건용의 미술 세계를 이해하는 첫 단추다.


'신체의 풍경 76-3-2019’. 데이트갤러리 제공 '신체의 풍경 76-3-2019’. 데이트갤러리 제공

이 작가는 신체를 제한하는 극한 상황을 설정하고 그 상황에서 그림을 그린다. 캔버스를 등지고 서서 자신의 몸 바깥으로 물감을 칠하고, 캔버스 뒤에서 팔을 앞으로 뻗어 선을 긋는 그의 작업은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팔이 닿는 위치에 따라 선의 길이는 달라지고, 예상하지 못한 지점에서 물감이 흘러내린다.

“신체에 대한 지독한 관심을 두고 작업을 이어 왔다”고 말하는 이건용 작가에게는 선을 긋고 점을 찍는 모든 과정이 다 회화다. 연필 드로잉 작품 옆에 붙은 사진에서 테이블에 몸을 붙이고 팔을 최대한 뻗어 작업하는 작가의 모습을 보면 ‘신체의 사유’가 주는 의미가 더 크게 다가온다.

종이 박스나 잘린 종이를 이어 붙이는 등 틀을 깨는 작품 재료의 선택도 눈길을 끈다. 종이 박스 내부에 반복적으로 선을 그리고, 그 작업을 통해 박스 내부의 요철이 눌려 올라온 작품은 은근히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운동장 바닥에 원을 그린 뒤 원 밖에서 안을 가르칠 때는 ‘거기’, 원 안에 들어가 있을 때는 ‘여기’, 밖으로 나가 원을 등지고 있을 때는 ‘저기’라고 외치는 작업을 담은 사진까지 이건용 작가를 해독할 수 있는 50여 점의 ‘틀을 깨는 작품’이 관람객을 기다린다. ▶이건용 개인전 ‘신체의 사유’=20일까지 데이트갤러리. 051-758-9845. 오금아 기자 ch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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