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저출산 대응, 새로운 관점과 전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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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 동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초저출산 상황이 20년째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매년 최저 기록을 갈아 치우던 출산율 수치는 급기야 1명 이하로 떨어졌다. 2018년 합계출산율이 0.98명이라는 통계청 발표 이후 인구재앙, 인구절멸 같은 격한 표현들이 쏟아져 나왔다. 수십 년째 이어져 온 초저출산 상황에 적응된 탓일까, 체념한 탓일까. 다수의 국민은 위기를 체감하지 못하고 당사자인 청장년층은 냉소적이기까지 하다. 결혼, 출산을 기피하는 젊은 세대의 이기심과 근시안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사회가 그들에게 지운 현실의 무게가 너무나 무겁다.

수십 년째 이어져 온 초저출산 상황

결혼·출산 기피 세대만 탓할 수 없어

‘국가 발전’ 출산 장려는 낡은 관점

단편 정책 체계화 등 환골탈태 필요

양질의 돌봄 인프라 과감히 늘리고

여성 역할 양육자 묶어 둬선 안 돼

문제는 세대가 아니라 세상이다. 불안과 불안정성이 키워드가 된 시대, 생존을 위한 각자도생으로 내몰리는 현실은 여전하다. 실업률, 청년실업률, 비정규직 비율은 현재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인공지능과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소멸론이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는 마당에, 현세대에게 미래노동력 부족을 염려하며 출산율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은 공허하게 들린다. 급변하는 세상은 평생교육을 요구하고 있고, 아들딸 구별 없이 교육받은 젊은 세대에게 평생고용, 맞벌이는 당연한 것이 되었다. 그런데도 출산이 경력단절로, ‘독박육아’로 이어지는 한국 여성의 현실은 구(舊)시대 유물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이런 상황에서 출산율이 높은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닐까.

저출산은 중대한 문제다. 인구고령화 가속화, 생산인구 감소, 국가경쟁력 하락을 초래하는 국가 위기이기 전에, 국민의 삶의 위기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간 저출산 대책은 국가 발전을 위해 출산을 장려하는 낡은 관점을 유지해 왔다. 바뀐 세상에도, 세대에도 맞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정책 효과를 떨어뜨리고 정부에 대한 불신만 키웠다. 한국에서 결혼과 출산의 기피, 연기는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강요된 선택이다. 복지안전망이 탄탄하게 갖춰져 삶이 불안하지 않고, 가족 친화적 기업환경, 양질의 돌봄 인프라가 갖춰지고, 가족 내에서 평등한 돌봄 분담이 이뤄져 출산과 양육으로 경력이 단절되지 않는 데도, 아이가 주는 만족감과 행복을 다수가 자발적으로 포기할까. 아닐 것이다.

정부는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대통령 직속 기구로 세운 이래로, 3차에 걸쳐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대책을 실행해 왔다. 무상보육 실시,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확대, 아동수당 도입 같은 정책 성과도 상당하다. 그동안 저출산 대책에 100조 이상 투입했는 데도 소용없다며 일각에서 정책무용론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이마저도 없었다면 더 최악의 상황이 초래됐을지 모른다. 문제는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다른 국가들과 비교하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복지와 아동가족 지출은 여전히 하위권이다. 장시간 노동 체제를 개혁하는 과정은 더디기만 하고, 결혼·출산·양육으로 경력이 단절되고 여성이 독박육아 하는 불공정한 현실 역시 견고하다.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 인구절멸을 운운하는 것이 무색할 정도다.

저출산·고령화가 사회의 활력과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는 현재, 환골탈태의 변화가 필요하다. 단편적인 몇 가지 정책 도입만으로 결코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출산휴가, 육아휴직, 주거 지원 정책이 도입됐지만, 모두가 누리는 권리는 아니다. 이들 정책이 일하는 부모의 당연한 권리가 되도록 제도 변화와 함께 사회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 무상보육이 시행됐지만, 보육 서비스 질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고 일하는 엄마들은 여전히 일과 양육 사이에서 힘겹다. 아동가족에 대한 더 과감한 사회투자가 이루어져야 하고, 양질의 보육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저임금 장시간 근로와 성차별적 기업 관행이 유지되는 낡은 노동시장 체제를 개혁해야 하고, 무엇보다 성평등이 전체 사회와 가족 안에 뿌리내리도록 해야 한다. 여성을 양육자의 역할에 묶어 두는 한 출산율은 반등하지 않는다고 최근 출산율 연구들은 공통으로 말한다.

부산으로 눈을 돌려 보자. 2018년 부산의 합계출산율은 0.9명이다. 20·30대 청년들의 탈(脫)부산 러시가 심각한 상황에서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맞벌이 가구 비율, 미성년 자녀를 둔 엄마의 고용률은 전국 최저 수준이다. 워라밸이 중요한 청년들에게 매력적인 양질의 일자리도, 여성들이 계속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인프라도 부족한 서글픈 부산의 현실을 드러낸다. 올해 부산시는 2021년부터 시행할 저출산 종합계획 수립을 앞두고 있다. 그간의 단편적 정책들을 체계화하고 정책적 관심이 소홀했던 부문에 대한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다. 지역청년의 삶을 개선하는 것, 남녀가 평등하게 일하고 양육할 수 있도록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양질의 돌봄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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