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바이러스들의 공격 “판도라 상자 열렸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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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적 다양성이 풍부하고 비교적 수명이 긴 박쥐는 바이러스가 1차 숙주로 삼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연합뉴스 생물학적 다양성이 풍부하고 비교적 수명이 긴 박쥐는 바이러스가 1차 숙주로 삼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가 이미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에 접어들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코로나19와 글로벌 전염병 등장의 배경과 실체는 뭘까. 한국 보건 체계와 글로벌 보건 체계는 어떻게 변모해 왔을까. 세계 유수의 국제학술지, 학술 논문 데이터베이스, 국내 학술 논문 플랫폼 디비피아(DBpia)가 전염병 관련 논문을 무료로 공개하고 있다. 최근 〈바이러스 쇼크〉라는 책도 출간됐다.


에이즈·사스 등 인류 공포 몰아넣어

야생 바이러스 습격, 인간이 자초

신종 플루·메르스, 한국도 강타

‘글로벌 위험 사회’ 경고 명심해야


■인간이여, 자만하지 말라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서구 국가들은 백신과 항생제 개발로 감염병은 이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불과 수십 년 만에 감염병은 전 세계적 위기로 부상했다(논문 ‘2000년대 글로벌 전염병 거버넌스의 변화’).

세계적 차원에서 감염병 위기를 분명히 각인시킨 계기가 2차례 있었다. 하나는 1980년대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으며 여전히 정복이 요원한 에이즈다. 에이즈를 일으키는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는 1960년 이전에 사냥과 도축을 통해 침팬지에게서 사람으로 우연히 전염됐다고 보고 있다.

다른 하나는 2003년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사스 대유행이었다. 특히 사스는 중국에서 시작해 슈퍼전파자와 2·3차 후속 감염을 통해 홍콩 대만 태국 싱가포르와 북미 대륙으로 삽시간에 번진 유례없는 경우였다. 이때 세계보건기구(WHO)는 55년 역사상 가장 심각한 수준의 여행 경보와 비행 연기를 권고했다. 신종 바이러스인 사스라는 충격적인 경험으로 2005년 국제보건규칙이 제정됐고, 2004년 한국에서는 국립보건원 체계를 확대한 질병관리본부 체계가 출범했다.


■열리는 판도라 상자, 야생의 습격

이런 신종 바이러스의 습격은 닫혀 있던 판도라 상자가 열린 격이다. 밀림과 야생에서 잠자던 바이러스가 깨어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자초했다. 인류 역사에서 ‘야생’을 눌러 터지게 한 두 번째 계기 앞에 서 있다. 첫 번째인 1만 년 전 농업 정착 시기 이후 두 번째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대도시화·글로벌화된 현대문명에서 야생 바이러스의 뚜껑이 새롭게 열리고 있다. 바이러스는 종간 장벽을 넘지 못하는데 ‘넘쳐흐르는 수위’의 현대문명이 그 장벽을 깨뜨리고 있는 셈이다.

이번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유포한 주범은 박쥐다. 박쥐는 바이러스의 거대한 저수지다. 그 이유는 박쥐가 지구상 포유동물 5000여 종의 25%(1240여 종)를 차지해 생물학적 다양성이 풍부한 데다 긴 수명(5~50년)을 지녀 바이러스가 1차 숙주로 삼기에 너무나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날 수 있어 병원체를 널리 퍼뜨릴 수 있는 조건까지 갖추고 있다(〈바이러스 쇼크〉). 사스(2003년)·메르스(2012년)·에볼라(1976~2019년)·니파(1999년, 2001년) 등 21세기 신종 바이러스들은 박쥐에서 기원했다. 물론 중간 매개체 동물도 있다. 메르스 바이러스는 단봉낙타를 통해, 사스 바이러스는 사향고양이를 통해 인간을 공격했다.


■조류 인플루엔자의 공격

박쥐뿐 아니라 철새 등 조류를 통해서도 신종 바이러스가 널리 퍼지고 있다. ‘21세기 최초의 팬데믹’이었던 2009년 신종 플루는 조류 인플루엔자가 돼지를 거쳐 인간에게까지 감염된 경우다. 당시 WHO는 홍콩 독감 이후 41년 만에 인플루엔자 팬데믹을 선언했다. 전 세계에서 1만 8000여 명, 한국에서는 263명의 사망자를 낸 신종 플루는 21세기 한국을 강타한 첫 신종 바이러스였다(사스 때 한국 사망자 0명). 한국에서 신종 플루는 이후 2012년 메르스, 2020년 코로나19에 이르는 바이러스 공포의 출발점이었다.

조류 인플루엔자가 사람을 공격한 공포의 역사는 1918년 스페인 독감, 1957년 아시아 독감, 1968년 홍콩 독감, 1997년 중국 H5N1 인플루엔자, 2013년 중국 H7N9 인플루엔자에 이르기까지 두텁다. 21세기 들어 점차 기세를 더하는 가축에 대한 바이러스 공격은 구제역과 조류 인플루엔자로 나뉜다. 이 중 구제역은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 그러나 조류 인플루엔자는 사람에게 옮길 수 있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한국은 2003년 이후 6번의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 피해를 당했다. 2016년엔 그 이전 5번의 피해 총액과 맞먹는 역대 최악의 바이러스 습격이었다(경기연구원 ‘조류인플루엔자 인체감염, 우리나라는 안전한가?’). 고병원성 바이러스가 언제 인간을 습격할지 모르기 때문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글로벌 위험은 인간의 손과 머리의 합작품”이라고 이미 경고했다. 그의 진단처럼 현재는 ‘글로벌 위험 사회’다. 사스와 신종 플루, 현재의 코로나19, 특히 한국을 강타한 메르스 경우처럼 신종 바이러스들은 항공 여행을 통해 단 하루 만에 지구 곳곳을 강타할 수 있다. 우리는 아직도 많은 것에 대해 알지 못하고 어떤 위험 앞에 놓여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바이러스 쇼크〉). 인류가 자연 세계를 더는 침범하지 않고 그대로 둬야 한다는 경고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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