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대학 입시 사슬의 비애
채영희 부경대 입학본부장
매년 입시 철이면 각 대학의 입학을 담당하는 부서는 정시 신입생 충원을 하느라 정시 퇴근은 꿈도 못 꾸고 다른 대학으로 떠나간 학생의 빈자리를 메우느라 바쁘게 움직인다. 입시에 대해 잘 모르는 분은 합격자를 발표하고 나면 그만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건 입시 생태계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우리나라 대학입시는 생태계 내의 종(種) 간의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 마냥 먹이 그물이 매우 치밀하게 짜여 있다. 수험생들에게는 수시 6번의 지원 기회가 있고 정시에 3번의 지원 기회가 있다 보니, 명절날 고향을 찾아가는 것처럼 수도권 대학으로, 또는 자신이 더 원하는 대학으로 이동한다.
먹이 사슬의 최고점에 있는 대학은 후보를 발표할 필요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학생의 이동이 거의 없어 입학 담당 부서에서는 별 할 일이 없겠지만, 풀밭에 있는 초식성 곤충과 같은 처지의 지역 대학들은 연일 다른 대학으로 이동하는 학생들의 빈자리를 후보 학생들로 충원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최초 합격한 학생들은 안심하고 있겠지만 빈자리가 생기기만 기다리는 충원 대기 학생들의 애잔함의 그늘은 무척 깊다. 00학과 후보 1번인데 왜 학생들이 나가지 않느냐는 전화도 받고, 후보 27번인데 입학이 가능하겠느냐는 안타까움이 가득한 전화도 종종 받는다. 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있는 입시 생태계의 잔인함은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에 답을 줄 수 없어 늘 안타깝다.
수도권 대학들이 지역 우수 인재를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이듯 모셔가고 나면 지역의 대학들은 허탈함만 남는다. 그러나 합격했다고 등록하겠느냐는 충원 전화에 “정말입니까? 보이스 피싱 아니지요? 정말이지요?”라고 재차 물어가며 자신이 대학에 합격한 기쁨을 전하는 학생들의 환호를 직접 들어 보지 않으면 그 전율을 느낄 수 없다. 입학을 담당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들의 환호가 한없이 따뜻한 위로가 된다. 정말 다니고 싶었던 대학에서 오는 합격 전화를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이렇게 예비순번을 받은 학생들과 학부모의 애간장을 녹이는 일들은 지난 17일에 모두 끝났다. 모든 대학들은 이 시간 이후 전화 충원은 할 수 없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그전에 모든 직원들이 숨 가쁘게 예비 순번 학생들에게 등록 의사를 타진하는 전화를 하게 되는데 이때 ‘생각해 보겠다’고 하는 학생을 만나게 되면 그 자리는 충원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기다리는 다음 후보 학생들은 대학에 입학하지 못하고 재수라는 힘든 길을 가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입시 사슬의 가장 큰 권력자는 재수학원이라는 맹수들이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생긴다. 정시 모집의 비율 확대는 수험생들을 입시라는 지루한 싸움터로 자꾸 밀어내는 것만 같아 마음이 무겁다.
각 대학들은 정시 모집 기간 중 채우지 못한 정원을 학과별로 산정하여 20일부터 21일까지 최종 추가 모집 기회를 주기 때문에 이 기간에 대학들의 입학처 홈페이지와 대학원서 접수 사이트를 꼼꼼하게 살펴보면 의외로 좋은 ‘이삭줍기’의 기회가 주어진다. 보통 한 학과에 결원이 한 명 정도 발생하기 때문이 경쟁률이 30대 1 이상이 되는데 이것은 지원할 대학의 수를 제한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대학은 경쟁률이 엄청나고 합격선도 수시나 정시보다 높게 설정된다. 합격자 발표를 26일 하고 나면 눈에 보이지 않는 또 한 번의 충원 전쟁이 28일까지 진행된다.
이렇게 신입생 모집으로 부산스러운 2월은 마무리와 시작이 공존하는 달이다.
입학본부장으로 우리 새내기들에게 꼭 이 말을 해주고 싶었다. ‘2020 새내기들! 우리 대학에 지원해 주어 고맙다. 힘든 고등학교 지루한 시간 잘 참아 내느라 애썼다. 앞으로 더 열심히 가장 잘하는 일에 몰두할 그대들이 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