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동근의 자투리 생각] 좌립불안(坐立不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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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경대 중국학과 교수

‘자리’라는 말에는 권력, 돈, 권위, 나이, 젠더, 건강, 신체 등 여러 의미가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쓰임에는 단순한 공간적 위치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방식이 작동한다. 특히 권력과 돈은 명확하게 자리를 구분해 준다. 하지만 공공적 사회 부문에서는 공동체의 도덕과 가치가 개입되기에 ‘자리 구분’이 명확하지 않아서 좌립불안, 곧 안절부절못할 때가 많다.

세계 정상들이 모이는 국제 이벤트에서는 자리는 더욱 민감하다. 자리는 곧 의전 서열로 나타나며, 그 국가의 지위와 친소 관계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러 매체를 통해 의전 서열의 정치적 메시지를 파악한다. 한국 정치인이 일본 총리와 만날 때 일본 총리의 의자가 좀 높거나 색깔이 특별하면 곧 신문의 메인 뉴스로 나온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과 만날 때 자리 배치를 보고 ‘조공’이니 ‘알현’이니 하는 표현으로 묘사하는 뉴스를 보면 우리가 얼마나 자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알 수 있다.

‘자리’라는 말에는 도덕과 가치 등 의미 담겨

버스 등 일상 공간에서 소외 벽 쌓지 말아야

사랑 필요한 이들 공동체 중심 공간에 둬야

대외적으로 국가 간의 평등은 매우 중요하지만, 공동체 내부의 평등도 중요하다. 과연 우리 내부의 자리는 평등하고 공정하게 배치되고 있는가? 시민들이 많이 활용하는 지하철과 버스의 자리 배치를 살펴보면 우리 공동체 내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필자는 얼마 전 대만에 출장을 갔다. 타이베이, 단수이, 지룽 등 여러 도시에서 지하철과 버스를 타 보니 내부 구조가 부산의 것과는 아주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 지역들의 지하철에는 노약자석이 박애석(博愛席)으로 표시돼 있다. 박애석은 임신부, 노인, 약자, 장애인이 함께 사용한다. 박애석을 지하철 객차의 가운데 문 옆에 설치함으로써 노약자들이 이용하기 편리하게 만들어 놓았다. 부산의 도시철도에는 노약자석이 객차의 양쪽 끝에 있고, 임신부석은 노약자석과는 별도로 객차 가운데에 분홍색으로 따로 표시하고 있다.

그런데 부산에선 노인들도 일반석이 비어 있을 경우 노약자석에 앉는 대신 일반석에 앉는 경우가 많다. 변두리와 가운데, 늙음과 젊음의 차이로 생기는 차별을 본능적으로 인지하기 때문이다. 노약자들을 소외시키는 사회문화적 벽을 우리 스스로 만들고 있지 않은지 반성해야 한다.

대만 지하철 객차의 좌석 배치는 부산보다 다양하다. 부산처럼 단순하게 두 개의 젓가락처럼 평행을 이루게 자리를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ㄱ’ 형태와 ‘ㄴ’ 형태로 4인석을 만들어 서로 등을 지지 않게 하거나, 서로 마주 앉게끔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단절이 아니라 소통의 공간이 되도록 자리를 절묘하게 배치한 것이다.

대만에선 특정 버스의 경우 자리 배치가 미국이나 일본에 가깝다. 버스 중간의 문을 기준으로 볼 때 앞 좌석은 5개 자리밖에 없다. 기사의 좌석이 매우 크며, 2개의 박애석과 2개의 장애인석, 그리고 짐을 놓는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버스의 뒷부분은 계단식으로 갈수록 높아지는데 21개의 좌석이 뒤에 집중돼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뒷좌석으로 이동한다. 그래서 버스 앞 공간은 여유 있고 뒤의 자리는 다리조차 펴치 못할 정도로 비좁은 느낌이다.

이런 유형의 자리 배치는 승객들의 몸은 불편할 수 있지만 마음은 편하다. 장애인과 노인들이 편하게 버스를 이용하게 함으로써 그들이 갖게 되는 소외감이 줄어드는 효과를 보고 있고, 다른 일반 시민들은 공동체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자신들이 이용하는 공간의 중심에는 공동체의 사랑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항상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수긍하게 된다.

자, 부산은 어떤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는가. 부산의 도시철도는 서울의 도시철도와는 다르고, 대만의 지하철과도 다른 상황이다. 부산의 버스노선에는 산복도로와 해안도로가 있으며, 부산의 고령화 수준과 계층 변화도 크다. 그렇게 다르지만 하나의 원칙은 공유해야 한다. 바로 공동체가 이용하는 공간의 중심 자리에는 일반 시민의 손길과 사랑을 가장 필요로 하는 분들을 모셔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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