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 칼럼] 그토록 간절하게 군에 남고 싶다는데…

김은영 논설위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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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복무 중 성전환수술로 강제 전역 판정을 받은 육군 부사관 변희수 하사와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다. 그 혹은 그녀에 대한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땐 놀라움과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이후 군인권센터 긴급 기자회견에서 직접 얼굴을 드러낸 변 하사가 “인권 친화적으로 변모하고 있는 군에서 성소수자 군인들이 차별받지 않고 각자 임무와 사명을 수행할 수 있었으면 한다”면서 “제가 그 훌륭한 선례로 남고 싶다”고 밝혔을 땐 안타까운 마음이 커졌다. “성별 정체성을 떠나 이 나라를 지키는 훌륭한 군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는 변 하사의 포부가 통할지는 향후 전개될 법정 공방 결과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그와 별개로 우리는 이번 사안에서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군 복무 중 성전환수술로 강제 전역

음경·고환 훼손으로 ‘심신장애’ 판정

국가인권위 ‘조사 연기’ 권고도 무시


성전환자 군 복무는 세계적인 추세

‘군인사법’ 일부 손질해도 논란 여전

트랜스젠더 군인 복무는 요원할까

군인권센터 긴급구제 요청에 따라 국가인권위원회는 참모총장에게 “법원에서 성별 정정이 확정될 때까지 육군 전역심사위원회를 조사 기간(3개월) 이후로 연기해 줄 것”을 권고했지만 군은 이를 무시했다. 통상 전역 처분이 나고도 처분일로부터 최대 3개월까지 여유를 두고 전역 일자를 정하는 것이 상례인데, 변 하사는 전역 처분 다음 날 즉시 군을 떠날 것을 명령받았다. 변 하사는 고등학교를 부사관특성화학교에 다닐 만큼 어릴 때부터 군인에 대한 열망이 컸고, 2017년 임관 후에는 전차(탱크) 조종수로서 기량 평가 A등급을 받는 등 맡은 바 임무에도 충실했다. 하지만 성정체성으로 인해 그는 하루아침에 직업 선택의 자유를 잃었다. 막연하게 누군가가 불편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치고는 심각한 기본권 침해가 아닐 수 없다.

전역심사위원회 판단처럼 ‘남성으로 입대해 성전환 수술을 받은’ 군인은 “계속 복무할 수 없는 사유에 해당”하는지도 의문을 품게 한다. 특히 강제 전역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군이 지목한 군인사법 시행규칙의 ‘심신장애 3급’ 판정은 단지 ‘남성의 음경과 고환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는 게 이유다. 도대체 남근이 있고 없고가 군 생활에 얼마나 장애가 되는가 싶다. 실제로 변 하사는 군 병원에서 음경 상실과 양측 고환 결손으로 5급 장애 판정을 받았다. 이 경우 군 규정으로는 심신장애 3급이 되고, 전역심사 대상자가 된다. 성전환수술 행위를 심신장애로 판단하는 것은 다분히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

트랜스젠더는 태어날 때 부여된 성별과 스스로 생각하는 성별 정체성이 다른 사람을 포괄적으로 지칭한다. 성전환 수술을 원하지 않는 이들도 있고, 또 자신의 성을 어느 하나로 정의하지 않는 젠더퀴어도 있다. 손가락 끝에 가시 하나만 박혀도 호들갑을 떠는 게 사람인데, 하물며 온몸을 여러 차례의 수술과 호르몬으로 바꾸는 이들의 마음은 오죽할까 싶다. 그런데도 우리는 규범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우리 사회가 정의하는 정상 기준이나 이상적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백안시하고 차별한 건 아닌지 물어야 한다.

세계적인 흐름 역시 트랜스젠더를 정신질환자로 낙인찍지 않고, 하나의 정체성으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미국정신과협회는 트랜스젠더의 성정체성을 2013년까지만 해도 ‘성주체성장애(Gender Identity Disorder)’라고 표현하다가 지금은 ‘성별 위화감(Gender Dysphoria)’으로 바꿨다. 세계보건기구(WH0)는 지난해 국제질병분류 제11차 개정판에서 성주체성장애를 삭제하고, 성 건강과 관련한 하위분류에 ‘성별 부조화’로 표기할 것을 발표했다. 성전환자에게 군 복무를 허용하는 국가는 19개국에 이르고, 30여 개국에서는 트랜스젠더에게 호르몬 요법은 물론이고 성전환 수술 비용까지 국가건강보험 같은 공공의료체계를 통해 지원한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갈 길이 멀다. 변 하사가 강제 전역을 당하던 날, 국방부는 군의 장애 등급과 전역 관련 정책에 허점이 있다는 걸 알고, 군인사법 시행규칙 일부를 개정, 발표했다. 성전환자의 군 복무를 막는 조항은 여전하지만 ‘심신장애의 사유가 되는 질환 또는 장애가 해당 병과에서의 직무수행에 직접적인 제약을 주지 않는 경우’라는 내용을 신설했다. 물론 변 하사에겐 해당 사항이 없다.

인구절벽으로 징집 가능 인원마저 줄어드는 앞으로는 지금보다는 더 다양한 구성원을 군인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게 성소수자이든 아니든. 어쩌면 변 하사의 전역 처분 결정을 바로잡는 지난한 과정은 우리 사회가 한 걸음 더 성평등한 사회로 나아가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년 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홍콩 영화 ‘초연’(관금붕 감독)에 의미심장한 대사가 나온다. 극 중 트랜스젠더 연출가가 본인은 성전환 수술을 해서 이미 성정체성이 확립돼 있지만 내 딸이 아직 뭐라고 부를지 모른다고 말하는 대목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는 선택했고, 여러분도 어떤 선택을 하든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거듭 말하지만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key66@busan.com


김은영 논설위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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