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우리에게 필요한 건 연대와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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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덕 소설가

코로나19 확진자 숫자와 동선을 파악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하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일상이 억제되고, 가까운 사람들과의 만남조차 꺼려지며, 즐겨 애용하던 가게가 하루아침에 기피해야 할 장소로 머릿속에 각인된다. 부산에서도 마스크와 손소독제는 물론이고 라면과 우유 같은 생필품이 마트의 진열대에서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바야흐로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이 뇌와 가슴을 지배하는 시기이다.


코로나19 번져 불안 심리 확산

알베르 카뮈 〈페스트〉 생각한다

전염병 맞서 극복한 인간 드라마

성실하고 평범한 시민이 그 영웅

소설 속 희망·연대 의미 되살려

어려운 이 시기 극복할 수 있길


그렇다고 내내 암울하고 불안하기만 한 건 아니다. 손 씻기와 기침 예절 등 진작 습득했어야 할 위생 습관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가고, 평소 무덤덤하던 가족이나 지인들과 자주 안부를 주고받으며 예방수칙을 공유한다. 무엇보다도 그동안 추상적으로만 여겼던 지역사회, 국가, 공동체 같은 개념이 눈앞에서 실체화된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전해지는 안전 안내 문자는 나 자신이 지역사회와 국가에 소속된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한다. ‘우리’라는 의미, 당신의 안전이 곧 나의 안전이라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닫는 때이다. 평온한 일상을 뒤집고 운명을 통째로 바꾸기도 하는 전염병에 맞닥뜨린 인간 군상을 그린 소설로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꼽을 수 있다. 알제리의 도시 오랑에 역병의 징후가 나타나고, 정부 당국이 페스트를 공식적으로 선포하면서 도시가 봉쇄된다. 도시 안에 갇힌 인물들은 갑작스럽게 닥친 이 재앙에 대해 극명하게 다른 의견과 태도를 보이지만 결국 연대하고 투쟁하여 페스트를 물리친다. 그렇다. 카뮈는 이 소설에서 인간성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연대와 희망을 강조하고 있다.

주인공들이 연대하는 과정은 이렇다. 취재차 오랑에 온 신문기자 랑베르는 도시가 봉쇄되자마자 탈출하기 위해 애쓴다. 이 고장 사람이 아니므로 페스트는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마침내 오랑을 떠날 방도를 찾았을 때 그는 도시에 남아 전염병 퇴치에 힘을 보태기로 결정한다. 전염병이 개인을 넘어 우리 모두와 관련된 것이고, 탈출해서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페스트가 신의 분노이자 처벌이라고 설교하던 파늘루 신부 역시 “침묵하고 있는 하늘”을 바라보고 기도만 할 게 아니라 힘을 모아 질병과 싸워야 한다는 의사 리유(리외)의 의견에 따르고 동참한다. “페스트 시대의 종교는 여느 때의 종교와 같은 것일 수 없으며” 전염병이 창궐하는 시기에 인간의 구원은 곧 인간의 건강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주인공 타루가 조직한 자원봉사단체 보건대는 오랑의 페스트 퇴치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혼란과 공포의 도가니가 된 도시에서 자원봉사자들은 감염자들을 선별해서 이송한 후 치료하고, 수치와 통계를 기록하고, 페스트에 효과적인 혈청이 개발될 수 있도록 돕는다. 10개월여의 재난 기간 동안 보건대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하지만 이 사건의 증언자이자 서술자인 리유의 생각은 다르다. “이 이야기 속에 한 사람의 영웅이 있어야 한다면” 그건 바로 선의와 이상을 갖고 보건대에서 봉사한 시청 보조 직원 그랑처럼, 성실하고 평범한 시민이다.

예측할 수도 막을 수도 없이 닥친 소설 속 페스트는 그 자체로 카뮈가 의미하는 부조리를 상징한다. 그리고 주어진 세계의 조건, 즉 전염병을 물리치기 위해 투쟁하는 인물들은 작가가 제시하는 ‘반항하는’ 인간들이다.

소설 〈페스트〉에서 연대와 희망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한다. 대구의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모여드는 의료진들, 소상공인을 위해 자발적으로 임대료를 낮추는 건물주들의 ‘선의와 이상’이 감동적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꼼꼼하게 예방과 행동수칙을 지키고, 공동체의 한 사람으로서 협력하여 이 어려운 시기를 극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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