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광명의 정견만리(正見萬理)] 코로나19와 ‘기생충’ 그리고 전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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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작금의 코로나19 사태에 엉뚱하게도 두 편의 영화를 생각한다. 하나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고, 다른 하나는 1995년 개봉한 박광수 감독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하 ‘전태일’)이다. 아카데미 4관왕의 ‘기생충’과 영화적 성공을 비교할 순 없겠지만, ‘전태일’도 제16회 청룡영화상에서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촬영상을 휩쓸면서 “숭고와 환희가 하나로 느껴지는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영화다.


코로나19 부유층엔 남 일일 수도

저소득층에 가장 큰 피해 될 우려

불평등·빈부격차 등 고발 ‘기생충’

메시지보다 상품성으로 더 소비돼

전태일 50주기에도 사회모순 여전

몸사르며 던진 그의 외침 되새겨야


코로나19와 ‘기생충’ 그리고 ‘전태일’ 사이엔 서로 통하는 하나의 맥이 있다. 우리 사회에 내재한 기회의 불평등과 빈부의 격차를 드러내 보여준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 결국 저소득층이 가장 큰 피해를 볼 것이라고 경고한다. 바이러스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지만 바이러스에 대한 사람의 대응은 차별적이기 때문이다. 부자와 빈자가 극명하게 다르다.

국민 대부분이 공포에 떨어도 부유층은 코로나19 사태를 남의 일로 여기고 있을지 모른다. 식료품이나 약품 등 거의 모든 물품을 배달원이 집 앞에 가져다 주니 일상에 큰 불편이 없어 생활이 더 편해졌을 수 있다. 서민은 몸에 이상을 느껴도 제대로 검사받기 힘든데, 어떤 이는 사설 기관에서 비싼 돈 들여 개별적으로 검사받는다. 없는 이들에겐 꿈같은 이야기지만, 일부 부유층은 코로나19를 피해 해외로 도망치듯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이 혼란의 와중에 값비싼 명품 마스크를 자랑하고 다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반 마스크 한 장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는 서민이 부지기수다.

또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노숙자들을 위한 무료 급식이 끊기고 기초수급자에게 실시하던 무료 진료도 중단되고 있다. 독거노인, 장애인 등 소외계층을 향한 도움의 손길도 큰 폭으로 줄고 있다. 저소득층이 사회 안전망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기생충’은 빈부격차와 계급갈등을 익살맞고 다양한 상징을 통해 효과적으로 녹여 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 영화가 세계인의 공감을 자아낸 것은 그런 이유가 가장 크다고 한다.

영화에는 과문한 처지에서 말하기가 미안하지만, 그러나 ‘기생충’을 봤을 때 무언가 불편했다. 불평등과 계급 간 갈등은 보여주는 듯했으나 ‘그래서, 뭐 어쩌라고?’ 하는 의문이 든 것이다. 영화 끝부분, 송강호는 꼭 이선균을 죽여야만 했을까. 냄새로 상징되는, 이선균으로부터 받은 모멸감이 누적돼 결국 분노로 폭발한 것인가. 계급 간 갈등을 순전히 적대적인 개인 대 개인의 문제로만 다룬 건 아닌가. 사회 모순을 너무 절망적으로 해결하려는 건 아닌가.

여하튼 그런 의문들이 꼬리를 물고 일었는데, 결국 ‘기생충’은 우리 사회에 내재한 불평등의 현상을 고발할 뿐, 그 현상의 기저에 있는 원인도, 현상을 깨기 위해 무얼 해야 할지도 보여주지 않는다는 게 개인적으로 내린 결론이다.

이는 지금 이 영화가 소비되는 행태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사람들은 ‘기생충’이 고발하는 사회 문제는 고민하지 않고 영화적 성공에만 환호한다. 영화에 등장한 장소들이 관광 코스로 조성되고, 가난을 상품화한다는 비판에도 사람들은 좋아라 하며 거기를 찾아 간다. 한편에서 일부 정치인들이 봉준호 감독 동상을 건립하고 생가를 복원하겠다고 나서는, 어이없는 일들까지 벌어진다. 그러면서 정작 현실에서 영화의 주인공과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 그들이 어째서 반지하에서 살 수밖에 없는지 묻지 않는다.

영화 ‘전태일’은 실존 인물 전태일의 생존 당시 열악했던 노동 현실을 성실하게 드러내고 나아가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전태일이 스스로 몸을 사르며 세상에 던진 외침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하지만 사람들은 전태일은 거의 잊고 있다. 과연 지금의 노동 현실이 전태일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개선됐을까.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기생충’을 넘어 전태일을 봐야 하지 않을까.

올해는 전태일 50주기가 되는 해다. 전태일재단 등에서 다양한 행사를 진행 중이다. 산지니 등 국내 12개 출판사가 연대해 전태일을 주제로 한 책을 5월 1일에 동시 출간하는 ‘전태일 50주기 공동 출판 프로젝트’가 특히 눈에 띈다. 시대적 과제가 된 불평등과 양극화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해 보자는 취지다.

지금 대통령도 정치권도 ‘기생충’으로 웃기만 할 뿐, 그 안에서 봐야 할 전태일은 외면한다. 어쩌면 봉준호 감독은 관객들이 ‘기생충’을 통해 전태일을 보기를 바랐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기생충’은 손가락이고 전태일은 달일 테다. 손가락은 달을 가리키는데, 달이 아닌 손가락만 보고 있어서야 되겠는가!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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