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공짜 뉴스도 없다
이상기 부경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공짜 점심은 없다.” 미국의 통화주의 경제학자인 밀턴 프리드먼이 남긴 유명한 경구다. 굳이 이 말을 인용한 이유는 새해부터 부산 지역의 신문들이 구독료를 1만 5000원으로 인상했기 때문이다. 서울 지역의 신문들도 올해부터 2만 원으로 구독료를 인상한다. 신문 가격을 인상한 신문사들이 공통으로 내세운 사유는 신문 용지 가격의 인상과 최저임금 인상, 배달 비용의 상승 등이었다. 2008년 이후 12년 만의 인상인 만큼 그 이유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공짜 점심처럼 공짜 뉴스도 없기 때문이다.
가격 인상은 그 대상이 무엇이든 서민에겐 부담이다. 그렇다면 지역경제 상황도 좋지 않은 데 지역 일간지가 예전처럼 1만 2000원을 고수하는 게 옳을까? 수요의 법칙처럼 지역 독자들이 서울의 일간지를 버리고 지역 일간지로 갈아탄다면야 고려해 봄직도 하다. 그러나 세상은 교과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구독 습관이나 매체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다.
올해부터 신문 가격 일제히 인상
좋은 뉴스 생산에 수익 확보 중요
구독료 무게감 잊지 않고 서민 대변
가격 인상에 걸맞은 지면 변화 기대
신문 구독료를 대체하는 또 다른 주요 수익원은 광고이지만, ‘양날의 검’과 같다. 기업 입장에서는 자사에 대해 우호적인 기사를 써주고, 그렇지 않은 기사는 줄여주거나 빼주기를 기대하고 광고를 집행하려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광고주인 삼성그룹의 비리를 다뤘던 한겨레신문이 1년 동안 삼성 관련 광고를 한 건도 수주하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경향신문도 지난 연말연시에 광고 문제로 홍역을 치렀다. SPC그룹 관련 기사를 5억 원의 협찬금을 받고 삭제하기로 했다가 해당 기자가 사직서를 제출했고, 그 여파가 일파만파로 커지면서 광고국장, 편집국장, 사장이 줄줄이 사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흔히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고 말하지만,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하면 일상이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미국의 주요 언론사들은 자국 대통령의 해외 순방 동행 취재 때 대통령 전용기를 이용하더라도 요금을 별도로 지불한다. 그럴 바에야 민항기를 타지 싶지만,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다.
우리나라의 언론사들도 요즘엔 대통령 전용기를 이용할 경우 비용을 지불하고 있지만, 예전 한때는 공짜로 이를 이용했었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언론은 대통령의 해외 순방도 비판할 것은 혹독하게 비판했지만, 우리나라는 호평 일색인 경우가 허다했다. 꿀릴 것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는 이렇게 큰 것이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하듯이, 조선일보를 개혁해보겠다고 입사했던 한 기자가 있었다. 그런데 그는 결국 ‘조선맨’이 돼버렸다. 취재할 때 다른 신문사 기자들은 취재원으로부터 편의를 받는데, 조선일보는 법인카드를 주면서 취재원에게 오히려 밥을 사라는 데서 마음이 무너졌다고 한다.
좋은 뉴스를 만들기 위해 경제적인 자립은 필요충분조건이다. 올해 3월 30일이면 핀란드의 항공사인 핀에어가 부산에 취항한다. 부산 지역의 언론사라면 핀란드 현지를 방문해 실제로 부산에 얼마나 많은 북유럽 여행객이 오갈지, 동시에 지역의 이용객들에게 미칠 파급 효과는 어떨지 철저히 분석해야 마땅하다.
핀에어로서야 만에 하나 실적이 좋지 못하면 노선을 접으면 그만이다. 그렇지만 서울 일간지들은 이때다 하고, 좁은 국토에 관문공항이 두세 개일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문제를 키울 것이 뻔하다. 그런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지역민들이 억지로라도 유럽을 여행해야겠는가? 아니면 지역 언론사가 철저히 수요를 예측해 향후 추이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 나을까? 당연히 후자가 바람직하지만, 해외취재비 등이 절대 만만치 않다.
이런 이유 등으로 비록 구독료가 오르더라도 독자의 이탈이 최소화되기를 바랄 뿐이다. 1만 5000원은 누군가에게 한 끼 점심값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폐지를 팔아 하루하루를 버티는 누군가에겐 일당이다. 신문이 봉사해야 할 대상은 시민이라지만, 시민의 범주는 천차만별이다. 20 대 80의 사회에서 신문은 소수 엘리트의 편에도 다수 대중의 편에도 설 수 있다. 하지만 1만 5000원의 무게감을 생각한다면 누구 편에 서야 할지 답은 정해져 있는 게 아닐까? 가격 인상에 걸맞은 지면 변화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